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간 생명을 훼손하는 폐해들이 보이는 또 하나의 구체적인 특징은 ‘법적 정당화’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은 이들이 태어나지 않은 생명이나 약하고 병든 생명을 개인의 의지에 따라 죽일 수 있는 법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다수가 원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민주주의의 잣대를 들이대며 필요성을 말한다. 이러한 경향에는 ‘윤리적 상대주의’가 자리 잡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상대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 생명 존중과 관련한 문제들은 이 상대주의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역사적으로도 ‘진리’의 이름으로 범죄가 저질러진 경우는 많이 존재했다.
‘생명의 복음’은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 등의 가치는 ‘과반수’의 의견으로 변경할 수 있는 임시적이고 변경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만약 집단적인 양심이 모호해진 비극적인 결과 때문에 도덕률의 기본 원칙들까지 문제 삼는다면 민주주의는 그 기초조차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각 사회의 장래와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본질적이고 고유한 인간적, 도덕적 가치들을 되찾는 것은 시급한 현실이다. 이 가치들은 인간 존재의 진리에서 흘러나오며, 인격의 존엄성을 표현하고 보호한다. 개인적인 것도 다수의 것도 아니며, 국가가 만들어 내거나 변경하거나 파괴할 수 없다. 오직 인정하고 존중하고 증진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의 복음’은 “무고한 인간 존재를 낙태나 안락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법들은 모든 개인들에게 고유한 생명 불가침권에 완전히 위배되는 것”이라며 “그 법들은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낙태와 안락사 또한 인간이 만든 어떠한 법으로도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는 범죄들이므로, 이러한 법들이 있다 해도 따라야 할 양심상의 의무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양심적으로 그러한 법들에 반대해야할 명백한 의무를 가진다.
‘살인하지 못한다’는 계명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이기도 한 인간 생명의 대한 존중과 사랑의 증진이라는 면에서 모든 개인들에게 구속력을 지닌다. 우리 모두의 책임인 사랑의 봉사는 이웃들이 약하거나 위협받을 때, 그 생명이 언제나 보호받고 증진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일이다. 특히 ‘생명의 복음’은 우리가 개인적인 관심만이 아니라, 인간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중을 이끄는 사회적 토대를 쌓도록 사회적인 관심도 촉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