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생물의 종이 대규모로 멸종된 적은 5번 있었다. 적을 때는 65%, 많을 때는 무려 전체 종의 95%가 자취를 감췄다. 그 원인에 대해 소행성과의 충돌, 혹은 화산 폭발, 급격한 기후 변화 등 엇갈린 주장을 한다.
하지만 아직 「저질러지지 않은 6번째 대멸종」은 인간에 의해 발생될지도 모른다. 현재 지구상에는 1시간에 4종씩, 해마다 3만여 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멸종 속도는 진화 과정에서 도태되는 멸종에 비해 몇만 배 높은 것이며 그전에 일어난 대멸종에 필적한다.
무너지는 생태계와 생물종의 멸종에 대한 경고와 대책은 이제 남의 몫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온갖 동물, 식물, 산과 물이 10년, 20년 후에는 흔적만 남을지도 모른다.
벼랑 끝에 몰린 생태계는 이제 인간에게 「그만 손을 떼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손을 뗄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자연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 반성하고 우리가 자연에 입힌 상처를 치유해 주어야 한다.
가톨릭신문은 창간 70주년을 맞아 벼랑 끝에 몰린 생태계 현장을 직접 찾아가 자연의 신음소리를 들음으로써 자연의 위기를 느끼고 우리가 상처낸 자연을 우리가 어떻게 살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끝간 데 없이 펼쳐진 광할한 벌. 뭍의 끝에서 시작된 시커먼 진흙은 저멀리 뻗어 바다와 잇닿아 있다. 낮은 구름이 많아 웬만해서는 지평선을 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일자로 획을 그은 지평선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개펄이다.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1백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은 바로 앞에 개펄을 두고 있다. 해안을 따라 집들이 빙 둘러서 있는 마을에서는 바다가 바로 내다보이고 벌겋게 달아올랐다가 물 속으로 가라앉는 해를 매일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개펄은 첫 눈에 지저분해 보이는 시꺼먼 빛을 띠고 있다. 삽이라도 한 자락 뜨고 속을 들여다 보면 안에는 더 시꺼멓게 썩어 들어간 흙이 보인다. 처음 벌을 밟은 이들은 이 시꺼먼 벌에 빠진 것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더러운 흙들은 바로 개펄이 우리가 뿜어내는 온갖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육지에서 흘러 들어오는 온갖 오염물질은 벌 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박테리아에 의해서 분해되어 생명체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자연으로 돌려 보내진다. 특히 강화도 지역의 개펄들은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버려진 오염물질이 한강과 임진강의 물을 타고 그대로 흘러 들어오는 곳이다. 만약 이 개펄들이 없으면 바다와 육지는 모두 엄청난 속도로 오염될 수밖에 없다. 개펄은 자연의 정화조이다.
뿐만 아니라 개펄은 수많은 생명체들이 기거하는 천혜의 보고이다. 땅과 바다가 만나고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개펄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생물종이 독특한 생명 현상을 펼치는 곳이다. 겨울이면 철새들이 찾아들고 바다에서 올라온 고기들은 이곳에 알을 낳는다.
◆삶의 터전 생계 수단
장화리만 해도 철 따라 새우, 게, 밴댕이, 장어 같은 특산물들을 거의 줍다시피 등짐으로 이고 나왔다. 이런 개펄 생물들이 살기 위해서는 개펄의 생태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간척사업이 진행되고 개펄이 줄어들어 생태계에 변화가 생기면서 이런 수확도 줄어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감소했다.
지난해, 순박하게만 살아왔던 장화리 마을 사람들은 큰 싸움을 치러야 했다. 조상 대대로 물려온 개펄을 지키기 위해서 이들은 생전 처음 관공서 앞에서 피킷을 들고 소위 「데모」도 하고 어떻게, 왜 싸워야 하는지 알기 위해 공부도 해야 했다.
싸움의 발단이 된 것은 생전 처음 본 외지인들이 이 마을 앞바다 개펄 9만 평에 새우 양식장을 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이다. 주민들은 마을 앞바다 개펄에 양식장이 들어설 경우 양식장 폐수와 개펄 매립으로 어장이 황폐화해 어업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하지만 싸움이 거듭되면서 주민들은 개펄이 단지 「우리 마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개펄은 주민들의 생계 수단이자 삶터이기도 하지만 생명이 뜨겁게 살아 숨쉬는, 더 이상 훼손돼서는 안 되는 생태계의 보고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쓸모 없어 보이는 개펄을 막아 농토로 만들면 살림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개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주민들과 힘든 싸움을 함께 했던 성공회 강광하 신부는 『그저 단순하게 살아온 이 사람들이 잠깐 동안의 싸움으로 적어도 개펄이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 왜 이 개펄을 보존해서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장화리에서 여차리, 흥왕리로 이어지는 강화 개펄은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개펄들 중 하나이다. 강화의 다른 곳에도 개펄이 있긴 하지만 이미 상당히 오염이 진행됐거나 규모가 작고, 일부는 매립이 되어 버렸다.
한국의 개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여러 조건이 잘 갖춰진 개펄은 세계적으로도 몇 군데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서해안을 비롯해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북해 해안, 캐나다, 동부 해안, 미국 남동부 조지아 해안, 남아메리카 아마존 하구 등 일부 지역뿐이다.
우리나라 개펄은 약 4천5백 년에서 3천7백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총 넓이는 남한만 2천8백 평방킬로미터, 남한 국토의 3%에 해당한다. 이 중 83%가 분포한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최대 9m에 달하는 대조차 환경에 속하며 폭 약 5㎞에 달하는 광활함이 특징이다.
국토가 협소한 우리나라에서는 간척사업으로 땅을 넓혀 왔다. 지금까지 여의도 면적의 6백4배에 달하는 19만3천3백82ha의 개펄이 사라졌거나 매립이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도 여의도 면적의 약 1천4백67배인 44만ha의 개펄을 매립할 계획이어서 전체 개펄 면적의 70%가 사라질 전망이라고 한다.
◆독일은 국립공원 지정
독일의 경우 남한의 개펄과 규모가 비슷하지만 지난 86년에서 90년 사이 간석지가 발달한 모든 해안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네덜란드도 81년 개펄을 자연보전법에 의거한 천연 기념물로 지정해 보호와 복구사업을 벌이고 있다.
◆개펄 죽이는 간척사업
3천 년 이상 걸려 형성된 개펄이 매립과 해양오염 등으로 사라지는 데는 채 30년이 걸리지 않는다. 개펄의 중요성에 대한 국내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됐다. 아무런 조사와 연구, 심사숙고 없이 벌이는 대형 간척사업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소중한 개펄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있다.
지난해 장화리 주민들은 간신히 새우 양식장을 막아냈지만 아직 전면 취소된 것도 아닌, 보류 상태이고 올해도 「주인 없는 개펄」로 뱃속을 채워 보려는 외지인들이 끊임없이 사업 신청서를 관청에 밀어넣고 있다.
이것만 해도 주민들은 힘에 부치는데 최근에는 인근 석모도, 삼산면 앞바다를 메워 국내 최대 규모 LNG 화력 발전소를 건립하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주민들은 또 한 차례의 큰 싸움을 예상하고 있다.
개펄은 말이 없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생명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속살거리던 뭇 생명체들은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인간의 무모한 손길에 부르짖는다. 울부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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