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려는 길이 얼마나 좋은지는 잘 몰라도 나쁘지는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말리지는 않겠다』
수녀회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가톨릭 신자가 아니던 아버지는 첫 딸을 차마 보낼 수 없으면서도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입회를 허락했다. 역시 비신자였던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수도생활을 선택한 딸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갑자기 뒷통수를 치듯 제 마음 안에 하느님이 들어 오셨나 봐요. 만 2년 동안을 거부하다가 수녀가 되겠다고 결심하자 그때서야 마음에 평화가 찾아들더군요』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 세 자매 수녀 중 맏이인 이현숙(마리아) 수녀는 입회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나쁘지는 않다고 들었다」며 허락하신 아버지의 가슴을 지금은 온전히 이해한다. 곡기를 끊기까지 한 어머니의 반대가 실은『어려운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으려면 나의 반대를 이겨내라』는 시험이었음을 깨달은 것도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고 한다.
7남매 중 맏아들 아래 딸로서는 첫째였던 마리아 수녀가 입회한 것이 63년, 뒤를 69년 셋째 이영숙(로욜라) 수녀가 같은 수녀회에 입회했고 10년이 넘은 후 80년에는 밑에서 두 번째 이진숙(레지나) 수녀가 언니들의 뒤를 이었다. 이미 어머니는 마리아 수녀가 입회 때『네 뒤를 줄줄이 동생들이 따라갈 것』을 예언한 바 있다.
입회는 큰 언니가 먼저 했지만 수도생활의 뜻을 세운 것은 동생들이 먼저였다. 로욜라 수녀는 중 2때, 레지나 수녀는 이미 초등학교 때 굳게 뜻을 세웠다. 세 자매 수녀는 각각 72년, 80년, 그리고 88년에 종신 서원을 마쳤고 수도생활의 참 기쁨과 평화를 가슴 깊이 누리고 있는 듯했다.
세 자매 수녀는 같은 수녀원에 소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의 소임을 주로 맡아 왔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부산과 서울의 성 분도병원에서 주로 일을 해온 세 수녀는 간호사 자격증을 모두 갖고 있다. 마리아 수녀와 레지나 수녀는 수녀원에 들어온 후 간호사 자격증을 땄고 로욜라 수녀는 세상(?)에서 간호사로 2년간 일한 경험도 갖고 있다.
마리아 수녀는 현재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에서, 레지나 수녀는 부산 성 분도병원, 그리고 로욜라 수녀는 서울 성 분도병원에서 소임을 수행하고 있다.
『병들고 지친 사람들 곁에서 그들의 육체를 치유해 줄 뿐만 아니라 삶의 기쁨과 희망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같은 수녀원에, 그것도 같은 일을 세 자매가 하는 것이 혹시 불편한 경우는 없는가 하는 질문에 세 수녀는 오히려『한 번쯤 셋이 한 병원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일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다소 통속적인 표현이긴 하지만『다시 태어나도 수녀의 길을 가련다』라며 세 자매는 수도생활이 결코 외롭거나 고통스럽기보다는 기쁘고 즐거운 길이라고 말한다.
입회를 결정하고 부산행 기차에 올랐을 때 두려움에 가슴을 졸였다고 레지나 수녀는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도자로서의 내 삶은 내가 살아 냈다기보다는 하느님이 살아주신 것임을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보다는 돌아보지 않고 주님께 의탁할 뿐입니다』
세 자매는 태중교우는 아니었다. 59년 레지나 수녀가 영세한 후 60년 마리아 수녀, 61년 로욜라 수녀가 영세를 했고 온 가족이 차례차례 세례를 받았다. 올해 81세인 아버지 이호종(바오로)옹은 지금도 매일 성서를 큰 소리로 읽고 어머니 조순남(모니카·77세) 여사는 레지오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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