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give」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어서 보면 For(~을 위하여) -gine(거저 주다, 무상으로 주다)입니다. 즉 거저 줌을 위한 어떤 행동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용서란 문자 그대로 보면 흔히 생각하듯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을 위한 무엇」이 용서라는 것입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말장난 같기도 하여 그 의미가 선뜻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잘못된 상대방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줄 수 있게 하는 것」「베풀 수 있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 지금까지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이었고, 이러한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용서의 문제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서로가 갈등을 겪고 있는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누군가이 잘못된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칭찬을 한다거나 혹은 잘못을 먼저 용서 청함으로 서로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만드는 행위가 여기서는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용서란 「용서를 청함」과 「용서함」이란 두 부분이 만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랑과 용서의 생활을 원한다면 잘못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잘못을 용서 청하는 고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대림 2주일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시작 부분으로 대림절의 사람 세례자 요한을 만나게 됩니다.
이분은 성서에 나오는 대로만 해석할 수 있는 분은 아니지만 어떻든 마르코 복음에는 이분을 「일꾼(말라기 3, 1)」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이사 40, 3)」라고 소개합니다. 구약성서에 예언된 이들의 역할은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인물들인데, 요한에게 이 호칭을 적용시키는 의미는 이분이 바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공적활동을 준비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낙타 털옷과 가죽 띠, 그리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었다고 합니다. 낙타 털옷과 가죽띠는 아합왕 시절 구약을 대표하는 예언자 엘리야가 입었던 옷입니다. 이 옷을 요한 세례자가 입었다는 것은 바로 이 인물이 구약의 전승대로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시기 위해 오신 승천하셨던 엘리야란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세례자 요한,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한 이분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죄사함을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을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들은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음으로(5절) 세례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대림절과 사순절만 되면 자주 듣게 되는 말 중에 하나가 「회개」입니다. 이 말은 「길을 바꾸다」「돌아서다」라는 히브리말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서 내적 방향전환과 생활의 개선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뭔가는 모르지만 회개란 생활의 180도 전환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무엇으로 생각하고 무거운 느낌을 받습니다. 필지도 지금까지 그렇게 배워왔고 강론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회개」란 어쩌면 그리 거창한 행위가 아니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나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회개」란 죄사함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용서하는 것은 자식의 「올바른 행동」이나 그 잘못의 성격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와 「용서를 청하는 자체」가 부모에게 더 의미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비록 자식이 잘못하였다 하더라도,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산도손 치더라도 자식이 용서를 청한다면 이미 부모는 용서합니다. 인간의 부모가 이러하다면 사랑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회개도 아마 이러한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복음을 시작하는 첫 부분에서 회개의 선포와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는 사람들의 모습(5절)을 연결시키는 이유도 「용서를 위한 죄의 고백」이것이 바로 회개의 생활이요, 이 회개의 생활이 바로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올바른 준비요, 이것이 율법의 무거운 짐을 대신하는 복음의 내용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