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대구대교구 청년회 가톨릭신문 전신「천주교회보」창간
1927년 4월 1일 대구교구 청년연합회는 교육 출판 사업의 일환으로 4·6배 판의 천주교회보를 창간했다. 천주교회보는 이후 53년에 가톨릭신보로, 54년 가톨릭시보, 80년 가톨릭신문으로 제호가 바뀌었으며 현재 주 20면을 발행하는 한국 교회 유수의 신문으로 성장했다.
◆1929년 교황청 이탈리아와 라테란조약 체결
무솔리니와 교황 비오11세가 맺은 라테란조약은 이탈리아와의 오랜 분쟁을 종식하고 바티칸시국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회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1930년 신자 10만 명 돌파
1930년 말 현재 한국 천주교회 교세는 5개 교구에 신자 수 11만7백28명으로 집계됐다. 한국인 신부는 64명, 외국인 신부 93명, 한인 수녀 1백76명, 외국인 수녀 36명, 본당은 1백3개, 공소는 1천3백 개로 드러났다.
◆1931년 9월 9일 조선교구 설정 1백주년 기념행사 서울 등 전국서 개최
조선교구 설정 1백주년 축하식 및 경축 행사가 1931년 9월 26일 순교복자축일을 기하여 서울을 비롯 평양 대구 일본 동경 간도 용성 등 국내외 각지에서 성대히 거행됐다.
이날 서울에서는 교황 대사 국내외 주교 성직 수도자 평신도 등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계성여학교 운동장에서 경축 행사가 베풀어졌다.
◆1931년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 설립
바티칸시에서 송신되는 가톨릭 복음 방송으로 단파를 이용하여 전 세계로 방송이 시작됐다. 무선 통신의 아버지 마르코니경이 설계와 시설을 맡은 라디오 바티칸은 라디오라는 새로운 매체의 활용 가치를 인정한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설립됐다.
◆1931년 대 사회 회칙「40주년」(과드라제시모 안노) 발표
레오 13세의「새로운 사태」반포 40주년을 기념하고 나아가 현대 사회의 특성과의 연결을 꾀하기 위해 교황 비오 11세는 노동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당시의 제문제에 대한 담화 형식의 회칙이다. 이 회칙은 레오 13세의 노선을 같이하고 있으며 전적으로 복음의 조명 아래 새로운 규정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1933년 6월 10일 조선 5개 교구 연합 월간 청년지「가톨릭청년」창간
일제하의 대표적 월간잡지의 하나. 1933년 3월 6일 서울 대구 원산 평양 연길 5개 교구장들은 각 교구별로 발행하던 출판물을 통제하기 위해 새로 지식 청년들을 상대로 한 가톨릭청년을 발간키로 결정했다.
◆1939년 교황 비오 12세 즉위
2차대전과 격동의 시기에 재임한 비오 12세는 성모 몽소승천 교리를 발표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1949년 8월 26일 대한천주교연맹 결성
산발적으로 추진되어 온 가톨릭운동을 통합하여 본격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결성된 한국 가톨릭 평신도운동의 중앙 추진 단체이다.
◆1950년 11월 1일 성모 몽소승천 교의 발표
교황 비오 12세의 원죄없이 잉태된 천주의 모친의 육체적인 승천에 대한 교리 결정은 교황직의 신학적 절정을 이루었다.
◆1951년 로마에서 제1회 신도사도직 세계 회의 개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교황 비오 12세는 가톨릭 액션의 새로운 기초를 놓았는데 그는 1951년 로마에서 신도사도직 운동을 위한 제1차 세계 대회를 개최했다.
◆1953년 5월 레지오 마리애 한국 도입
1953년 5월 광주대교구장 서리 겸 성 골롬바노 외방전교회 광주지부장 헨리 신부 지도 아래 목포 산정동본당에「치명자의 모후」「평화의 모후」쁘레시디움을, 경동본당에「죄인의 의탁」쁘레시디움이 설립됨으로써 레지오 마리애가 한국에 정식 도입됐다.
◆1956년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 CELAM 창설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는 남미 22개국 주교 회의를 대표하는 기구로 2차 바티칸 공의회 가르침 구현에 초점을 맞춰 중남미지역에서 교회활동의 공동 보조를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58년 10월 28일 교황 요한 23세 등극
비오 12세에 이어 교황으로 등극한 요한 23세는 23명의 새 추기경을 탄생시켰으며 추기경들에게 로마를 위한 교구 시노드와 일치공의회 개최 및 교회 법전의 개정이라는 3대 과제를 제시했으며 그의 재임 당시 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은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1960년 교황 요한 23세 그리스도교 일치 추진 사무국 설치
그리스도교 일치 사무국은 교황청 행정기구 중의 하나인 교황청 사무국의 하나로 사회 속에 생동하는 교회로 부각되기 위해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창설됐으며 그리스도인들간의 일치 업무를 담당한다.
◆1962년 3월 10일 한국 교회 자치 교계 제도 설정
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 3월 24일자로 한국에 3대 교구를 설정하고 노기남 서정길 하롤 드헨리 주교를 대주교로 임명했다. 이에 따라 대목구이던 한국 13개 교구가 정식 교구로 승격, 서울·대구·광주는 대교구로 승격되어 대주교 관구로 나뉘어져 한국 교회 교계 체계가 확립됐다.
◆1962년 10월 11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교회의 현대 적응」을 이념으로 전 세계 2천6백여 명의 추기경 총대주교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됐다.
◆1963년 교황 바오로 6세 즉위
선임자 요한 23세의 과업을 이어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속개한 교황 바오로 6세는「평화의 사도」「교회 일치의 주역」으로 불렸으며 대내적으로는 교회 내의 개혁과 성청의 개혁을 대내적으로는 사회 정의 추구와 교회 일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1965년 로마, 콘스탄티노플 상호 파문 파기
1965년 12월 7일 교황 바오로 6세는 과거의 과실을 속죄하기 위해 1054년 로마와 비잔틴이 서로 파문하고 그래서 대 이교를 초래하였던 파문 선고의 폐기를 선고했다.
◆1965년 12월 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전체 4차 회의로 진행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장, 교의헌장, 계시헌장, 사목헌장을 비롯 9개 교령과 3개 선언 등 16개 공식 문헌이 발표됐다.
◆1965년 1월 1일 한국어 미사 경본 사용 시작
현재 사용 중인 미사 경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개정된 것이며 교황 바오로 6세가 1967년 5월 4일 미사 전문까지 모국어 사용을 허가함으로써 완전한 모국어 미사 경본이 되었다.
◆1965년 9월 15일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창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선정된 주교들이 전체 교회와 관련된 중요 문제들을 협의하여 교황을 보필하는 상설기구인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가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창설됐다. 이는 주교단의 단체성을 반영한 것이며 1965년 10월 28일 반포된 주교 교령에서 이를 규정하였다.
◆1968년 한국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중앙협의회 결성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1968년 대전에서 한국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중앙협의회가 결성됐다. 이로써 한국 교회 평신도들의 활동이 촉진됐으며 1968년 10월 주교회의는「평신도의 날」을 제정하여 신도사도직 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
1866년부터 1873년 대원군 실각까지 순교한 8천 내지 2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을 위해 1890년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는 순교자들의 기록을 모아「치명일기」를 간행했고, 여기에 수록된 8백77명의 순교자 중 24위가 1968년 복자위에 올랐다.
◆1969년 3월 28일 한국 최초 추기경 탄생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가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서임됨으로써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탄생했다.
김 추기경의 서임식은 4월 30일 로마에서 거행됐다.
◆1970년 8월 4일 평신도 성체 분배권 부여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는 70년 8월 4일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 교서 4504~70호에 의거 평신도를 포함한 사제 아닌 다른 사람에게 미사 중 성체 분배를 돕도록 평신도들에게 권한을 부여했다.
◆1971년 토요 특전미사 시행
일요일과 의무 축일 미사를 전날 저녁 미사에 참례하여 주일과 파공의무를 대신할 수 있는 특전미사를 한국 주교회의는 1969년 결의를 거쳐 교황청에 신청하여 1970년 그 시행 권한을 부여받아 1971년부터 토요 특전미사를 시행했다.
◆공동 번역 성서 71년 4월 3일 출간
1967년 4월 26일 일치위원회가 개신교와 성서 공동 번역을 합의한 이래 4년 만에 공동 번역 성서가 출판됐다.
◆1971년 11월 14일 한국 주교단 공동 교서 발표
한국 천주교주교단은 1971년 11월 14일 제 4회 평신도의 날을 맞아 전국 신자들과 선의의 형제들을 향해 오늘의 부조리를 극복하자고 호소하는 공동 교서를 발표했다.
◆1974년 8월 26일 지학순 주교 체포 15년 선고
1974년 내란 선동과 긴급조치 14호 위반으로 지학순 주교가 체포되어 징역 15년 자격 정지 15년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 구속 정지로 석방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활동이 개시됐다.
◆1975년 2월 26일 한국 외방선교회 창립, 1981년 4명의 신부 파푸아 뉴기니에 파견
75년 창립된 한국 외방선교회가 81년 11월 8일 명동대성당에서 김진형·연제식·방상복·김동기 신부 등 4명의 사제 파견식을 거행했다. 한국 교회는 이날 사제들의 파견을 기점으로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탈바꿈했다.
◆1976년 3월 1일 3ㆍ1절 기념 미사 후「민주구국선언문」발표
1976년 삼일절 미사 후 민주구국선언문 발표로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다수의 사제가 체포되는 소위「3·1 명동사건」이 발생했다.
◆1976년 4월 21일 1백3위 한국 순교복자 시성 청원서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
한국 주교회의가 교황청 시성성에 시성 청원서를 제출하고 시성 추진위원장에 김남수 주교를 선임했다.
◆1978년 8월 26일 요한 바오로 1세 교황 즉위
교황 선거에서 이례적으로 첫날의 두 번째 투표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는 인간미와 소박함으로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는 교황 등극 2달 만에 급서, 전 세계 교회에 충격을 주었다.
◆1978년 10월 1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즉위
16세기 하드리아노 6세 교황 이후 최초의 비 이탈리아인 교황으로 요한 바오로 2세가 즉위했다. 폴란드 출신인 그는 또한 사상 초유의 공산권 출신 교황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1979년 마더 데레사 노벨 평화상 수상
사랑의 선교회를 창설, 인도의 빈민가에 뛰어들어 가장 가난한 이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살아있는 성녀 마더 데레사가 수상한 노벨 평화상은 그녀의 큰 사랑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1981년 10월 18일 조선교구 설정 1백50주년 기념 신앙대회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장엄하게 개최된 조선교구 설정 1백50주년 기념 신앙대회에는 전국 각 교구에서 80만 명이 넘는 신자들과 5백여 명의 사제들이 참석했다. 이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신앙대회가 하늘나라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축하 메시지로 한국 교회를 격려했다.
◆1981년 5월 13일 요한 바오로 2세 피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1년 5월 13일 일반 알현 도중 터키의 알리 아그자에 의해 저격당했다. 교황은 총격 직후 로마 제멜리병원에 입원, 6개월간의 투병생활을 했다. 저격범 아그자는 이탈리아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82년 미 문화원사건 발생
1982년 3월 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관련, 수배 중인 문부식 등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원주교구 최기식 신부가 구속됐다.
◆북한 선교부 출범
한국 천주교회 선교 2백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1982년 12월 12일 북한 선교부가 출범, 북한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83년 특별 성년 선포
1982년 11월 23~26일 바티칸에서 열린 추기경 회의에서 1983년을 구원의 특별 성년으로 선포했다. 성년에는 대사를 베풀고 신자들이 영적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1983년 1월 25일 새 교회법 공포
1959년 요한 23세 교황이 교회법 개편 의사를 발표하고 교황 바오로 6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입각한 점진적 개혁이 결실을 맺어 1983년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회 법전을 공표했다. 이 법전은 1983년 11월 27일부터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법적 효력을 발했다.
◆1984년 맹인 무료 개안수술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영세민 실명자들에게 무료 개안수술을 실시해 사회복지사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811년 교황 성하께 올린 조선 천주교회 신자들의 서한 원본 발견
지금까지 유실된 것으로 알려진 1811년 조선 신자들이 교황 성하께 올린 서한이 1984년 2월 9일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고문서고에서 윤민구 신부에 의해 발견됐다.
◆1984년 5월 3일 교황 첫 방한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 행사 및 한국 순교 성인 시성식 거행을 위해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처음으로 사목 방문차 내한했다.
◆1984년 5월 6일 한국 순교 성인 시성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백만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한국 순교복자 1백3위가 성인품에 올랐다.
◆1984년 11월 30일 2백주년 사목회의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을 기념, 준비되어온 2백주년 사목회의는 1984년 5월 교황 임석하에 개막된 바 있으며 11월 30일 4년간 준비해온 12개 사목회의 의안을 확정했다.
◆1985년 2월 20일 한국 가톨릭 대사전 간행
한국 교회사 연구소가 5년간에 걸친 노력 끝에 85년 2월 20일 가톨릭 대사전을 펴냈다.
◆1985년 3월 12일 한국 1백3위 순교 성인들의 축일을 의무축일로 선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85년 3월 12일 한국 순교 성인들의 축일을 세계 공용 의무축일로 선포했다. 이로써 한국 순교 성인들의 순교 정신이 본격적으로 세계로 확산됐다.
◆1985년 9월 22일 북한 땅에서 40년 만에 미사 봉헌
남북한 고향 방문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한 지학순 주교가 85년 9월 22일 북한 땅에서 40년 만에 감격적인 미사를 봉헌했다.
◆1985년 말 신자 수 2백만 명 돌파
1930년 신자 수 10만 명 돌파한 이래 1974년 말에 신자 수가 1백만 명을 돌파했으며 11년 만인 1985년 말에 신자 수가 2백만 명을 넘어섰고 복음화율 4.88%를 기록했다.
◆1986년 모든 주일 교중미사
주교회의는 1986년 1월 1일부터 교중미사 의무에 관해 규정을 시행키로 했다. 교구장 주교와 교구장 직무대행 및 본당 주임신부는 모든 주일과 의무축일에 한 번씩 백성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했다.
◆1987년 5월 18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범인 조작 성명 발표
정의구현 사제단은 19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식을 통해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 조작됐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19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 개최
제 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가 89년 10월 4일부터 8일까지「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개최됐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서울 세계성체대회는 전 세계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여의도 광장에서 장엄하게 개최됐다.
◆1989년 교황 2차 방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행사를 주례하기 위해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1990년 4월 15일 평화방송 개국
1990년 4월 15일 한국 교회 사상 최초로 평화방송이 개국돼 이날 오전 11시 정규방송 전파를 발사하면서 미디어 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
◆1992년 형법 개정안 폐지 서명 국회 제출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태아생명 수호를 위해 형법 개정안 제135조 폐지 낙태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1백만 명 서명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92년 말 신자 3백만 명 돌파
1985년 말에 신자 수가 2백만 명을 넘어선 이래 7년 만인 1992년 말 한국 가톨릭교회 신자 수가 3백만 명을 돌파했다.
◆1993년 3월부터 가톨릭 종교 교과서 최초 발행
가톨릭교육재단협의회는 가톨릭 종교 교과서를 발간하고 이를 교육부 검인정 교과서로 등록, 93년 3월부터 정식 교과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4년 6월 10일 성직자 납세 전국으로 확산
1994년 6월 10일 수원교구를 시작으로 성직자 납세 전국적으로 실시돼 교회의 이미지를 보다 새롭게하는 데 한 몫 했다.
◆1994년 9월 4~9일 아시아 평신도 회의 개최
94년 9월 4일부터 9일까지 수원 아론의 집에서 아시아 15개국 평신도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아시아 평신도들의 사회교리 실천을 주제로 아시아 평신도 회의를 개최했다.
◆1994년 교황청 이스라엘 외교 수립
바티칸과 이스라엘은 45년간의 외교 단절을 끝내고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1993년 12월 30일 상호승인 기본협정 서명에 이어 94년 6월 15일 전격적인 외교관계 수립으로 교황의 이스라엘 방문 길이 열렸다.
◆1994년 11월 4일 교황교서「다가오는 2천년대」발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4년 11월 14일 세 번째 천년대를 시작하는 기점인 2천년 대희년을 앞두고 그 의미와 준비 계획을 전 세계에 알리는 교황교서「다가오는 2천년대」를 발표했다.
◆1995년 4월 16일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공포
1992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최종 확정된 한국 사목 지침서가 통과됐다. 교황청에서는 한국 교회 사목지침서가 선교지방의 교회법으로서는 최초이기에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면밀한 검토를 했다.
◆1995년 6월 6일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
한국의 민주화 성지인 명동성당에 역사상 처음으로 문민정부에 의해 공권력이 투입됐다. 한국통신 노조원들의 파업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문민정부가 명동성당에 무리하게 공권력을 투입함으로써 교회 안팎의 거센 반발을 샀다.
◆1995년 10월 30일 민족화해일치 주제 남북 신자 첫 통일 세미나
1995년 10월 30일 미국 뉴저지 포트리시 힐튼호텔에서「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주제로 한 남북한 신자 첫 통일 세미나가 개최됐다.
◆1996년 8월 15일 민족화해위원회 북한 동포와 국수나누기 운동 전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96년 광복절을 기해 북한 형제와 국수 나누기 운동을 전개해 한 달 만에 45억 원의 신립금을 약정받는 등 북녘동포돕기에 불을 당겼다.
◆1996년 9월 15일 김대건 순교 1백50주년 기념 신앙대회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주년 기념 행사가 1996년 9월 15일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이날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19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 이후 최대 규모의 신앙대회를 개최했다.
◆1996년 동티모르 벨로 주교 노벨 평화상 수상
동티모르의 독립운동을 주도해온 동티모르 딜리교구 벨로 주교가 동티모르 저항운동연합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97년 4월 1일 가톨릭신문 창간 70주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대변지 가톨릭신문이 창간 70주년을 맞아 민족의 복음화와 통일을 향한 거보를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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