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아들 고희 때보다 벅찬 기쁨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맏아들이 다섯 살 되던 해에 처음 접한 가톨릭신문은 나의 원기 왕성하던 청년 시절부터 동고동락해 온 정신적인 동반자입니다』
40년간 본당 회장직을 역임할 정도로 평생을 교회 발전과 복음화에 헌신한 이성우(인노첸시오ㆍ94세) 옹.
그는 다섯 살 때인 1908년 부친을 따라 생극면에서 이곳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514번지로 이주한 이래 평생을 고향을 지키며 농촌 복음화에 헌신한 시대의 증인이다.
27세. 혈기 왕성하던 청년시절부터 본당 회장직을 역임한 그는 매년 부활과 성탄 판공 때가 되면 선교사를 모시고 관내 열대여섯 개 공소를 한 달간 꼬박 돌며 봉사할 정도로 남다른 교회 사랑을 실천한 충북지역 교회 원로이다.
말을 타거나 혹은 자전거를 타고 공소를 방문하던 시절. 인노첸시오 옹은 얼음이 채 녹지 않은 강을 맨발로 건너 공소를 가다 감기가 걸려 오한 때문에 뜬 눈으로 지새워야 했던 그의 곁에 놓여진 가톨릭신문은 하느님의 위로처럼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교리문답과 찰고 등 공소 판공을 마치고 흔들리는 남포불 아래에서 가톨릭신문을 읽는 기쁨은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족했다는 인노첸시오 할아버지. 그는『신문 자체도 귀했던 시절인지라 교회 소식을 알려준 유일한 소식지 가톨릭신문은 더욱 애착이 가는 벗이었다』고 회고한다.
경향잡지를 비롯 교회 정기 간행물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쏟아온 이옹에게 있어 가톨릭신문은 가슴 깊이 묻어온 남다른 인연이 있어 특히 애착을 갖고 지금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애독하고 있다.
근대 한국 교회를 주도하던 청년들이 공번된 교회의 소식을 전하고자 가톨릭신문을 창간했기에 충북 최초로 설립된 본당에서 회장직을 역임하던 청년 이성우는 열렬한 환영과 남다른 기대를 하게 됐다.
매체가 전무하다시피 한 시절, 그에게 전달되는 가톨릭신문은 신자들에게 영적 양식을 제공함은 물론 복음화의 든든한 밑천이 됐다.
타블로이드판 4편이 전부라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아쉽기만 했던 초창기 가톨릭신문이 이제는 제법 70년 연륜에 걸맞게 내용과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 면에서 눈부시게 발전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옹은 「공번된 교회의 시각」으로 교회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교회 언론의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우편 사고도 잦아 2주일치 신문을 연달아 받아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이옹. 『그래도 요즘은 비닐로 포장돼 비가 와도 신문이 하나도 젖지 않고 멀쩡할 정도로 신문의 질적인 면과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 면에서도 여타 신문에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부족해 보지 않으면 아쉬움을 알 수 없고 짐작할 수도 없다』는 이옹에게 있어서 1933년 가톨릭신문의 휴간은 충격이었다. 유일한 교회 소식지를 접할 수 없었던 아쉬움과 언제 다시 교회 소식을 전달해 줄 매체가 등장할 것인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6ㆍ25 동란으로 부득이하게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대구로 피난해야 했던 이옹은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떠나왔지만 서울 수복으로 막상 고향에 돌아왔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틈틈이 모아온 가톨릭신문은 물론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혹시 창간호를 보관하고 있지나 않을까 내심 기대를 걸었던 기자의 부푼 희망도 이옹의 아쉬움 만큼이나 큰 미련을 남기기에 족했다.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 맛보기 정도로 만족해야 했던 2차 바티칸 공의회 소식을 가톨릭신문을 통해 자세히 접했을 때 교회매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이옹은 『공번된 소식을 접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공번된 신자가 될 수 없다』면서 교회매체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을 요청하기도 했다.
오른쪽 귀가 어두워 작은 목소리는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아직 눈은 멀쩡해 아직도 불편없이 잘 읽을 수 있다는 이옹은 『예전 신문보다 활자가 시원시원하게 커져서 오히려 읽기에는 더 낫다』며 건강미 넘친 웃음을 짓는다.
몇 안 되는 유일한 창간 독자로서 이성우 할아버지는 『가톨릭신문이 교회와 더불어 무궁토록 번창해 공번된 교회의 소식을 전함으로써 교회의 일치와 세상 만민을 교화하는 선교의 도구가 되어주길 바란다』며 창간 70주년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70년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민족의 통일을 대비하는 민족 복음화의 등불이 되어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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