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렐루야 알렐루야!
지금 우리는 예수님 부활의 크나큰 감격과 은총 가운데 새 생명의 기운이 역력한 새 봄을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소중하고 은혜로운 때 저희 가톨릭신문이 창간 70주년 고희를 맞이하여 국내외 애독자 여러분과 함께 감사와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27년 4월 1일,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있던 그 어둡고 험난한 시절에 남방 천주교 청년회의 피끓는 젊음과 신앙 열정은 애국적이요 선각적이며 교회적인 소식지「천주교회보」의 탄생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가톨릭신보」「가톨릭시보」마침내「가톨릭신문」으로 정착하면서 오늘 제2047호로 창간 70주년 기념 특집호 40면을 발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4.6배판 타블로이드판을 거쳐 지난 59년 10월 11일자부터 지금의 신문판이 되기까지 월간, 격주간, 주간으로 바뀌고 면 수 또한 4면 8면 16면 20면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되돌아 보면, 실로 70년 가톨릭신문의 족적은 한 마디로 장하고 용기백배했던 데 비해 그 이상의 좌절과 역경과 통한(?)을 되씹어야 했던 시련의 길 고난의 길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북경에 사신으로 갔던 이승훈이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최초의 영세 신자가 된 때를 기점으로 볼 때 2백13년 한국 교회 전체 역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0년 긴 세월을 가톨릭신문이 국가와 민족과 교회와 더불어 운명을 함께 하며 한 걸음으로 묵묵히 달려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사장을 역임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처럼 가톨릭신문의 역사는 가히 한국 교회 초창기 역사를 연상케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앙 공동체가 절대군주의 쇄국정치의 폭압 가운데 외래 선교사들의 포교활동 없이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일궈낸 자주 자립의 신앙적 산물이었다면 가톨릭신문 또한 몇몇 청년 신자들의 선구적이요 창조적이며 역동적인 사도적 열망과 신심의 발로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창간 6년 만인 1933년 주교회의의 결의에 따라 서울의「별」지와 함께 자진 폐간한 것이라든가 16년 만에 속간하고 나서 다시 운영권을 전적으로 교구에 넘긴 일 등도 마치 초기 교회 때 가성직제도를 운영하다가 전적으로 교회의 공적 교도권(Magisterium)에 순종하던 신앙 선각들을 새삼 떠올리게 합니다.
가톨릭신문 70년 세월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 2백주년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두 차례 방한 등 한국 교회 역사의 큰 테두리 속에서 이 시대 신앙인들과 더불어 늘 공감의 영역을 넓혀가는 데 대단히 한 몫을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 밖으로 눈을 돌려볼 때 월수로 8백40개월, 일수로 30만6천6백일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사적으로 시련과 고통으로 점철된 격랑의 역사였다고 할 것입니다. 일제치하 창씨개명과 신사참배가 강요되고 말할 수 없는 궁핍과 박해가 가중되던 일이며 해방 후 좌우격돌과 민족분단,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 경향신문의 폐간, 그리고 4·19와 5·16, 유신정권과 10·26, 12·12 군사 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마침내 5공 6공과 이른바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경제 발전과 정치환경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현상은 여전히 불안하고 불편하며 불신과 반목과 질시의 골만 깊어갈 뿐 별반 희망의 전조가 보이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도 온통 나라 전체를 어지럽히며 신문 방송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한보사건, 김현철 게이트, 북한노동당 비서 황장엽 망명, 금년 말로 다가온 대권 경쟁, 무엇보다도 극심한 경제위기 문제와 수년 내 이루어질 것 같은 남북 통일.
오늘의 우리들이 몸 담고 있는「삶의 자리」입니다.
바로『지금 이 자리』(hicetnune)에서 저희 가톨릭신문이 존재하는 자기 이해와 자의식의 지평을 새롭게 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고 본지는 창간 당시의 사시인「소식보도, 의견교환, 보조일치」의 3대 모토와 속간 당시의 조국 성화의 이념과 정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교회 내 소식을 보다 많이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더욱 애쓸 것이며 건전한 여론 형성과 대화, 그리고 다양성 안의 일치를 도모하기 위하여 선의의 기관 단체들과 연대할 것이며, 가장 효과적이며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찾아나서는 데 틀림없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구원과 성화를 위하여 본지가 추구해야 할 일이 있다고 봅니다.
주님 안에 한 형제자매 여러분. 성서적으로 7이라는 수는 완전수를 가리킵니다. 구약시대 7년마다 은총의 해를 살았던 것을 묵상하며 7년의 10배인 70년을 맞이한 본지로서는 새로운 70년 아니 그 이상의 은혜롭고 소중한 세월을 작정할 것입니다.
더우기 1천년이 뒤바뀌는 3천년기의 새로운 시작을 바라보며 성자 그리스도의 해를 사는 1997년을 참으로 감사하며 신실하고 온전하게 살고자 합니다.
『항상 개혁되어야만 하는 교회』(Ecclesia semperreformanda)라는 말이 있습니다. 늘 새롭게 쇄신하고 성찰하고 변모되지 아니하면 오늘의 교회가 구원의 수레바퀴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을 되새겨 봅니다.
저희 가톨릭신문 임직원 일동은 앞서 간 선배들의 귀한 유업과 유훈을 가슴으로 새기며 독자 여러분들의 기도와 묵상 가운데 더욱 관대한 호응과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실 것을 감히 청합니다.
감사합니다.
1997년 4월 가톨릭신문사 사장 최홍길 레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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