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참가자 사회: 노길명 교수<고려대 사회학과>김종수 신부<주교회의 사무총장> 이용훈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광 교수<고려대 한국사학과>
▩ 일시: 97년 3월 24일
▩ 장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소회의실
교회가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교회란 무엇이고,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떤 모습을 띄어야 하는지…
◆민족사와 교회사의 관계
사회: 우리 교회에서는 변화하는 세계사적 흐름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하고「2천년 대희년」을 뜻있게 맞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에서도 창간 7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의 과제와 그에 따른 대응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그동안 연재하던「광복 50주년 특별기획-한국 교회의 어제 오늘 내일」을「2천년 대희년을 향한 기획」으로 개편키로 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첫 출발로 2천년대를 향한 한국 교회의 과제에 관해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새로운 세기를 논하기에 앞서, 먼저 20세기에 전개되었던 민족사와 교회사간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조광: 20세기 한국 사회는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 상황, 식민 지배에 대한 투쟁, 분단과 민족상잔,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한 대장정 등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격심한 변화를 체험하여 왔습니다. 한국 교회가 한국사의 전개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미치고자 한 것은 해방 이후 남한의 교회를 통해서 확인됩니다. 특히 민주당 정권의 성립을 전후해서 한국 교회는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이「참여의 경험」은 1970년대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참여를 통해서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에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해 노력했을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언론, 사회복지 등 많은 활동을 전개하여 왔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민족의 구원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수단이 목적으로 전도되어 거대한 사업체 유지에 매달려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업들은 기본적으로는 교회의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지 국가를 약속하는 정부의 몫이고, 모든 시민들이 같이 공유해야 할 몫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단과 목적을 뚜렷이 구별하고, 이러한 활동들은 교회가 지향해야 하는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의 수단과 방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21세기의 한국 교회는 지난날과 오늘날 한국 교회가 체험해 왔던「피의 경험」과「참여의 경험」을 바탕으로「화해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방향을 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분단된 민족의 화해, 인류와 한민족의 화해, 민족 내부의 각종 갈등, 집단간의 화해를 위해 한국 교회가 투신함으로써 교회는 그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민족과 하느님과의 화해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 교회의 방향
사회: 지난 세기를 통해 한국 교회는 놀랄 만한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사회의 여러 모순과 풍조들이 여과되지 않은 채 그대로 교회로 이입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교회의 자정 기능을 약화시키고, 교회의 존재 목적을 잊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란 무엇이고,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이용훈: 한국 교회가 1970년대 이후 양적으로 급성장하였지만 제 기능을 펼치지 못한다는 비판의 소리도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신앙인들도 물질주의와 경제 제일주의에 의해 그릇된 풍조와 사상에 물들고 있으며 정신적으로 영성적인 가치들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의롭게 만들 수 있는 교회 정신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해답은 십자가 상에서 2천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서 찾아, 신앙인들은 소금이 짠 맛을 잃지 않도록 바른 자세를 갖고 빛이신 그리스도를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외적으로 안정된 현실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사회악의 정화조 역할을 다하는 희생적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곧 다양한 사명들을 유감없이 펼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간접적 선교 효과도 지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교회의 자정 기능이 제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앙인다운 삶 살아야
사회: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하느님 백성」인 신자들이 신앙인다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만, 그동안 연구되었던 조사 결과들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들의 의식 구조와 신앙생활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상당히 많은 신자들이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자부하면서도 생활에서는 비신자들의 삶과 별다른 차이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현상의 원인과 대책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용훈: 신앙인들의 의식 구조와 생활이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근본적으로 신앙생활의 회의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교회는 신앙심의 기반이 약한 자들을 쉽게 잃게 되는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교회 내의 권위주의적이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제거하고 나눔과 섬김과 사귐의 공동체 정신 구현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난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적인 측면의 강조와 더불어 생활 속에서 실제로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목적의식을 갖고 생동적으로 어떤 구체적 과제를 실천하는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정체성을 바로 인식할 때 결코 사회 안에서 통용되는 뿌리 깊은 구조악과 타협하거나 동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삶의 태도를 이기적「나」중심에서 공동체적「우리」중심으로 변화시키는 회개의 삶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거울삼아「나」자신의 변화를 통해 세상의 불의와 구조악들이 사라진다는 굳은 신앙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토착화 의미와 방향
사회: 복음이 이 땅에 육화되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그들의 생활에 와 닿는 소리로 전해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교리나 전례의 토착화가 시급히 요청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동안 이 주제에 관한 학술 토론이나 세미나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만, 오늘은 이러한 학술 모임에 오랫동안 관여해 오신 조광 교수께서 토착화의 의미와 방향에 관해 간단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광: 역사학의 입장에서 볼 때 전통(tradition)과 역사(history)간의 관계는 매우 긴밀합니다. 토착화는 곧 역사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는 곧 우리 한민족 신앙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2백여 년 동안 토착화의 길을 걸어왔고,「피의 경험」과「참여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상당히 토착화가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를 위해서는 우선, 성서의 가르침을 한국인의 시각과 정서에서 재해석하여 복음의 말씀이 생활화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서나 교회의 전통에 대한 연구가 우리의 시각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토착화 연구가 과거 지향적인 방향으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토착화는 신앙의 현재화이고, 미래 지향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으므로 현실 역사의 발전에 신앙인의 양심에서 참여하고 이바지함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신앙에 대한 연구와 현실 역사에 대한 참여문제가 계속 논의될 때 토착화는 올바로 진행이 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주술이 신앙에 미치는 영향
사회: 최근에 나타나는 여러 종교적 흐름이나 운동들도 가톨릭 신자들의 건전한 신앙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가치가 사회 통합의 뼈대를 이루던 전통 사회나, 이성과 합리성에 바탕을 두었던 산업 사회와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사회의 탈중심화 또는 파편화현상」때문에 전체 사회를 통합시키는 구심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인권, 정의, 평화 등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사랑, 자비, 노동, 금욕 등과 같은 윤리 덕목보다는 개인의 안녕과 평안을 중시하는 경향을 나타내게 됩니다. 최근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미래의 안녕을 보장하는 영술이나 비술 또는 미신적인 주술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영술이나 비술 또는「뉴에이지운동」(New-Age Movements)이 가톨릭 신앙에 끼치는 문제점은 무엇인지요?
김종수: 우선 그리스도 신앙의 개인화와 자연주의화를 문제로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앙의 개인화는 이미 인간 중심으로 넘어간 인본주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을 중심에 놓고 보게 되니까 절대적인 것이 없어지고 모든 것을 상대화하게 되어 진리나 가치에 관해 물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이룩해 놓은 것을 진리로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느님께 대한 예배는 순전히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노 교수께서 지적하신 대로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미래의 안녕을 보장하는 영술이나 비술, 미신적인 주술의 경향이 교회 안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건강 차원에서 하고 있는 운동들이 객관적 신앙을 주관화 하거나 자연주의화 하는 위험으로 흐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문다면 그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 신앙은 자연적인 현상과 동일시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구체적인 역사의 현장과 시간 안에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지난 주교회의 춘계 총회에서는「신앙을 해치는 흐름들과 운동들」에 관하여 논의하고 신자들의 올바른 이해와 실천을 위해 교육 자료를 내기로 하였습니다.
“교회의 본질·존재 가치는 영원”
변화엔 능동적 대처…초대 교회 모습 본받자
◆바람직한 사목 형태는
사회: 또한 최근에는 산업 사회를 특징지어온 조직화나 관료제화를 기피하고 그 대신 신뢰감과 따뜻함 또는 안락함을 찾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구에 맞추어 신도들간의 우애와 심리적 평화를 강조하는 신흥 종교들과, 동일한 종교적 체험과 욕구를 가진 자들이 컴퓨터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내는「사이버 릴리전」(cyber religion)과 같은 신흥 종교들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신흥 종교들이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등장하던 것과는 달리, 이러한 신흥 종교들은 모든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인들이 기성 종교를 통해서는 자신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도 소공동체운동이나 본당의 분할과 축소가 강조되고 있습니다만, 보다 중요한 것은 사목 방식의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의 바람직한 사목 방법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종수: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종교에 대한 현대인들의 기대에도 분명히 문제는 있습니다. 그 기대를 채워 주고자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을 변질시킬 수는 없겠지만 사목 방향의 전환을 통해서 현대인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바른 신앙의 실천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데에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지역 중심의 소공동체운동도 하고, 또 달리 여러 가지 뜻을 모아 함께 할 수 있는 단체나 모임도 활성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노 교수께서 지적하신 기성 종교들이 현재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첫째 가는 것은 본당 사목자들을 비롯해 모든 신부들이 관리자나 가르치는「교사」특히「윤리 교사」에 머물지 말고,「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목자의 모습으로 한 사람 한 사람 만난다면 상황은 훨씬 달라질 것입니다.
◆생명 복제에 대한 교회 입장
사회: 현대적 흐름에서 과학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은 그 자체가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발전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어 자칫 도덕적 윤리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할 수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뇌사나 장기 이식, 인공수정과 대리모, 그리고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생명 복제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 윤리로 연결되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용훈: 인간 생명의 창조는 하느님의 고유한 영역이기에 유전자의 조작으로 인간을 제조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극악무도한 반항이고 모욕적 행위이며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과학과 기술은 인간에게 봉사하는 데 사용되고 인간 생활의 선익을 증진시키는 경우에만 온당하는 것이 교회의 변함없는 입장입니다. 인간 생명 조작에 대한 연구는 그 자체로 도덕률에 위반되는 것이기에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인간 생명의 시작과 그 진행 과정, 죽음 등은 언제나 인간적 기본권과 품위를 갖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복제인간의 출현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 결혼과 가정의 제도, 가족 개념, 사회의 질서와 안정성 등이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교회는 모든 국가 공동체들이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법률의 빠른 제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의학도와 과학자의 호기심과 성취도, 만족도만을 고려한 일체의 비인간적, 반사회적, 반문명적, 비윤리적 인간 생명 실험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도전하고 항거하는 생명 실험들이 지구와 세상의 비참한 종말을 자초한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민족일치 위한 교회 활동
사회: 이제, 관심을 민족문제에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북녘 동포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명분을 내세워 외면하는 것은 분명 죄악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생명은 그 어느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황 성하께서도 북녘의 식량난 해결에 도움을 주시고자 성금을 보내시며 한국 교회의 보다 큰 관심과 애정을 촉구하신 바 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그동안의 교회 활동과 함께, 앞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들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조광: 오늘날 우리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남북한 사회에서는 현실의 모든 문제점을 분단이라는 상황에 귀결시키고, 통일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통일지상주의적 발상이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남북한의 정치 지도자들은 통일을 외쳐 오면서도 행동으로는 반통일적 작태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통일이라는 용어는 오염되었고, 통일이 곧 이상 사회의 실현이라고 볼 수도 없으므로 우리에게는 새로운 개념의 발굴이 요청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95년에 서울대교구에서는 민족화해위원회를 발족하여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 관한 메시지를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전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은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사회에도 모두 요청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는 분단과 불화에 대한 통감과 함께 자신의 희생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와 신도들은 극심한 식량난에 처한 북녘의 형제들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협조하고 식량을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이 차원에서 볼 때 민족화해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수 나누기 운동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편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 민족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은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에게로까지 확대되어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 화해와 일치의 신학을 정립하여 분단된 민족에게 제공해야 하며,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구체적 노력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의 연대를 강화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대희년과 공동 사목교서의 의미
사회: 2천년대를 눈 앞에 둔 현재, 우리 교회는 안팎으로 많은 도전과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94년, 교황 성하께서는 2천년 대희년 준비에 관하여 주교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교서「제삼천년기」를 반포하셨고, 한국 주교회의도 지난 3월「구세주 강생 2천년 대희년」의 정신을 익히고 실천할 수 있도록 공동 사목교서「대희년을 바라보며」를 발표하였습니다. 대희년의 의미와, 이번에 발표된 공동 사목교서의 의미를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종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제삼천년기」는 특히 지난 천년기의 우리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반성하고 새로운 천년기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새로 나려는 다짐과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주교회의도 교황교서「제삼천년기」를 바탕으로「2천년 대희년 주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희년 교육 자료를 내고,「대희년을 바라보며」라는 표제로 공동 사목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대희년은 어떤 행사를 치르자는 것이 아닙니다. 희년의 정신은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그리스도처럼 살아서 희년을 실현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정신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교회의 춘계 총회에서 반포한 공동 사목교서는 역사와 시간의 주인이신 주님을 신뢰하면서 신앙에 반대되는 어떤 흐름이나 주의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서는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에 대한 모든 이의 책임을 일깨우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기본적인 병폐의 원인이 물질주의에 대한 집착과 권력, 명예 추구에 있다고 진단하고, 그 유혹들을 이겨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모두가 거기에서 자유로워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사회 안에서 교회가 가야 할 길을 크게 몇 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초대 교회의 모습을 모범으로 삼아 본당과 본당, 교구와 교구, 지역간의 경계를 넘어서 나눔의 정신을 실천할 것을 촉구합니다. 여기에는 북한 돕기도 포함됩니다. 또 횡재를 꿈꾸지 않고 자기 노동의 결실로 살아가는 깨끗한 사회,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사회를 이룩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복음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은 각 교구의 사정에 따라따로 마련되고 제시될 것입니다.
◆새로운 물결 적극 수용
사회: 세상이 변한다고 해서, 교회의 본질이나 존재 가치가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하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도 많습니다. 교회는 이 변하지 않는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 박혀 있으며, 그분은 과거에도 오늘도 그리고 또 영원히 존재하시리라는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할 때, 교회는 거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생명력과 역동성은 변화되는 조건에서 갖는 복음의 의미와 그것을 선포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되물을 때에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복음의 본질과 그 실존적 의미를 되묻는 작업은 교회의 존재 의미와 시대적 사명을 밝히는 길이며, 쇄신의 길이기도 합니다. 이제, 새로운 천년기가 희망과 불안을 함께 안은 채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물결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복음은 우리의 역사와 사회 안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육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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