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위대한 어머니가 존재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낸 어머니의 피와 땀이 없이는 위대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부권상실시대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오늘, 이 시대의 가정 위기는 바로 참된 어머니의 부재에서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남편과 자녀들이 먹고 숨 쉬며 살 수 있는 자양분이 됐던 우리들의 어머니,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 성모 마리아와 같은 어머니 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본보는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 시대의 위대한 어머니들을 찾아 나선다. 평범하면서도 꿋꿋하게, 그리고 넉넉하고 가정을 풍요롭게 가꾸어 온 삶을 지켜온 우리들의 위대한 어머니들의 삶을 통해 이 시대에 요구되는 참된 어머니 상을 찾아보고자 한다.
요즘 세상에 10남매를 두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 거리가 될 만하다. 더군다나 10남매 중 5명을 성직자와 수도자로 길러낸 어머니라면 더더욱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1994년 12월 8일 예수성심전교수도회 황지연(사도 요한) 신부가 사제품을 받음으로써 4명의 수녀와 1명의 사제를 거느린(?) 작은 수도원의 대모가 된 윤덕림(세실리아·77세) 어머니가 바로 그 화제의 주인공이다.
『10명의 자식이 모두 성직자 수도자가 된다고 해도 말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윤덕림 여사는『이제 남은 소원이 있다면 성직자 수도자가 된 아들 딸들이 죽을 때까지 열심히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라며 묵주를 더욱 꼭 쥐어 보였다.
큰딸 동화작가 황옥연(베드로·한국순교복자회) 수녀, 셋째 황숙자(데레사·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수녀, 넷째 황성연(안나·샬트르 성바오로수도회 서울관구) 수녀, 일곱째 황미란(로즈마리·포교성베네딕도수도회 서울관구) 수녀, 그리고 아홉째 황지연(예수성심전교수도회) 신부. 이들이 성인 성녀가 되도록 지금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부모의 마음을 누가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흔히들 성직 수도자의 부모는 죽을 때까지 다리 한 번 마음대로 뻗고 잘 수 없다고 하듯, 그 삶 자체가 가시밭길, 십자가의 길 만큼 어렵다는 게 통설이다. 신학교나 수도원을 보내곤, 언제 쫓겨올지 모르는 자식 걱정으로 마음 졸이고, 사제 서품을 받거나 종신 허원을 했어도 요지경 같은 세상에서 언제 옷을 벗을지 몰라 조바심을 내며 오로지 기도에 매달려야 하는 성직 수도자들의 어머니의 마음을 누가 알까?
그러나 윤덕림 여사의 대답은 뜻밖이다.『자식들이 사제로, 수녀로 살게 된 것은 내 공로가 아니라 작고하신 아버님 어머님의 공로』라며『나는 단지 기쁨만을 누린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윤덕림 여사의 시아버지인 고 황춘서(힐라리오)옹은 초기 교회 신자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 받고 있었던 참 신앙인이었다고 한다. 부호 출신인 그는 손자 손녀들의 신앙생활을 엄격하게 지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길고 긴 조과(아침기도), 만과(저녁기도)를 바쳤으며 등교 전에는 반드시 묵주기도 5단을 바쳐야 학교를 갈 수 있었던 엄격한 신앙생활을 해야 했다. 말 수가 적으면서도 깊은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고 황춘서옹은 손자 손녀를 사랑방에 모아놓고 동네 사람들이 다 듣도록 큰소리로 성서를 읽게 하곤 했다.
윤덕림 여사는『아버님의 신앙 교육과 4대 독자인 남편의 열심한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자식들이 성직자 수도자가 될 수 있었다』고 겸손해 하면서『난 그저 뒷전에서 기도 밖에 한 것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윤덕림 여사는 10남매는 물론 시부모와 남편의 뒷바라지, 그리고 일꾼들까지 챙겨야 하는 종가집 맏며느리였다. 새벽에 일어나 늦은 밤까지 힘든 일들을 묵묵히 참고 견뎌왔던 것이 바로 윤덕림씨를 이 시대의 장한 어머니로 만들었다는 게 주변 식구들의 증언이다.
남편과 자녀, 시부모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왔던 윤 여사의 삶이 신앙을 지켜온 4대째 만에 성직 수도자로 열매를 맺게 했던 자양분이 된 것. 방직공장과 농사일을 했던 남편의 외조로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종가집 맏며느리로 윤덕림 여사가 겪어온 삶의 역경이 짐작이 간다.
윤 여사는 현재 창동본당 인근에서 홀로 살고 있다. 자식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다.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성당 인근에서 살고자 했던 지난해 12월 선종한 남편 고 황순봉(시몬)옹의 뜻에 따라 독립(?)을 했던 것.
『원래 사제가 되고자 했던 남편은 자식 대에 그 뜻을 실행하라는 아버님의 권유로 결혼했지만 평생 수도자처럼 삶을 살다 가신 분』이라며 남편을 회상하는 윤덕림 여사는『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매일 성당에 나가 기도를 했던 남편이 있었기에 10남매를 키웠다』고 강조했다.
윤덕림 여사는 장녀인 황 베드로 수녀를 수녀원에 바래다 주고 돌아오면서 딸이 자신을 따라오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에 보고 싶어도 다시는 수녀원에 찾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토록 원했던 수도자의 길을 딸아이가 선택한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수녀원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로 인해 땅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셋째, 넷째, 일곱째, 아홉째가 갈 때마다 슬픔은 반으로 줄어들고 대신 기쁨이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
한편 윤덕림 여사는 자녀들을 이처럼 훌륭한 성직 수도자로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동생들이 주교님으로 부르는 둘째 딸 황정자(젤뚜르다)씨와 장남 황광연(요한)씨 덕분이었다고 한다. 어려서 동생들의 신앙적 지주로 엄격한 신앙생활을 이끌었던 둘째 정자씨와 아직도 결혼을 안하고 성직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동생들의 뒷바라지만을 하고 있는 장남 광연씨가 있었기에 형제들이 하느님 안에서 자랄 수 있었다는 게 윤덕림 여사의 얘기다.
『살아생전 아이들을 키우면서 욕 한 번 안 했고 아이를 가졌을 때 낙태하려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것만이 내가 하느님께 가져갈 유일한 일』이라고 말하는 윤덕림 여사는 평범하지만 어쩌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위대한 어머니다. 자신을 끝없이 낮추고 시부모와 남편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 몰아적인 사랑을 쏟아 부으며 살아온 윤덕림 어머니. 가정이 중심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오늘날 절박하게 요구되는 어머니 상을 잔잔하게 몸으로 살아온 윤덕림 어머니의 삶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으로 참아 받았던 마리아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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