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우리가 북한을 돕는 문제는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이며 우리는 그들을「가족」이라는 의식으로 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우리가 북한을 돕지 않아서 북한이 정말 붕괴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통일을 향해 그들을「연착륙」으로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가톨릭신문 창간 70주년을 기념, 본사 이윤자 취재국장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힌 김수환 추기경은『북한을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으며 내일이라도 갈 수만 있다면 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토로하고『서울대교구에서는 통일사목을 전담할 기구가 곧 가시적으로 드러날 것』이라며 통일에 대비한 교구의 준비 상황을 털어놨다.
최근의 국내 정치상황과 관련 김 추기경은『이 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정치하는 분이나 우리 모두가 참된 가치관을 잃은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지금이야말로 정치인들부터 누가 먼저 주도권을 잡느냐 하는 문제에서 벗어나 정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살리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회가 제 자리를 찾고 모두가 함께 살아 나가기 위해 신자와 교회가 할 수 있는 방안은 사도 바오로가「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라고 말했듯이「그리스도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신앙의 가치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라고 피력한 김 추기경은『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복음화되고 복음을 사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재삼 강조했다.
김 추기경은 또한 가톨릭신문 창간 70주년을 맞아 교회 발전에 일익을 담당한 노고를 치하하고『앞으로도 교회 안의 소중한 언론매체로써 복음말씀의 전달자, 복음화의 도구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 4월 1일로 가톨릭신문 창간 70주년이 되었습니다. 격동기「가톨릭시보」사장을 역임하셨던 추기경님께 깊이 감사드리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선 독자들과 직원들에게 덕담 한 말씀 들려 주십시오.
교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
=가톨릭신문 70주년을 정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랜 세월동안 가톨릭신문은 교회 안에서 언론 매체로서의 소중한 역할을 다해왔고 교회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해 왔습니다. 제가 한 2년간 책임자로 있었지만 그전에 아주 어려웠을 때에 거의 혼자 힘으로 지켜온 윤광선 선생 등을 비롯 그 이후로 헌신적인 봉사를 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당시「가톨릭시보」는 신자들에게 참으로 사랑 받는 신문이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교회 안에 소중한 언론 매체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해나가는 복음 말씀의 전달자, 복음화의 도구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해나가기를 기대합니다.
▲ 봄 주교 총회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주교단은 대희년을 향한 공동 사목교서를 발표했습니다. 공동 사목교서에서 주교님들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공동 사목교서를 통해 주교단이 말씀하시는 핵심적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정신 되찾기
=지적하신 대로 2천년 대희년 주교단 공동 사목교서의 핵심은「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크리스찬인 우리부터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께 달려 있다는 확신 속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되찾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은「소금의 짠 맛을 다시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정신적 공백과 가치관 부재 현상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최고의 가치가 바로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잊고 오로지 물질주의만을 추구하는 현상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회개」라고 교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단순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시련이 수반됩니다. 따라서 인간의 힘만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의 힘에 따라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맡길 때만이 하느님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찾을 수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겐「우리의 희망은 하느님뿐」이라는 적극적 선택과 삶이 요구됩니다.
▲ 최근 한보사태를 중심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면 공동 사목교서의 말씀들은 참으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정치 사회적 문제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 지경으로까지 몰고 갔을까요. 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정쟁은 그만 경제 살릴 때
=최근 일련의 상황들은 정치하는 분이나 우리 모두가 참된 가치관을 잃은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우리 모두는 요즘 인간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중요한 가치를 생각하기보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나 재물, 권력에 기울어진 삶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언론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문제가 온통 한보사태나 현철씨 문제에만 달려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김현철씨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다루면서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줄 아는 냉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무엇이 지금 우리한테 더 소중하고 더 필요한 문제인지 식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최근 신문을 보니까 이제 정쟁은 그만두고 경제를 살리자는 쪽으로 나라의 힘을 쏟아야 한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정치인들부터 누가 먼저 주도권을 잡느냐 하는 문제에서 벗어나 정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살리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 우리 사회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엔 자포자기와 자괴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속에서 우리 교회 역시 사회 정화라는 본래의 사명은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사회가 제 자리를 찾고 모두가 함께 살아 나갈 수 있기 위해 교회와 신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교회도 중심을 잃고 있어
=교회도 어떤 의미에서 중심을 잃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물어 온 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과 교회가 지켜야 할 가치는 세속적인 가치라 할 돈이나 권력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라고 한다면 정말 예수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오로가『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라고 말 했듯이 내가 그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와 가까운 생활을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신자로서 또 교회로서 지켜야 할 가치이고 잃어서는 안 될 것이며 어떤 의미로는 우리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특별히 성직자 수도자들이 정말 깊이깊이 반성하면서 내 삶이 정말 그리스도와 가까운지 자성해 봐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좋은 것을 서로 나누고 싶어 하듯이 스스로「그리스도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라고 느낄 때 또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느낄 때 내가 다른 이에게 꼭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복음화되고 복음을 사는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같은 삶의 자세는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참으로 필요한 조건들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 교회가 청소년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 추기경님께서는 2년 전 본보와의 신년 인터뷰를 통해 방북을 언급하셨고 결국 북한 지원문제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현재 식량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북녘 형제들을 돕기 위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보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아직도 방북 희망 의사는 유효한지요.
방북, 할 수만 있다면…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내일이라도 갈 수만 있다면 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여러 사정상 갈 수가 없지만 저는 만나는 사람마다 북한을 가 볼 수만 있으면 가 보라고 권합니다. 자주 만나다 보면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역할도 될 것입니다. 왕래가 잦다 보면 북한이 조금씩 조금씩 모르는 사이에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돕는 문제는 현재 최창무 주교님이 전개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국수 나누기」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돕는 일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돕지 않고서 붕괴되는 걸 기다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막다른 길목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모를 일입니다. 세계식량기구에서는 현재 2백40만 명의 어린이들이 아사 직전에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3월 혹은 4월 안에 북한의 식량 배급이 끊긴다고 합니다. 현재 처해 있는 남한 사회 문제도 문제지만 평화통일을 위해서 북한을 적극 도울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의식을 가져야만 합니다. 먼훗날『너희가 언제 우리를 도왔느냐』고 한다면 우리는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보낸 쌀이 군량미로 전용될 염려가 있을지라도 결국 그것을 먹는 군인들은 남한에서 온 쌀임을 알게 되기 때문에 그들의 의식 변화에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돕지 않아서 북한이 정말 붕괴된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통일을 향해 그들을 연착륙으로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 평양교구장 서리이자 황해도 일원을 관할 하에 두고 있는 추기경님께 여쭙겠습니다. 특별히 아시아 복음화와 북한의 재복음화에 대한 한국 교회의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중국과 북한 교회를 위해 한국 교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통일사목 전담 기구
=아직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통일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사제파견 문제에 이르기까지 내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현실적 필요성에 따라 우리 교구에서는 아마 곧 통일사목을 전담할 기구가 가시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봅니다.
중국의 경우 등소평 사후 10월로 예정된「전인대」이후에 나타날 권력의 향배에 따라 상황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대 중국 선교를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현재 중국 자체가 선교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전환하는 시점에 있습니다. 서울대교구를 포함, 여러 교구에서 해외로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도 이 같은 전환의 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해외 선교는 걸음마 단계 즉 시작에 불과합니다. 더욱더 많은 노력을 통해 남을 도울 수 있는 정신적 물질적 토대를 갖추는 일이 필요합니다. 자기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선교하는 교회, 국내 선교만이 아닌 세계를 위한 선교의 사명을 느끼는 교회로 변화될 때 중국 선교 나아가 북한 선교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러자면 그 나라에 뼈를 묻을 수 있는 경지에까지 도달해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 교회가 더욱 성숙돼야 합니다.
▲ 추기경님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막바지인 1964년과 65년에 걸쳐「가톨릭시보」사장을 지내셨습니다. 그 기간 중 참으로 신명나게 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기억에 남는 추억담을 들려 주십시오. 또한 신문사 대선배로서 같은 길을 선택한 후배들에게 격려 말씀 주십시오.
취재 보급 수금 등 1인 다역
=당시 기사 작성은 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중심으로 한 외신 번역, 신문 보급, 수금, 광고에 이르기까지 일인 다역을 담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경우 통신사에 20만 원(당시로서는 상당한 금액)을 주고 공의회 관련 기사는 모조리 받아 번역 게재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광고를 얻으러 전국을 다녔지만 허탕도 많이 쳤지요. 그러나 돌아가신 현 하롤드 대주교님을 광주교구로 찾아 뵈었을 때 밀린 신문 대금을 흔쾌히 주셨던 기억은 지금도 즐겁습니다. 타 교구 본당 방문 때는 사무실에서부터 서러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사제라는 신분을 확실하게 밝힐 때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았지만요. 지금도 이 같은 현상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밀씨는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가톨릭신문의 현재는 그런 결과로써 오늘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몸 담고 있는 여러분들 역시 땅에 떨어져 썩는 밀씨가 됨으로서 80주년 90주년 그리고 1백주년을 바라보는 신문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선, 모든 좋은 일은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가톨릭신문 창간 7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교회와 사회를 밝혀주는 언론으로서 새로운 장을 열어 가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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