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이 창간 70주년을 맞아 아시아 복음화를 향한 대장정에 나선다.
2천년 대희년을 2년 6개월여 앞두고 전 교회가 3천년기를 향한 쇄신의 거보를 내딛고 있는 가운데 본지는 바로 이 다가오는 3번째 1천년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아시아 교회를 집중 탐구한다.
이 같은 기획은 창간 70주년을 맞으며 세계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화율이 2.76%에 그치는, 그러나 어느 대륙보다 활력이 넘치고 성장 추세에 있는 아시아 교회의 엄청난 잠재력과 선교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또한 한국 교회가 아시아 특히 중국과 북한의 복음화에 적극 나설 수 있는 동기를 발견하기 위함이다.
아시아는 몽고족 인도-이란족 티베트 지나족 퉁그스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인종,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한 인도문화와 한자 유교사상을 근간으로 한 중국문화 영향의 수준 높은 독자적 문화들을 이룩하고 있다.
교회가 주목하고 있는 아시아 교회의 중요성은 이 같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엄청난 인구, 더불어 열정적 신앙심이라 할 수 있다.
지리상 발견을 계기로 선교가 본격화되었던 아시아는 유럽의 40.13% 아메리카 63.82% 오세아니아 26.59% 아프리카 13.85%에 비할 때 형편없이 낮은 복음화 수치를 보이고 있지만 한편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어느 대륙보다 활력이 넘치고 잠재력과 선교 가능성이 풍부한 대륙으로 인지되고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 전 교회의 중점적 북방선교 대상으로 꼽히고 있는 중국은 엄청난 인구 경제적 잠재력으로 향후 아시아 세계 교회의 히든 카드가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본보가 마련하는 「아시아 교회가 간다」 특별기획 시리즈는 필리핀 중국 베트남을 비롯 동티모르까지 아시아대륙 내 가톨릭교회가 갖고 있는 선교 현황과 잠재적 선교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96년 앗 리미나에서 지적한 대로 한국 교회는 아시아와 중국 북한의 복음화를 위한 적극적 자세를 요청받고 있다. 이 같은 복음화 소명을 달성키 위해서는 아시아 각국 교회와의 연대작업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신문이 준비하는 「아시아가 간다」 기획은 아시아 교회 각국의 교회 실태와 역량을 살펴봄으로써 아시아 교회를 알고 그 경험들을 함께 나누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필리핀 교회를 그 첫편에 담게 될 이 시리즈는 각국 교회 모습을 현지에서 직접 취재 생생한 르포 형식으로 소개된다.
7천1백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해양성 열대기후 상하의 나라, 8백여 종의 난초, 최소한 56종의 박쥐가 있을 만큼 풍부한 원산 동식물들, 값싼 여행 비용 투명한 바다와 아름다운 산호섬이 무공해 자연환경 속에서 사람들을 반기는 나라.
한편 독재자 마르코스가 남긴 부패 체재와 한 세기 동안 속국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던 영향으로 경제적 면으로 가난한 제3세계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 필리핀.
그러나 전 국민의 85%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은 신앙적 면에서 양적 질적으로 가톨릭교회 안의 제1세계라고 칭하기에 어색함이 없는 곳이다.
「아시아의 바티칸」이란 닉네임처럼.
필리핀이 가톨릭 국가라는 것은 택시를 이용할 때 가장 쉽게 피부로 느껴진다. 대부분의 택시 운전사들은 차 안에 십자가 묵주는 물론 예수성심 사진과 성모 사진을 모셔놓고 있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집 대문마다 걸린 성화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동네 이름들 역시 한결같이 성인 성녀의 명을 따르고 있다.
마닐라대성당을 비롯 큰 성당에서는 평일엔 네 차례 정도 미사가 봉헌되고 주일이 되면 슈퍼마켓 백화점 등에서도 미사가 거행된다.
정부의 각료 회의나 국회도 정중한 기도로 시작하며 각 지역 본당은 주보축일이 되면 「바리오 피에스타」라는 축제를 벌인다. 이 같은 축제들은 필리핀 국민들에게 종교적 모습이라기보다 하나의 전통으로 뿌리내려져 있다.
97년 성 주간이 시작된 3월 23일 성지주일에도 전례와 생활이 접합된 여러 모습들이 목격됐다. 이날 필리핀 수도 마닐라 시내 곳곳에서는 코코넛 가지로 만든 성지가지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가 주일미사 참례를 위해 찾았던 마닐라 그린힐 지역의 「메리 퀸」성당 앞에서는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설날 복조리를 만들어 팔듯 여러 상인들이 색 리본과 꽃으로 장식한 1미터 크기의 코코넛나무 성지가지를 진열해 놓고 신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손에 손에 성지가지를 들고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은 미사 주례 사제가 입장하자 성지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광경이 동양의 한 열대나라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자녀들과 함께 성지축성 예절과 미사에 참례한 조세핀 멘도사(35)씨는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자신들의 나라가 지역간 일치를 이루고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가톨릭의 통일된 신앙과 종교의식이 밑바탕을 이루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역사
필리핀 남쪽에 위치한 시부(CEBU)섬은 하얀 모래가 깔린 해변과 섬 전체를 둘러싼 산호초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다이버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은 이곳은 비사야 제도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다.
4백50여 년의 필리핀 가톨릭교회 역사는 이 시부(CEBU)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521년 세계일주를 하던 마젤란에게 발견되었던 이 섬은 3백여 년에 걸친 스페인 통치의 중심지로, 또한 아시아지역 그리스도교 전파의 교두보 구실을 했다.
이런 이유로 시부섬이 필리핀 가톨릭교회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상당하다.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1시간 10분 가량 걸려 시부섬에 도착, 시부시 남부 레가스피로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마젤란크로스(Magellans Cross)와 산토니뇨성당(Santo Nino Church)을 찾을 수 있다.
필리핀에서는 산토니뇨(어린 예수) 상에 대한 신심이 아주 깊다. 16세기 시부섬이 전쟁에 휘말렸을 때 산토니뇨 상만이 상처 하나없이 옆으로 휘어졌다고 하는 일화를 갖고 있다. 바로 이 성상이 모셔져 있는 산토니뇨성당은 매일매일 기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마젤란의 시부섬 진출은 필리핀의 본격적 스페인 식민지 역사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고유의 부족문화는 강력한 군대와 조직으로 단일화되면서 거의 소멸하였고 모든 주민들은 명목상 스페인의 국교였던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된다. 스페인은 군사력을 동원하는 한편 아우구스티노회 도미니코회 프란치스꼬회 등 수도회들을 진출시켜 부족 통합을 위한 노력에 힘썼다.
필리핀 가톨릭의 역사는 바로 이 같은 배경에서 「식민지문화」와 「수도회 중심교회」라는 특성을 갖게 된다.
아우구스티노회를 비롯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예수회 등의 진출은 수도회 고유 카리스마에 맞는 다양하고 섬세한 활동들을 전개시켰고 이런 요인들은 획일적이지 않은 가톨릭문화 형성을 가능케 했다.
◆현황
95년 말 현재 필리핀은 세계에서 가톨릭 신자 수가 다섯 번째로 많은 국가이다.
총 신자 수는 5천7백2만3천4백84명. 브라질 멕시코 이태리 미국에 이어 5위를 기록하고 있다.
16개 대교구와 50개 교구로 구성돼 있는 필리핀 가톨릭교회에는 자이메 신 추기경, 호세 산체스 추기경(교황청 거주), 리카르도 비달 추기경 등 세 명의 추기경과 19명의 대주교 90명의 주교가 있다.
사제 수는 6천6백54명(수도회 포함)이고 사제 1명당 신자 대비 수는 8천5백70명. 또한 2천4백8개의 본당과 54개의 준본당 그리고 1만6천8백26개에 달하는 공소 선교 공동체가 있다.
수도자 수는 남자가 5천8백89명, 여자가 1만2천7백58명으로 총 1만8천6백47명(수련자 지청원자 포함)이다. 신학생 수는 7천3백60명이며 신학교는 1백14개이다.
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학교는 21개의 종합대학과 1백65개의 단과대학을 포함 2천69개이다. 병원시설은 4백여 개에 이르고 복지시설은 1백20여 개에 달한다.
지난 91~95년은 4백50여 년의 필리핀교회 역사에 있어 3쳔년기를 여는 「거듭 남」의 전환점이었다. 91년 제2차 필리핀지역 공의회(the Second Plenary Council of the Pilippines, PCP-2)를 개최했고 93년 이에 따른 공동 사목교서(National Pastoral Plan,NPP)를 발표한 필리핀 교회는 이를 통해 향후 필리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천명했다.
또한 95년 마닐라대교구 설정 4백주년과 주교회의 설립 50주년 등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전기를 맞았던 필리핀 교회는 이 같은 상황 안에서 앞으로 2천년 대희년을 향한 교회 소명을 「새로운 복음화에 바탕을 둔 쇄신작업」으로 요약하고 있다.
엄청난 신자 수, 턱없이 부족한 사제 수, 그로 인해 사제 1명이 8천여 명의 신자를 돌봐야 하는 등 여러 어려움들을 난제로 끌어안고 있는 필리핀 교회는 이러한 사목상 고충을 뛰어넘는 구체적 방안으로 PCP-2를 통해 「기초 공동체」 「평신도 역할 증대」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전임 필리핀 주교회의 의장 까멜로 모레로스 대주교(잠바왕가교구장)는 『새로움과 복음화는 필리핀 교회가 2천년대 복음화를 위해 치뤄내야 할 도전』이라고 언급하고 『PCP-2와 NPP는 새로운 복음화의 씨앗 역할을 할 것을 확신한다』면서 『현재 상황 하에서 필리핀 교회가 맡고 있는 과업은 새로운 복음화를 필리핀과 다른 아시아 지역에 심고 가꾸어 가는 것이다』고 역설하고 있다.
4백여 년이 넘는 신앙 전통 속에 열대 민족의 정열과 동양인의 순수한 종교 심성으로 여전히 생동감을 간직하고 있는 필리핀 교회. 2천년 대희년과 3천년기를 향한 그들의 새로운 복음화 노력은 또한 아시아 선교 주역으로서의 다짐과 결의를 새롭게 하는 힘찬 몸짓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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