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으로 그려본 끔찍한 박해가 내 몫이 됐다. 죽지도 못한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밀어 넣는 고문은 지독히도 악랄하다. 기대했던 순교의 영광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하느님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죽어나가는 이들을 보며 소리친다. 도대체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소설 「침묵」은 “고통의 순간,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가?”라고 처절하게 되묻는다. 일본의 대표적인 가톨릭 소설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바오로·1923∼1996)는 「침묵」을 통해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신앙이 흔들리는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냈다. 그의 대표작으로 30년 이상 전 세계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며 감동을 확산해온 「침묵」이 모노드라마로 연극 무대에 오른다.
모노드라마 ‘침묵’은 극단 단홍(연출 유승희)이 창단 25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공연이다. 단홍은 학교폭력과 청소년들의 방황, 동성애와 에이즈, 탈주범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예리하게 지적한 작품들을 다양하게 창작, 공연해온 극단이다.
이번 모노드라마는 소설 속 배경인 17세기 일본을 조선 시대 박해 현장으로 바꿔 전개된다.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 소식으로 막이 열린다. 배교 소식으로 충격에 빠진 유럽교회는 진상 파악과 선교를 위해 그의 제자 로드리고 신부를 조선으로 파견한다. 그러나 너무나 참혹한 박해를 목격한 로드리고 신부는 비애를 느낀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려진 목판을 밟고 지나가며 배교하라고 강요당하는 순간,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은 바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목소리가 목판 속에서 들려온다. 하느님을 버려야 목숨을 얻을 수 있는 극단의 상황에 고민하는 성직자와 신자들의 심리묘사, 동서양 문화의 미묘한 대립 등도 절묘하게 엿볼 수 있는 극이다.
특히 모노드라마 ‘침묵’은 간결하고도 속도감 있게 각색돼 극적 감동을 더한다. 평소 연극을 즐기지 않는 이들도 한 번쯤 쉽게 빠져볼만한 작품이다.
연출가 유승희씨는 “‘침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실패한 신앙인들마저도 포용하신다는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고자 했다”며 “이 연극이 최근 범람하고 있는 반종교적 정서에 대항해, 현대인들의 미지근한 신앙을 점검할 수 있는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 기간 중에는 탤런트 김명중, 이주석씨가 교체 출연한다. 2월 1~10일 서울 신촌 소통홀 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입장료는 5000원. 월·화 7시, 수~주일 오후 4시. 전국 각 본당 및 기관단체 초청, 순회공연도 가능하다.
※문의 02-309-2731 단체예약은 010-8227-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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