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하려는 차 주위로 모여든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어. 먼 훗날 다시 만나자.” 아이들이 말합니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언제 오세요? 정말 떠나는 거예요? 농담이죠?”
농담입니다. 하지만 아강그리알을 잠시 떠나는 건 맞습니다. 막중한 임무를 띠고 나이로비로 나가는 길이거든요.
저에게 세 가지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첫째, 어학연수 기간을 마친 이상협 신부를 한국으로 무사히 들여보낸다. 둘째, 나이로비에 적응 중인 서동조 신부를 돕는다. 셋째, 쉐벳 공소 사제관 공사를 위한 자재를 구입하고 실어 보낸다. 이 중 가장 무거운 임무는 세 번째 임무입니다. 뜻대로 안 되는 부분이거든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곳’ 아프리카에 살고 있으니까요.
늘 다니던 길을 따라 아강그리알을 벗어나고 쉐벳을 거쳐 룸벡으로 나갑니다. 물이 빠진 길은 다니기에 좋지만 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던 웅덩이가 바짝 말라 드러난 길은 저를 놀라게 합니다. ‘그동안 이렇게 무시무시한 웅덩이 위를 달렸다니…’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오는 순간입니다.
룸벡에 도착해 항공사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티켓을 구입하고 비행기가 몇 시쯤 올 것 같으냐고 묻자 직원이 재미난 소식을 들려주네요. 오늘 비행기가 몇 시에 올지 모른다고 합니다. 중간 기착지에서 비행기가 고장이 나서 이륙을 못하고 있다고 하네요. 역시 아프리카입니다.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비행기가 한두 시간 늦게 뜨는 일은 예사고, 조종사가 몸이 아파 늦게 오는 경우도 있고요. 예전에 어떤 팀은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했다가 다시 내려오기도 했고, 비행기 수리 때문에 중간 기착지에서 하루를 머무른 적도 있고, 기름이 없다고 예정에도 없던 다른 도시에 내린 적도 있으니까요.
비행기 고장과 수리로 인해 나이로비로 나가는 것은 결국 하루 연기되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열두 시경 도착하고 오후 한 시쯤 다시 나이로비로 떠나는데 오후 두 시가 되도록 아무 연락도 없고 비행기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교구에서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고 룸벡에서 하루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주교좌성당에 가서 교구 신부님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미사 후에 신부님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신부님들은 갑자기 나타난 저를 보고는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 하셨고, 비행기가 오지 않아 하루 머물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럴 수도 있는 곳이라며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도 온다던 비행기는 소식이 없습니다. 열두 시, 한 시, 두 시, 이렇게 지쳐갈 때쯤 오후 네 시가 돼서야 비행기가 도착했습니다. 비행기는 저를 비롯한 네 명의 승객을 태우고 나이로비로 날아올랐습니다.
나이로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여덟 시. 6개월 만에 나이로비로 나왔습니다. 나이로비의 공기, 역시 시원합니다. 다만 매캐한 냄새가 코를 스칩니다. 오래된 중고차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 나이로비가 맞습니다.
※남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도움주실 분 031-244-5002 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구 아프리카 남수단 선교 위원회
http://cafe.daum.net/casuwonsu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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