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은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95년 1월부터 96년 12월까지 2년간 연재해온「한국 천주교회의 어제, 오늘, 내일」에 이어 제3천년기 우리 민족과 아시아 복음화의 새 장을 열 한국 교회가 2000년 대희년을 성공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특별기획「2000년 대희년을 향한 한국 천주교회의 역할과 과제」를 연재한다.
「한국 천주교회의 어제, 오늘, 내일」의 연장선에서 연재될 이번 기획은 총 50여 개의 주제를 해당 분야 최고의 석학과 권위자들에게 의뢰, 집필한 예정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근현대사를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제3천년기 한국 교회의 미래상을 전망해줄 이번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을 기대한다.
◆1-1. 현대 한국 가톨릭과 국악
▲1 여기서 말하는 한국 교회란 그리스도교 즉 가톨릭교회를, 국악은 전통적인 한국 음악의 음계와 음정을 사용해서 만든 음악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글을 쓰려고 한다.
오묘한 방법으로 이 땅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전파된지 2백여년이 지났으나 아직까지 우리 음악으로 미사 드리지 못하고 서양의 음악인 그레고리오 음악만이 전부인 양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국악은 유·불·선에 뿌리를 둔 음악인데 어떻게 가톨릭 음악에 쓸 수 있겠는가?」하고 부정적인 이질감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가톨릭 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도 처음부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음악이 아니라 비잔틴, 헬라, 히브리, 아프리카. 동양 등 여러 민족의 음악을 받아들여 라틴어에 맞도록 양식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악지에 의하면 지금부터 1천4백여 년 전 가야국의 가실왕은『모든 나라의 말이 다른데 어찌 그 음악이 같을 수 있겠는가?』하고 말이 다르면 음악 또한 달라야 한다고 간파하여 지방마다 특색 있는 음악을 만들도록 명하였다.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성가는 영국, 불란서, 미국의 성가를 빌어서 우리 말을 붙인 것이기 때문에 가사 전달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영어나 불어는 전치사나 관사가 있어서 그 음악의 첫 박이 약박으로 시작하는 곡이 많은데, 우리 말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음악이 맞을 까닭이 없다.
어떤 사람은 그레고리오 성가만이 가톨릭교회의 음악인 줄 생각하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십자가의 예수가 갈색 눈동자와 까만 머리의 유다인이 아니라 검은 눈동자에 상투를 틀고 도포를 입은 한국 사람으로 묘사되어도 우리 신앙에는 더욱 가까우면 가까웠지, 전혀 아무 지장을 받지 않는다. 변화하는 문화현상을 믿는 게 아니라 예수가 나의 구세주임을 믿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많은 뜻 있는 사람들이 국악 성가를 작곡하여 발표도 하고 있으나, 잘 불리워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그 불리지 않는 이유와 꾸준히 국악 성가 보급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단체와 국악 성가 보급 발전 방향에 대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2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말이 다르면 음악 또한 당연히 달라야 한다. 서양 음악과 국악의 다른 점을 알아보는 것은 국악 성가 작곡의 시작이기 때문에 여기 국악의 특징(서양 음악과 다른 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1)음정과 표현법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작곡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국악을 서양의 오선보로 체보하고, 구음을 생략한 채 그 악보를 보고 한국 악기 대신 서양 악기인 피아노로 타면 그것은 국악과 다르다. 그것은 서양 음악과 국악이 음정에 있어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또 서양 음악의 교육을 받고 국악을 배우지 않은 음악인이 한국의 민요나 시조를 부르면 한국인이지만 국악의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한다. 그 이유는 국악과 서양 음악의 표현법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2)서양 음악은 약박으로 시작하여 강박으로 종지하는 음악이 많은데, 국악은 한결같이 강박인 합 장단으로 시작하여 약박으로 종지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3)서양 음악은 상행종지가 많으나, 국악은 동도(同度)종지 또는 4도 5도 하행종지법이 많고, 때로는 계단식으로 차츰 하강하는 종지법을 즐겨 사용한다.
4)우리나라 사람이 즐겨 쓰며 좋아하는 리듬을 써야 한다.
①
②
③
④
①은 동서양 사람이 같으나, ②③④는 너무 다르다. 즉 ②는 한국 사람에게는 생리적으로 잘맞지 않고, ③은 훈련 받은 전공자도 잘 되지 않으며, ④는 음악적인 소양이 없는 사람도 자연스럽다. 반대로 ②③은 잘 하나 ④는 매우 어려워 한다.
5)요성과 전성
어떤 음에서 4도 또는 5도 상행할 때 요성(음을 흔드는 것)또는 전성(음을 흘려내리는것)한다. 요성은 서양음악의 트릴과 비슷하나 그 표현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대표적인 예를 보면
6)퇴성
퇴성이란 어떤 음을 소리낸 다음 조금 끌어 내리는 소리이다. 전라도 지방의 판소리나 민요에서는 조금 높은 음에서 조금 끌어 내리는 것이 다른데 이를「꺽는목」이라고 한다. 퇴성법은 계면조와 평조에서 각각 다르나 하행할 때 끌어 내리는 것은 같다. 계면조에서는 중심음의 5도 음의 위에서 하행할 때 퇴성한다.
7)장식음의 붙는 위치가 다르다. 국악곡에서는 장식음이 본음의 위로 붙는 예가 많다. 특히 전타음을 낼 때 앞에서 낸 음을 다시 낸 다음 낮은 음으로 떨어지는 장식법은 국악에만 있는 독특한 장식법이다.
8)국악의 장단법은 서양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양 음악은 잘게 마디(소절)를 나누고 있으나 국악은 장단의 한 마루가 단위가 된다. 국악의 한 장단을 서양 음악식으로 잘게 나누면 서양식 감각으로 되기 쉽다. 그 예를 들어보면
3/4 1. 2. 3. 1. 2. 3. 1. 2. 3. 1. 2. 3.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2/4 1. 2. 3. 4. 5. 6. 7. 8. ⑨. 10. 11. 12.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한국말에서는 첫 음을 강하게 냄으로 첫째 박이 강하고 9째 박은「간다」가 붙는 자리이므로 강하게 친다. 따라서 위의 노래는 세마치로 치느냐 중모리로 치느냐는 가사 전달에 매우 중요하다.
9)국악의 노래는 그 속도가 느릴수록 가사의 발음이 변화된다. 이 발음 변화에 따른 음악적 묘미는 형언하기 어려운 국악의 운치이다.
단모음과 중모음의 발음 변화 (단) 아- 아으, 어- 어으, 오-오우 (중) 야-야으, 여-여으
위와 같은 변화는 강약의 변화도 없고 끝은 섬세한 요성을 하여 실날 같은 여운을 가진 유연성을 갖는다.
3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옴으로써 서양 음악이 처음 들어오게 되었으며 기존의 음악과 전혀 다른 음악이 생겨남으로써 구별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 음악(국악)과 서양 음악(양악)으로 대별되어 내려오고 있다.
천주교 역사서에 의하면 1779년 주어사강학회에서 정약전의 십계명가와 이벽의 천주 공경가를 우리 민요 가락에 얹어 불렀다고 전한다. 그 후 최양업 신부의 사향가, 삼세대의 중 일부분은 1924년에 간행된 조선 성가집에 수록되어 불리어지기도 했으며 많은 성직자들과 교회 관계자들이 성가의 국악화를 시도했으나 보수적인 고정관념과 국악의 학문적 이해 부족으로 지금까지 성가 음악의 국악화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여기 꾸준히 성가의 국악화 시도에 참가하고 있는 단체들을 밝혀 보겠다.
1)가톨릭국악협회
다음은 가톨릭국악협회가 창립의 필연성과 중요성을 밝힌 창립 취지문이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전해진 이후 2백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중략> 복음화 제3세기의 우리 교회는 민족의 문화 전통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민족 문화에 일부가 되어 민족의 구원을 위해 봉사해야 할 시대적 요청을 받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렇게 지나온 교회의 역사를 등에 업고 우리 앞에 전개되는 복음화 제3세기의 문턱을 넘어서서 한국 가톨릭국악협회를 발기하려 한다. 이에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적 정신에 젖어 신앙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우리가 아끼는 국악을 통해 교회의 보화를 늘리도록 불리움을 받았음을 자각하며 우리의 신앙을 키워 나가고 민족의 복음화를 향한 우리의 사명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에 이어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유산인 국악을 지켜 나가고 이를 발전시켜 민족 문화의 창달에 기여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현대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전례 개혁의 정신에 따라 민족적 정서와 전통의 바탕 위에서 조상들이 전해준 소리와 춤사위로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며 새로운 전례운동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래도록 간직해온 소리의 불씨를 되살리어 민족의 복음화에 이바지하며 교회의 전례에 우리의 전통 음악을 도입하기 위한 신학적, 역사적, 사목적 연구와 발표를 지속해 나가고자 한다. 우리 가톨릭 국악인의 이 모임이 우리 자신의 신앙을 다지고 민족 문화를 발전시키며 신앙생활의 원천인 우리 교회의 전례를 항상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약하며 이를 선언하고자 하는 바이다. 1986년 7월 8일 발기인 일동」
발기인에는 김수창 신부를 비롯하여 한용희 교수, 조광 교수, 이요배씨, 김홍준씨 등이 있으며 매월 정기 모임을 통하여 강연도 듣고 실기도 발표하기로 하였다. 창단 연주회를 준비하려 했으나 미루어 오다가 1990년 6월 26일 국립국악원에서 강수근 신부의 국악 미사곡과 성가곡을 가톨릭국악협회 연주단 30여 명과 서울대교구 제11지구(영등포, 구로지구) 청년 성가대 1백50여 명으로 첫 발표회가 있었다. 발표회에 참석한 이반디아스 교황대사는 축사에서『오늘은 참으로 뜻 깊은 날이 될 것입니다. 2백년의 한국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국악 성가가 한국 악기의 반주로 연주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앞으로 이런 행사가 자주 있기를 기원했다.
2)가톨릭 우리소리 관현악단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1967년의 거룩한 전례 안에서의 성음악에 관한 훈령에서 성가의 목적은 첫째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둘째로 하느님 백성의 일치이며, 세째로 하느님 백성의 성화로 규정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토착화는 이 토양에서 숨 쉬어온 우리 고유의 얼을 찾으며 이를 통하여 궁극에는 하느님의 진리를 찾는 것이다.
가톨릭 우리소리 관현악단의 창단은 일석이조의 사명을 띠고 1년 전 창단되었으나 가톨릭 음악의 변천 과정이 말하여 주듯 한국 가톨릭 음악의 토착화는 시급한 문제인 동시에 시대적 사명인 것이다. <중략> 그러나 때가 차도 한참 찬 이러한 사명을 저버릴 수 없다는 사명에서 1년 전 가톨릭 우리소리 관현악단을 창단하게 된 것이다. <중략>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믿음과 소리 그리고 일, 모든 것을 심어주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1만이 넘는 우리 신앙 선조들의 뜻을 기리고 또한 우리 후손들에게는 이러한 훌륭한 가톨릭 전통에서 하느님의 진리를 찾으며 살아가는 자긍심을 주었으며 하는 마음 간절하다. 1994년 11월 우리소리 국악관현악단장 김종국 신부」
1994년 2월에 창단하여 현재까지 수백 회의 국내 연주회를 비롯하여 해외 연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서교동 성당에서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 6시 미사를 국악미사로 봉헌하고 있다. 한 본당에서 수십 명의 유급 연주단원을 두고 있으니 그 고충이야 오죽하랴. 그저 우리는 고마움에 고개 숙일 뿐이다. 앞으로 가톨릭 음악의 토착화에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3)한국 가톨릭음악 토착화위원회
한국교회 음악의 토착화를 부르짖는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 그러나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에 의견이 다르다. 지난 1월 가톨릭 음악원 차인현 신부를 비롯하여 몇몇 국악인들이 모여 성가 음악의 토착화를 위하여 힘 쓰기로 하고 작은 모임을 가졌다. 성가 음악의 토착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가를 국악식으로 작곡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한 달에 한 번씩 과제를 나눠 주기로 하고, 작은 곡을 한 곡씩 짓고 공동의 이름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여기 모임에는 작곡가 이상규 교수, 서울대 강사준 교수, 추계대 이효분 교수, 단국대 서원숙, 이상룡 교수, KBS 정대식, 민의식, 강영근씨 등이며 앞으로 국악 성가곡집의 발간을 위하여 노력하기로 했다.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전례에 사용하는 음악과 악기는 교구장의 허락으로 전례에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용된 음악이나 악기 소리를 들음으로써 신심이 우러나고 마음이 들뜨지 않고 차분히 가라앉는 음악과 악기 소리여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흔히 생각하기를 국악 하면 어느 음악이건 또 국악기라면 어느 악기이든 제례 음악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음악과 악기 소리를 들음으로써 신심이 솟아나고 마음이 차분해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묵상할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한다.
국악이 제례 음악에 쓰일 수 있기 위해서는 작곡가나 연주자들의 많은 노력이 요구되며 국악의 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하느님 말씀에 젖은 자기 영혼의 찬송을 국악으로 서두르는 일이 시급하다. 초기 이스라엘 성전 음악에서 중세는 수도원의 기도에서 자생된 순결하고 장엄한 영혼의 음악 그레고리오 찬트에 이어 우리 민족의 영혼 속에 젖어 흐르던 음율인 국악으로 미사 음악을 아뢰인다면 우리 한민족에게 더 크신 하느님의 사랑과 영광이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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