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와 수단의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과 소말리아의 참상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졌다. 노점상을 하며 번 돈으로 당시 100만 원이라는 거액을 기탁한 아저씨, 동네골목에서 아이들에게 목마를 태워주며 번 200만 원을 전해달라고 찾아온 노부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을 쥔 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아픔에 시달리는 많은 이들에게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위로의 손수건’을 건넸던 1992년 7월. 그날의 역사가 머릿돌이 돼 한국교회의 해외원조사업은 이제 20주년을 맞았다. 29일 해외원조주일, 한국교회의 해외원조 역사와 앞으로의 향방을 재어본다.
▧ 나눔과 사랑에 대한 고찰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주지 않으면 그대가 죽이는 것이다’라고 한 교부들의 말씀을 상기하여 각자의 능력대로 자기 재화를 참으로 나눠주고, 특히 개인이나 민족이 스스로 돕고 발전할 수 있도록 원조해야 한다.”(사목헌장 69항)
‘나눔’에 대한 교부들의 말씀은 엄중하고 단호하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이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 것이 ‘죽이는 것’과 같다는 교부들의 말은 극단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뒤집어 말하자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실천적 나눔에 대한 지극한 강조인 셈이다.
1992년,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의 자발적 지원으로 공식적인 해외원조를 시작한다. 내전으로 신음하던 이들과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던 이들이 한국교회의 손길을 맞잡았다. 다음해인 1993년은 더욱 의미 있는 해였다. 사회복지주일(현 해외원조주일)을 맞은 특별 2차 헌금이 처음 실시됐다.
이후 한국교회의 해외원조는 한국 카리타스(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의 창구를 통해 이뤄졌다. 르완다 난민 돕기, 이라크전쟁 복구기금, 방글라데시 제1차 집중지원사업, 쓰나미 피해 구호, 파키스탄 대지진 구호, 미국 카트리나 허리케인 피해 구호 등 크고 작은 세계의 재난을 어루만져 주는 한국교회 안 특별모금운동이 이어졌다.
(재)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사무국장 이종건 신부는 한국교회의 해외원조는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의 정신이 동기가 됐다고 말한다. 당시 성체성사의 신비를 기념하는 한마음한몸운동을 통해 나눔실천의 열기가 가열됐기 때문이다.
“국제 카리타스 회원국만 164개국인데 그 가운데 20여 개국만이 원조를 해줄 수 있는 국가입니다. 우리나라는 10여년 만에 수혜국에서 원조국이 됐어요. 한국교회는 이후 꾸준한 해외원조를 하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들도 이러한 한국교회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한국 카리타스는 스리랑카 집중지원 사업, 방글라데시 제2차 집중지원 사업(2007~2009), 미얀마 사이클론, 중국 대지진 피해 구호, 아이티 대지진 피해 구호 등 세계 모든 재난의 역사 위에 ‘희망의 꽃’을 피우는 역할을 맡아왔다.
2010년 외교통상부 등록 재단법인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이 설립된 후에는 지난해 일본 대지진 피해 구호활동을 했으며, 동아프리카 식량위기 구호를 위한 특별모금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 겨레의 이웃과 마음의 이웃
해외원조의 명목으로 분류할 수 없는 ‘북한에 대한 원조’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한국교회는 1995년 북한에 물난리가 났을 때 수재민을 위해 즉각적으로 특별모금운동에 나섰다.
1997년 IMF사태로 인한 경제위기를 겪으며 1998년까지 후원금이 한때 대폭 하락하기도 했지만 이후 한국카리타스의 신규 가입회원과 후원금은 꾸준히 상승했다.
2004년 북한 룡천역 열차 사고 때도 한국교회는 특별모금운동을 실시했으며, 2005년 대북농업 개발사업 ‘씨감자 무균종자 배양시설’ 건축을 도왔고, 2006년 국제 카리타스 대북지원 사업대표 실무기구로 위임됐다. 다음해인 2007년 통일부 대북지원 사업단체로 지정됐으며, 최근까지도 밀가루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의 해외원조의 초점은 고통 받는 ‘동아프리카 원조’에 맞춰져 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가 올해 해외원조주일 담화를 통해 밝혔듯이 동아프리카의 식량위기 현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지역은 60년만의 대가뭄으로 최악의 식량 위기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85만 명의 난민을 포함해 식량위기로 구호가 절실한 인구는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지부티 등 4개국에 걸쳐 133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국 카리타스는 최근 동아프리카 기근에 대응, 이곳 지역에 미화 40만 달러(한화 4억6940만548원)를 지원했고 웹사이트를 통한 특별모금도 하고 있다.
이종건 신부는 “아직 ‘우리나라도 못 사는데 해외에 있는 이들을 왜 도와줘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며 “교회의 응답으로서의 해외원조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실제로 ‘소리 없는 쓰나미’라고 불리는 동아프리카 지역의 대기근 상황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11년 7월 17일 삼종기도 메시지와 10월 5일 일반알현에서 아프리카 지역의 기근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만 보아도 잘 나타나있다. 교황은 당시 일발알현을 마치며 “그 지역에서 날마다 부족한 물과 식량, 질병으로 죽어가며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이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구체적 도움을 보내주기를” 당부한 바 있다.
사목헌장 69항은 ‘모든 사람을 위한 지상 재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지적한다. 식량위기와 여러 아픔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공정하게 배분돼야 하는 재화에 대한 가르침이다.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
이종건 신부는 “세상을 향한 이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한국교회가 선두로 나눔의 실천을 확산하고,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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