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도 같이 있었다. 문이 다 굳게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20, 26~29 참조)
『요셉이는 성당에 다녀왔으니 밥 먹을 자격이 있고…』. …새벽 첫닭이 울면 마을 어귀 바오로의 집 마당에는 호롱불을 든 어른들이 하나둘 모여 큰 기침으로 출발 신호를 알리곤 하였습니다. (성당에 갈 때에는 항상 묵주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안성 읍내에 있는 성당 새벽 6시 미사 참례를 위한 행렬 아닌 행렬이 시작되곤 하였습니다.
호롱불(손전등(후레쉬)이 별로 없었음)을 든 어른들이 부지런히 걸어가면 초등학생인 저는 언제나 왕복 22km(성당까지 11km)를 마라톤 선수처럼 뛰어야 어른들을 놓치지 않고 캄캄한 새벽 어두움의 무서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성당 가는 길 중간에 공동묘지가 두 곳 있었음).
비가 오는 날이나 특히 한겨울 눈이 쌓인 새벽에는 성당 가기가 싫어 억지로 눈을 감고 자는척 하면 『요셉이는 비가 오고 눈이 쌓였다고 천당 안 갈꺼야?…』두 번도 아닌 딱 한 번만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경고!『성체를 모시지 않았으니 밥도 굶어야지…』하시며 꾀병을 부리고 새벽미사를 궐한 동생에게 아침을 굶겨 학교에 보내시던 어머님!(점심까지 굶으라고 하셨습니다). 야속하기도 하였지만 영혼이 굶었으니 육신도 굶어야지! …하시는 어머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옳은 말씀이니까….
『어려서부터 따라서 해 봐야 커서도 잘 할 수 있는거야!』…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왜 그렇게 일주일이 빨리 다가오는지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토요일 저녁이면(농사일을 마치고 모이는 시간은 으례히 밤 10시가 되어야 모임) 공소 강당이나 할아버지 회장님 댁에서 레지오 쁘레시디움 모임이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꼭 저와 동생을 양 옆에 앉혀놓고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르시고 『무슨 일이든지 자주 해 보아야 된다』고 하시며 믿음이 아닌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이 다음에 꼭 필요할 때가 있으리라 하시면서….
『요셉아! 일기장 가져 오렴』…그 바쁜 농촌생활 속에서도 매일 저녁 숙제 검사는 안 하셔도 일기장 검사는 빠짐없이 확인하시던 어머님이 한편으로는 야속하고 무섭기도 하였습니다.
학교 일기장은 띄어쓰기와 맞춤법 정도로 끝나지만 성당 일기장만은 꼼꼼이 확인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1.『예수님 이름으로 집에서 한 번, 학교에서 한 번 이상 착한 일을 만들어서라도 실천할 것과 아침, 점심, 저녁기도를 했는지…』어머님만의 주문 내용과 2.『적어도 한 가지 이상 감사할 일은 무엇인가?』의 확인이 40년이 지난 오늘의 사제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님의 깊은 뜻을….
『아버님이 아직 안 들어오셨는데…』…농사일로 늘 바쁘신 아버님은 여름철에는 논농사와 밭농사, 과수원 일로 바쁘시고 겨울철에는 사랑채에서 새끼 꼬는 일과 가마니 짜는 일로 밤 늦게까지 바쁘신 아버님이 일을 끝내시고 들어오신 후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안 들어왔으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음)에야 온 가족이 모여 저녁기도(옛날에는 만과라고 하였는데 기도 시간이 30분 이상 걸렸음)와 공동으로 묵주기도를 바친 후 잠을 잘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어머님의 신앙 교육과 어머님만의 믿음생활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이야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
어머님만의 신앙 교육, 어머님만의 믿음생활을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감사하는 마음을 제물로 바치는 사람은 나를 높이 받드는 사람이니, 올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내가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 주리라』(시편 50, 23) 하신 말씀 대로 구차한 농촌생활 속에서 8남매를 키우시던 부모님은 『모든 사정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유딧 8, 25) 하신 말씀을 당신의 몸으로, 생활로 보여주시며 언제나 당신 자신을 등불로 태우시면서 감사하는 생활과 빈틈 없는 믿음생활을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했으니…』(마태 25, 21) 하신 주님의 말씀 대로 늘 감사하는 생활과 희망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토마가 『의심을 버리고 나를 믿어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왜 들어야 했습니까? 무슨 일이든 캐묻고 따지고 계산에 맞추는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숨 죽이며 숨어있을 때 왜 토마는 슬그머니 다락방을 빠져나와 세상 판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의심없이 어떻게 사흘을 기다려야 하는가? 언제나 논리적으로 맞아야 하고, 눈과 손으로 확인해야만이 직성이 풀리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토마는 예수님을 또 한 번 십자가에 못을 박는 어리석음을 범하였습니다.
마치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땀 흘리며 한 여름을 논밭에서 허우적거리듯 헤어나지 못했을지라도 인내를 갖고 추수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여 영글기도 전에 낫을 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무슨 일이든지 야훼께 맡기면 다 이루어지리라』(잠언 16, 3) 하신 말씀 대로 다락방 안에서 좀이 쑤시더라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었더라면 얼마나 벅찬 마음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뵈올 수 있겠습니까?
『감사를 드리기 위해 해 뜨기 전에 일어나 기도한다면』(지혜 16, 28) 하느님께서 책임 지어주실 텐데 우리는 토마처럼 너무 따지지 않았습니까? 약은 체 하지는 않았습니까? 감사하기보다는 무엇이든 더 얻으려고 애태우지는 않았습니까?『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 27) 하신 주님께 모든 것 맡겨드리며 감사의 노래(이사 12, 1~6:시편 63, 1~11)를 부르며 부활시기를 지내지 않으시렵니까? 12사도로 뽑아주셨는데, 하느님 자녀로 간택하여 주셨는데 감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지금 이대로 이만큼에서 감사를 드릴 수만 있다면 의심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질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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