제가 교구장으로 활동을 시작한 1997년, 그 해 7월 당시 우리 교구의 최고령이셨던 원로사목자 장금구 신부님께서 87세를 일기로 선종하셨습니다. 고등동성당에서 봉헌된 장례미사는 제가 주례했지요. 장 신부님은 우리 교구가 설정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져주신 대표적인 분이셨지요. 황해도 출생으로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으셨는데요, 서울 대신학교 학장을 역임하는 등 역량이 대단한 분이셨지요. 게다가 농촌본당에서 사목하시는 데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인 분이었습니다. 우리 교구가 설정되자 방 4개, 책상 2개뿐인 교구청에서 교구 첫 총대리와 재경부장 등을 맡아 교구가 바른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셨습니다. 특히 현직 사목에서 은퇴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곡본당을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시 현직으로 돌아와 신자들을 위한 성당을 짓는데 헌신하기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교구의 큰 행사 때에는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꼭 참석해, 후배사제들을 격려하고 힘이 되어 주셨던 교구의 ‘큰 어른’이셨습니다.
분주하고도 빠르게 지나가는 하루하루 안에서 우리 교구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달 말에는 교구 차원의 기쁜 소식도 한 가지 전해졌습니다. 정자동성당이 교황청으로부터 우리 교구의 주교좌 대성당으로 공식 인준을 받은 것인데요. 대성당 봉헌식은 연이어 8월에 거행됐습니다.
정자동성당 공사는 1993년에 첫 삽을 뜨는 것과 동시에 시작됐었는데요. 기존 주교좌성당은 공간이 협소해 교구 차원의 미사와 행사를 열기 어려워 대성당을 짓게 된 것입니다. 성당의 탑은 4권의 복음서를 상징해 만든 것이었는데요.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대규모 벽화도 성당 안에 그렸으며, 장애인들을 위한 램프와 엘리베이터 등을 완벽하게 갖춘 것도 특징이었습니다. 본당의 주보성인으로는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을 모셨는데요. 신앙선조들의 순교신심 위에 꽃을 피운 우리 교구의 중추 본당으로서 내·외적 면모를 다지는 노력의 하나였지요.
이로써 우리 교구에는 두 개의 공동 주교좌본당이 자리 잡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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