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청「타 종교 연구 고문기관」(Pontifical Council for Dialoque)과「문화 연구 고문기관(Pontifical Council for Culture)이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안대학교 선교신학부와 공동으로「환생과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란 주제를 갖고 3월 17일부터 21일까지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안대학교에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의 강사진과 전문 토론 위원들(총 35명)은 세계 각국에서 초청된 박사들과 교수들 그리고 주교들과 추기경들로 구성됐으며 조직위원장인 그레고리안대학교의 미카엘 푸스(Michael Fuss) 교수 신부의 지휘 아래 1천여 명이 넘는 각지의 전문가들과 학생, 신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강좌가 진행됐다.
최근 본보가 진단한 바 있는「세기말적 이상 기류」와 맥을 같이하고 있는 이번 심포지엄의 내용을 토론자로 초청됐던 그레고리안대 이재숙 교수를 통해 3회에 걸쳐 싣는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육체부활신앙에 전적으로 도전하는 환생이론이 전 세계에 대두…
…뉴에이지 경향에 부합, 영혼과 육신이 별개라는 이원론적인 사상이 부활…자기 구원의 수단으로 등장…교회의 가르침 부족도 원인…
…그리스도교는 공동체적 구원을 중시한다. 따라서 신망애의 실천으로 환생사상에 대처…
이러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된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문화 종교적인 배경에서 그리스도교의 육체부활신앙에 전적으로 도전하는 환생이론이 서양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의 새로운 현상으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현상을 진단 분석하여 신자들에게 신앙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이러한 현상에 어떻게 용기있게 대처하며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즉 그리스도의 부활과 새로운 삶의 부활에 근거한 그리스도인의 깊은 신앙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를 그리스도교 신학과 성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리고 교회의 전통과 교부들의 사상을 분명하게 파악함으로써 실질적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사목적 배려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교회가 현 문화와 다른 길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이들과 대화함으로써 이들을 이해하며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참신성을 명확하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1. 왜 환생사상에 매혹되는가?
1) 환생에 대한 믿음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있어 증가 추세에 있다. 유럽의 일반 사람들이 24% 환생을 믿는 반면에(예를 들면 영국, 스위스, 포루투갈 33%) 가톨릭 신자들 중에 환생을 믿는 사람들은 25%에서 35%(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음, 브라질의 경우는 46%)로 거의 25%를 웃돌고 있고 특히 젊은 층에서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 조사이다.
그러나 이들은 환생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환생에 대한 사상은 주로 뉴에이지 경향의 책자나 강좌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이 확산되는 이유는 영지주의 사상을 다시 회수하는 뉴에이지운동의 확산으로 인간의 영혼과 육신은 각각 별개의 것으로 되어 있다는 이원론적인 사상이 부활하고 있는 것을 지적할 수 있으며 세속화 현상으로 하느님이나 영원성에 대한 인간의 믿음이 결여되고 있는 데서 나타난다. 그리고 영적 공허를 메꿀 수 없는 염세적 문화 안에서 자기 실현에 실패한 인간이 환생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바람에 기인한다. 특히 뉴에이지운동의 확산으로 인간의 행복과 평화, 조화를 보장한다는 매혹적이지만 거짓된 언약을 하는 이상한 사조들에 의해 환생은 인간을 완전 실현시키는 자기 구원 수단으로 등장되고 있다. 또한 물질주의 발전으로 대중문화가 경박한 낙관주의의 슈퍼마켓으로 변한 것도 한 이유로 들 수 있으며 현대인에게 돈벌이의 수단으로 등장해서 상품화된 비술적인 종교와 영성들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환생이론이 사람들에게 매혹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실용적인 요구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환생요법을 통해 병을 치유하거나 죽음의 공포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한다든지 아니면 현재 삶의 나쁜 현상들 고통, 악, 복수, 범죄, 도덕적 책임감을 회피하거나 합리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 안에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 부활의 신비나 그리스도교적 종말론 교리와 영성에 대한 가르침의 부족도 그 이유 중의 하나에 들어간다. 환생을 따르는 이들에 의하면 하느님은 우주의 기이며 영으로서 비인격적인 존재이다. 그들은 죽음 후의 인간 영혼의 불멸설은 믿고 있으나 영원한 인격적인 하느님의 삶에 참여하는 그리스도교적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2) 힌두교, 불교의「환생」과는 다른 새로운 환생 개념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혼합주의는 여러 운동의 요소들을 결합시킴으로써 현대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특히 붓다에서 그리스도까지 더 나아가 수많은 종교의 스승들을 자체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환생론 역시 이러한 자체 구원의 수단으로 등장한다. 뉴에이지 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엘리스 베일리(Alice Ann Bailey)는 점성학에 기반하여 지금부터 60년 후인 뉴에이지 즉 아쿠아리오 세대에는 환생에 의해 환전해진 새로운 메시아(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님)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대가 도래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사상들은 세기 말에 사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거짓 위안을 줌으로써 환생사상은 급속히 확산된다. 환생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마술적인 예식과 비술, 비밀적인 의식을 따른다.
뉴에이지에서 주장하는 신앙의 사고에 준거한 환생은 전통적인 동양종교, 특히 힌두교와 불교에서 말하는「카르마」(Karma)의 법칙에 의한 환생과는 차이가 있다. 힌두교나 불교의 환생이란 전생에 행한 행위에 의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인간이 자기 완성 즉 열반에 들지 못했을 때 업(Karma)의 결과로 인간의 선택이 들어갈 틈이 없는 그리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며 부정적인 것이다.
이때 환생의 주체는 업(Karma)이 되며 인간은 업에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윤회의 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정화와 사랑과 자비의 실천과 윤리 도덕적인 책임감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뉴에이지에서 나타나는 환생은 죽음을 끔찍히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해방을 제공한다. 그들의 이론에 의하면 환생에 있어 주제는 업이 아니라 인간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가진 인격체로서 이 세상에 계속 태어남으로써 절대적인 존재(궁극적 실재나 가치)의 도움없이 자신의 의식을 우주의식과 접촉케 해 자체 완성, 신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인간은 능동적인 존재가 되며 윤리 도덕적인 의무나 양심, 책임감을 고려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때 하느님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윤리 도덕적 가치, 공동체적 구원, 타인에게 개방된 현재의 삶이 들어설 자리는 하나도 없게 된다.
◆2. 그리스도 사상에 도전하는 사상
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서「제3천년기」에서「그리스도교의 계시는 환생사상을 완전히 배재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의 완성과 실현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고 인간의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특히 뉴에이지 경향을 띤 환생은 아무런 의무감과 윤리를 부과하지 않음으로써 편하게 살려는 오늘날의 사람들을 매혹시켜 그리스도교에 도전하고 있다. 환생은 그리스도교의 지상에서의 일회적인 삶을 부정한다. 환생론자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인간이 계속 태어남으로써 자아실현을 통해 스스로 구원된다는 명목 하에 죽음의 두려움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환생은 죽음을 통해 부활에 이른다는 신앙의 근원이 아니다. 즉 뉴에이지에서 제안하는 해방이란 그리스도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2) 환생은 그리스도교인의 희망에 도전한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겸손되이 스스로 구원될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과 나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환생사상에서는 이와 반대이다. 자기힘으로 구원되는 환생에서는 하느님의 용서나 은총, 구원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뉴에이지 형태로 나타나는 환생에서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 역사에 들어오신 자비로운 하느님을 부정하며 우리에게 더 풍성한 생명을 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멸망을 위해 노력한다. 그리스도인이 지상의 삶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응답하려고 노력하는 삶이라야 한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는 죽음 후에 하느님 안에서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영이나 천사가 아니다. 육신은 나라는 존재와 뗄 수 없는 부분인 성령의 궁전이다.
이것은 환생에서 육신을 경시하는 사상과는 정반대된다. 환생에서는 육신은 인간의 의식 확장을 통한 자기 구원을 위해 계속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잠깐 입었다가 벗어 버리는 옷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인간의 육신은 이와 반대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서 거룩한 것이며 영혼과 육신이 두 개로 완전 독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도 살았을 때와 같은 성품, 정체성과 인격성을 가진 육신 부활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한다. 이 무조건적인 선물은 거듭되는 환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으로 일어나며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벌써 완성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부활은 죽음 후에 다시 태어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 벌써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영혼과 육신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보증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시킨 하느님이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인의 죽을 육신도 살린다.
3) 신·망·애 3덕의 실천으로 환생사상에 대적
환생사상이 개인 경험, 개인의 구원만을 중요시 하는 데 반해 그리스도교는 개인 경험뿐 아니라 공동체적 경험과 공동체적 구원을 중요시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공동체의 형제애를 증거된 삶을 통해 이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부활에 도전하는 환생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 교회는 육신 부활이나 종말론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의를 미사 때나 강연을 통해 신자들을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비를 이 지상에서 사는「신·망·애」삼덕을 실천하는 증거의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는 신앙과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기쁨,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의 희망이다. 진정으로 삶을 산 사람들은 죽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환생론자들처럼 죽음을 회피하고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죽음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은 쓸모가 없게 된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라고 그리고 죽음을 초월하는 영원한 삶을 사랑하기 위해 불림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 계속적으로 되돌아오는 환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영원한 하느님의 삶에 참여하는것이다. 또한 인간으로서의 영, 육이 변형되어 승천하신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부활, 종말론적인 삶을 사랑하면서 지상의 삶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희망과 기쁨의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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