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신부 영향으로 수도회에 입회, 사제품을 받은 그 삼촌 신부가 선교사로 나와 있던 한국 땅에 지원 20여 년을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사촌 형제들이 있다.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꼬회 한국 관구의 범덕례 신부(P Francesco Faldani 중국 연길 거주ㆍ76)와 장자호 신부(P Giancario Faldani 인천 갈산동본당 보좌ㆍ55) 배문호 신부 (P Paolo Faldani 서울 외국인성당 주임ㆍ52). 똑같은 성씨에서 암시되듯 이들은 삼촌-조카, 사촌 형제지간의 친인척 관계로써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꼬회 한국 관구 「Faldani(팔다니) 가족 삼총사」다.
4월 어느날 저녁 자리를 함께 한 이들. 이날은 모처럼 삼촌 조카 세 사람이 만나는 날이었다.
범 신부가 5년 전부터 중국 선교 준비를 위해 연길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그간 가족 모임(?)은 장 신부와 배 신부 두 사람에 위해서만 이루어졌었다.
장 신부와 배 신부는 자신들을 수도회로 낚은(?) 장본인, 범 신부의 중국 생활 얘기를 듣고 자신들의 한국 생활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75세 나이에도 정정함을 자랑하며 「10년 동안 아스피린조차 먹은 일이 없다」고 노익장을 보인 범 신부는 『아무리 조카들이지만 「낚시」를 너무 잘해 월척을 낚은 것 같다』며 자신과 같이 한국 선교 생활을 지원했던 두 조카 신부들에 대해 대견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장 신부와 배 신부는 범 신부가 말보다는 몸으로 사제의 삶을 보여 주었기에 더욱 자연스럽게 수도회 입회와 사제수품 선교사 생활을 지원할 수 있었다고 응수.
범 신부는 11남매의 형제를 두고 있다. 조카만 해도 55명이다. 그 중 4명을 자신과 같은 수도회에 입회시켰고 장 신부 배 신부, 배 신부의 형 등 세 명이 사제로 수품됐다.
중국 선교사 파견을 위해 파격적으로 23세 나이에 (당시 교회법상 24세 이상이 사제서품 대상 나이) 사제품을 받았던 범 신부는 47년부터 52년까지 중국에서 생활했다. 공산 정권의 출국 명령으로 고향에 귀환했던 범 신부는 수도회서 성소 담당을 맡았었고 이 같은 범 신부의 전력은 조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선교를 위해 교향을 떠나기 전 오토바이를 타고 인사하러 왔던 삼촌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다섯 살의 꼬마였습니다.』
동생 형 누나들과 범 신부의 오토바이에 타고 장난을 하면서 아버지와 범 신부의 작별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장 신부는 『그러한 모습은 선교사의 꿈을 갖게 했고 자연히 수도회를 지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들려 줬다.
장 신부의 수도회 입회와 사제품은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어린 시절을 거의 한 집에서 보냈던 배 신부와 배 신부 형에게도 파급 효과가 컸다.
버신부는 꼰벤뚜알 성프란치스꼬회 한국관구의 초기 멤버다. 한국관구 설립을 위해 58년 먼 이국만리 동양의 한 작은 나라를 찾았던 범신부는 당시 수련 생활을 하고 있던 장 신부와 편지로 한국 교회 상황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꼬회의 경우 선교사로 파견될 때에는 대부분 선교지역이 본인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남미쪽으로 선교를 갈까 생각 중이던 장 신부에게 범 신부와의 서신 연락 등은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 대한 애착을 갖게 했다. 이는 삼촌 신부가 있는 한국으로 선교를 자원하는 강력한 배경이 됐다.
배 신부는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꼬회가 한국에 파견한 마지막 이태리 사제다. 그 역시 삼촌 신부와 사촌 형 장 신부가 있는 한국 교회를 선교지로 수도회 측에 청했다.
범 신부는 조카들이 한국에 오겠다는 의사가 기뻤고 반가웠으며 이들의 입국이 기다려졌었다고 들려준다. 이로써 장 신부는 69년, 배 신부는 74년 각각 한국에 입국했다.
장 신부와 배 신부는 요즘도 거의 1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남을 가지면서 서로의 사제생활을 격려해 주고 사촌 형제간의 우애도 나누고 있다.
『삼촌으로서 조카들에게 어릴 적부터 성소에 대한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인간적 측면일 것입니다. 그 외의 것은 하느님 뜻일 것입니다. 또한 말로써 조카들을 낚으려 했다면 아마 55명 모두 성소를 가지게 됐을 것입니다.
범 신부는 이 같은 말에 덧붙여 『성소의 결정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 꿈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서 『성소가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가정에서 특별히 기도한다면, 「성서」안에서 자주 기도하고 하느님을 우선으로 하는 생활이 이루어진다면 성소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신부와 배 신부도 자신들의 경우 어릴 적 가정기도가 성소의 길을 걷게 하는 밑받침이 됐다고 범 신부의 말을 거들었다.
이제 조카 신부들에게 「북한 선교」의 꿈을 남겨주고 싶다는 범 신부는 자신은 중국에서, 조카들은 남한에서 각각 출발, 북한에서 만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며 지칠 줄 모르는 노선교사의 열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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