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성소주일이 신학교로 소풍가는 즐거운 날이었는데 이젠 반대로 손님을 맞아야 되는 입장이라 기분이 묘해요. 한편으론 설레이기도 하구요.』
97학년도 서울 대신학교(가톨릭대 성신교정 신학부) 새내기 신학생인 이상선(요셉ㆍ서울 청담동본당ㆍ19)군은 오는 20일 신학교 입학 이후 처음 맞는 성소주일을 벌써부터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군은 또 『많은 선배들이 성소주일을 「청소주일」이라 농담처럼 부르지만 어렸을 때 신학교를 찾았던 기억이 성소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내 경우를 보더라도 넓은 교정을 청소하고 준비하는 것이 힘들더라도 성소주일은 꼭 필요한 날』이라며 성소주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 2월 18일 짐을 싸들고 신학교에 들어온 이군은 근 2주년 동안 용인 성모영보수녀원에서 생전 처음 대침묵 피정에 참석했다.
이군은 『생전 처음 옆사람들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5박 6일을 보냈다』며 『처음에는 정말 힘이 들었지만 피정 마지막에 총고백을 하고 난 후 오히려 홀가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아직 만 20세가 되지 않은 어린 나이의 이상선 신학생. 같은 또래의 친구들은 봄 기운이 물씬 풍기는 캠퍼스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에 대침묵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성당 유치부 때 신부님이 「신학교 갈 사람 손 들어 보라」는 말에 번쩍 손을 든 후 단 한 번도 꿈이 변하지 않았다는 그는 신학교에 입학한 첫날 밤 이불 속에서 뿌듯한 마음으로 잠을 못 이뤘다. 드디어 그렇게 그리던 신학교에 들어와 있다는 설레임이 이군으로 하여금 잠을 설치게 헀던 것.
그런데 웬걸. 아침 6시. 기상 음악 소리와 함께 신학교 생활은 부산하게 시작됐다. 세면하랴, 교복을 입으랴 바삐 일어나 성당으로 달려갔다. 아침기도와 묵상, 아침미사. 때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어떻게 기도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고, 남들이 일어나 기도하는데 앉아 있는(?) 동료도 보이고 아무튼 이상선 신학생에게는 생소한 경험들이 시작됐다.
아침미사가 끝나면 즐거운 아침식사 시간이다. 전날 저녁 이후 아무 것도 먹지 못한 허기진 배를 채우는 목적도 있지만 동료들과 사랑을 나누는 「식탁 공동체」는 마냥 즐겁기만 하다.
식사가 끝나면 화장실 쟁탈전, 수업 준비로 바쁘다. 라틴어를 비롯 신학 원론, 철학 입문, 고대 철학, 교회 음악 등 생소한 학문을 접해야 될 강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영어보다 더 어려운 라틴어 동사 변화를 중얼거리며 강의실로 향하면서도 이군은 「진짜 사제 수업」에 일순 긴장감을 느낀다.
『어떤 상황에서도 밝게 웃을 수 있는 사람, 그 웃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게 나의 꿈』이라는 이군은 『남들에게 늘 편안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사제가 되기 위해 첫 발을 내딛은 것 자체가 즐거움』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점심식사를 마치면 동료들과 운동장으로 향한다. 뒤엉켜 공을 차며 땀을 흘릴 때면 진한 동료애도 함께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는 이군은 『서로서로 자기보다는 동료를 위해주고 아껴주는 마음이 가슴 깊숙이 느껴질 때면 여기가 천국이란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저녁기도와 저녁식사를 마친 후 이군은 매일 바치는 묵주기도 시간을 기다린다. 신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운동장 끝까지 걸어가다 동시에 돌아서서 다시 걷는 신학교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처음 접할 때 신기하기까지 했다는 이군. 동료들과 선배 흉내를 내며 걸어보니 정말 재미있기도 했지만 상쾌했다는 이군은 이렇게 산책하며 신학교 구석구석을 걷는 것이 한없이 좋단다. 뒷짐을 쥔 손에 묵주를 들고 동료들과 묵주 기도를 바치는 시간 만큼 신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느낀다는 이군.
저녁 대침묵 시간과 너무 이른 취침 시간이 조금 힘들지만 이군에게 신학교 생활은 가슴이 벅찰 정고로 큰 의미를 주고 있다고.
이상선군은 『집에서는 여름에도 더운 물로 목욕을 했는데 신학교에서는 겨울에도 찬물로 세수를 해야 하는 것이 처음에 힘들었지만 이젠 익숙해져 있다』며 『배고프고, 추워서 신학교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것도 「과거지사」인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신학교에 입학한지 한 달 반이 지났지만 지난 부활 실습으로 6일간의 외출을 해 본 이후 바깥 세상과 동떨어져 그리스도의 향내 나는 거룩한 사제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상선군. 영성의 해로 1학년은 방학을 제외하곤 외출을 금지하고 있는 신학교 방침에 따라 이상선군은 동료들과 함께 신학교 안에서 살고 있지만 바깥 세상이 전혀 그립지 않단다. 6일간의 부활 실습 기간 동안 너무나 바깥 세상이 시끌벅적해 당황하기도 했다는 이상선군은 벌써 신학생의 맛에 길들여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상선군은 『앞으로 정말 신자들에게 넉넉한 사제, 편안한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 생활을 열심히 해 나가고 싶다』는 새내기 신학생의 모습에서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상큼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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