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명의 주교, 2백24명의 성직자, 13명의 수도자, 1백46명의 평신도들이 참석, 1991년 1월 20일부터 2월 17일까지 개최됐던 제2차 필리핀 지역공의회(The Second Plenary Council of the Philippines-PCP2)는 세 번째 천년기 교회를 맞는 필리핀 가톨릭교회의 좌표를 결정키 위한 시도였다.
이 회의는 1953년 열린 제1차 총회에 이어 거의 40년 만에 개최된 것이었다. 함께 한 성직 수도자 평신도들은 거의 한 달여 동안 필리핀 교회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분석 점검하는 기회를 가졌다.
제2차 필리핀 지역공의회에서의 결론은 한 마디로「새로운 복음화」(New Evangelization)
다. 이것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새롭게 하고, 교회 안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요청하신 일치에 더욱 부합하는 그리고 현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교회상 구현」등으로 설명된다.
이 회의를 통해 3천년기 필리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 것은 바로 BEC(Basic Ecumanical Communities)와 평신도 활동이다.
BEC와 평신도 활동에 대한 관심은 신자 수는 많고 사목자는 태부족한, 그로 인해 사목적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필리핀 교회의 어려움을 극복키 위한 구체적 방안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BEC는「기초 공동체」로 풀이할 수 있는데 한국 교회 안에서도 2천년대 복음화 방안으로 꼽히고 있는 소공동체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BEC와 관련 PCP-2는 「새로운 복음화」의 실제적 비전을 바로 BEC에서 찾을 수 있다고 천명, BEC를 2천년대 필리핀 교회의 가장 효과적인 복음화 방안으로 공식화시켰다.
필리핀 경우 이미 1960년대 말경부터「BCC(Basic Christian Communites) 명칭의 소공동체 모임이 민다나오섬을 중심으로 시작, 필리핀 전역에 활발히 퍼져 나갔다.
메리놀 성골롬반외방선교 회원들에 의해 라틴아메리카의 기초교회 공동체 운동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던 필리핀의 소공동체 모임은 꾸준히 발전, 고유하고 다양한 모델들로 정착되고 있다.
처음 실시 당시에는 마르코스 정권의 독재정권 상황 하에서 정치 사회적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았고 마르코스 정권에 대항하는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현재 민다나오 루손 등 지방 교구에서는 75%의 조직률을 보이고 있고 마닐라 같은 대도시 교구는 도시화 등의 영향으로 그 비율이 25% 정도라고 필리핀 교회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전체적인 수는 대략 6만 개 정도로 추산, 전국 BEC 활동과 관련을 맺고 있는 필리핀 주교회의(CBCP)산하 정의평화위원회(NASSA: National Secretariat of Social Action-Justice and Peace) 사무실을 찾았을 때 기획실장 루루치프리아노 수녀는 최근의 루손 민다나오지역 BEC 기초 설문조사 결과를 밝히면서 『BEC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가「기도모임」과「복음 나누기」라고 소개,『최근까지 정치 사회적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았으나 PCP-2 이후 신앙 공동체로서의 성격이 강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치프리아노 수녀는『생활 속의 가장 작은 단위 안에서 복음 말씀 아래 믿음과 삶을 나누는 기초 공동체 모임은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키는 교회가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라고 BEC가 필리핀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설명했다.
평신도들의 위상과 그 역할의 강조는 BEC 활성화 문제와도 맞물리고 있는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BEC에 대한 관심은 필연적으로 평신도 지도자 배출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또한 PCP-2를 통해 바티칸 공의회 정신대로 평신도들은 더 이상 「보조자」로 인식되고 그 안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그들만의 독특한 역할로써 교회의 선교 사명에 헌신한다는 인식이 고양되면서 평신도들의 모습은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교회 구조상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사목자들의 숫자는 평신도들의 활동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필리핀 각 본당의 평신도 조직도 매우 잘 정비돼 있다.「본당 수녀」의 개념이 없는 여기서는 한국의 전교 수녀들이 맡고 있는 소임들을 모두 평신도들이 처리해 나가고 있다.
또한 각종 신심운동 단체에서도 평신도 지도자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며 평신도 신학자들의 역할 비중도 상당하다.
특히 여성 평신도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주교회의 일치위원회 사무총장이 여성인 것을 비롯 교회기관 내에는 많은 수의 여성들이 의사 정책 결정 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필리핀 주교회의 평신도 위원회 사무총장 안토니오 B 데 로스레이어스씨는 『현재 위원회에는 37개의 전국 조직 단체와 42개 교구의 평신도위원회가 등록돼 있다』고 밝히고 『약 6천만 필리핀 가톨릭 신자들의 재복음화 작업 상당 부분이 바야흐로 평신도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며『교회 안에서의 평신도 지도자들의 몫은 점점 커지는 추세이고 교회 밖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평신도들의 활동과 관련 로스레이어스씨는 『필리핀 교회 역사 안에서 여성들이 맡아왔던 역할은 괄목할 만하다』면서 『전통적으로 강한 추진력을 갖고 있는 필리핀 여성들은 사회 내 역할과 위상도 그에 못지 않다』고 말하고 『95년 북경여성대회에서 낙태 산아제한 등과 같은 반생명적 풍조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는 여성 평신도들은 전국 차원의 「자모회」조직을 구성 중』이라고 전했다.
스페인 식민시대 당시 필리핀 남성들을 왜소화시키기 위한 「정책적 여성교육 확대」에서 그 영향을 찾을 수 있지만 필리핀 교회 여성 평신도들의 활발한 활동과 능력 발휘는 한국 교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하겠다.
◆필리핀 CLC 부회장 나나가스씨
교회 전반에 걸친 쇄신 필요 평신도 재교육 시급히 요청
『지난 91년 발표된 필리핀 교회 지역 공의회는 평신도들의 위상 정립과 역할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강조한 의미 깊은 기회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도의 한 사람으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평신도 역할의 중요성을 공식화시키는 「표지」가 아닌가 합니다』.
필리핀 CLC 부회장 겸 세계 CLC 재무 담당을 맡고 있는 비타리아노 나나가스씨. 필리핀 CLC 창립 때부터 주요 핵심 멤버로 일해 왔다는 그는 『평신도와 관련한 필리핀 지역 공의회의 결정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의미는 매우 크다』고 평가하면서 『그러나 아직도 사목자들의 의견이 교회 안에서의 평신도 역할과 행동을 좌우하는 경우가 거의 50%라고 볼 때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위상에 맞는 몫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회 전반적인 쇄신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나나가스씨는 현 상황 안에서 필리핀 평신도들의 역할 정립을 위해 시급히 요청되고 있는 것은 바로 「교육」문제라고 못 박는다.
이는 교회 당국의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기존의 평신도 단체들과 지도자들이 평신도들에게 알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널리 확산시키는 작업을 펼칠 때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평신도들이 평신도들을 위한 교육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 향후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필리핀 평신도들의 노력에 대해 「평신도 교육」과 「평신도 선교사 양성」을 꼽은 나나가스씨는 특히 『평신도 교육은 단순한 교리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서 신앙인의 자세를 항상 일깨우고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준비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톨릭 국가이지만 평생에 3번 성당에 나오는 신자들도 많은, 신앙과 생활의 불일치현상이 필리핀 안에서도 시급히 풀려야 할 숙제라는 말과 함께.
사회 안에서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맡은 몫을 잘 수행한다면 사회에 산재한 많은 부조화와 부정의들은 일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한 그는 2천년 대희년을 향한 교회의 새로운 복음화는 바로 평신도들 손에 달려 있음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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