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 기간 중 교황이 참여한 단일 행사로서는 최다 인원을 동원했던 95년 제10회 마닐라 세계청소년대회와 같은 시기에 개최된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교황은「필리핀 교회는 3천년대 아시아 복음화에 있어 그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교황은 1981년 아시아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필리핀 주교들을 향해「필리핀 교회가 맡고 있는 필리핀 및 아시아 지역에 뿌릴 특별한 복음화 소명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명쾌하게 밝힌 바 있다.
필리핀 교회는 과연 이러한 주변의 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떠한 구체적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일까.
제2차 필리핀지역 공의회에 참여했던 한 사제는「필리핀 교회에 있어 선교 소명은 특별한 반향을 갖는다」고 밝히면서『아시아 안에서 85%라는 수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필리핀 교회는「선교하는 교회」로서의 의무를 지닌다』고 자신들의 선교 소명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다.
덧붙여 그는『필리핀 사회를 향한 선교 임무도 교회가 갖고 있는 중요한 몫이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필리핀 주교들에게 강조했듯이 그리스도의 빛을 아시아 내 다른 나라 민족들에게 심는 역할도 이에 못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재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리핀인 선교사들은 약 1천 명에 달한다. 이는 성직·수도자, 남녀 평신도들을 합한 수치이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60년대 출범한 필리핀 외방선교회와 평신도 선교사들의 활약은 매우 두드러지고 있다.
필리핀 외방선교회 레스띠 가랑 신부는『선교회들은 많은 회원들을 계속해서 모집하고 해외에 보내고 있다』고 말하고『이러한 것들은 필리핀 땅에 심겨진 복음의 씨앗들이 결실을 맺고 추수되는 표징』이라면서 해외 선교 활동에 대한 고무적 반응을 표시했다.
해외 선교면에 있어 필리핀 교회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해외 진출을 통해서도 아시아 및 전 세계에 뻗칠 잠재적 선교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제2차 필리핀지역 공의회 문헌 108항을 통해 필리핀 교회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갖는 선교 소명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외국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신앙의 증거자가 될 수 있으며 그 같은 신앙의 증거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가톨릭에 대한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 8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유럽지역 필리핀 노동자들과의 만남에서『필리핀 노동자들은 신앙의 새로움과 활력을 유럽 대륙에 부여해 주면서 몇백 년 전 서구로부터 받은 신앙을 다시금 유럽인들에게 되돌려주는 소명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CBCP 이주사목위원회 한 관계자는『이같이 해외 노동자들에게 갖는 필리핀 교회의 기대는 다른 한편 평신도들에 대한 교육 강화 노동자와 노동자 가족들에 대한 사목적 사회적 관심을 적극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필리핀 교회는 중국 선교와 회교인 등 타 종교인들과의 대화도 선교의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카테고리의 하나로 설정, 이에 대한 선교 전략도 차분하게 준비해 놓고 있다.
베드로 메시오나 신부(CBCP 선교위원회 총무)는『필리핀은 또한 중국계 필리핀인들을 위한 거대한 선교장이 될 수 있다』면서『필리핀 국민의 20%를 웃도는 중국인들은 매우 효과적인 선교 역군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메시오나 신부는『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대 중국 선교를 내다볼 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면서『특히 중국 본토, 동아시아 중국 교민들과 연계를 맺고 있는 중국계 필리핀인들에 대한 사목 작업은 그만큼 중국 선교 가능성을 밝게 해 주는 요소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필리핀은 이미 중국인 신학생들만을 위한 신학교도 마닐라 내에 따로 설립해 놓고 교육 중이다.
타 종교인들에 대한 선교 면에서 필리핀 인구의 5%를 차지하는 회교도인들에 대한 관심도 중요한 사안 중 하나이다.
특히 회교도인들에 대해서는 두 가지 면에서 선교 중요성이 강조된다.
필리핀 역사를 볼 때 회교도인들과의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았고 또한 아시아 대륙에서 회교도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매우 크다는 이유 때문이다.
EAPI SAIDI 등 필리핀 내에 있는 유수 사목연수기관 등도 필리핀 교회가 아시아 선교 중심센터로 나아가는 역량을 제공한다.
최근 설립 30주년을 맞은 EAPI(East Asian Pastoral Lnstitute)는 명실공히 세계적 수준의 사목연수기관으로 꼽히고 있다.
예수회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EAPI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아시아 태평양 국가 성직·수도자, 평신도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이념으로 설립됐다. 설립 후 지금까지 각 나라에서 참여한 3천2백여 명의 연수생을 배출했는데 이 중 한국인은 9백여 명 정도이다. 역대 연수생 중 7명이 주교로 서품됐고 수도회 총장 관구장 원장들과 교구 교리나 전례 지도자 학교 본당 사회사업분야 협력자로 봉사하고 있다.
필리핀 교회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그리스도 교회의 유산도 아시아 복음화 센터 고지를 향한 강점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 유럽 교회로부터 이어받은 가톨릭 신앙이 4백여 년의 역사 속에 나름대로 자리를 잡으면서 아시아인의 심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필리핀 교회. 이렇게 필리핀 교회가 터득하고 정착시킨 선교 방법론은 한국 교회 및 다른 아시아 교회에 토착화의 한 전형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많은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필리핀 주교회의 사무총장 귀또리오 몬시뇰
「도시화」영향이 가장 심각한 문제 복음화 전략·평신도 선교사 양성 요청
필리핀 교회가 갖는 활력과 생기 이면에는 새로운 복음화와 아시아 복음화 작업을 추진하기 위해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여러 어두운 면도 지니고 있다.
미사 참례자가 평균 10%이고 세례 이후 결혼과 장례 때만 성당에 나오는 신자도 많다. 가톨릭 신앙이 하나의 국민적 전통으로 뿌리 내려져 있지만 한 본당 신자 수가 많게는 5만 명 적게는 1∼2만 명에 이르는 상황은 앞서 언급됐듯이 많은 신자들의 원만한 성사생활을 막고 있다.
필리핀 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총장 귀또리오 몬시뇰은 현재 필리핀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도시화」를 꼽았다.
그는 도시화로 인한 물질주의 세속화의 팽배가 신앙과 생활의 유리현상을 가져오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로써 신앙은 하나의「관념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세속화 되어가는 가치들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접근시키고 삶 안에서 교회적 시각으로 풀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닐라 같은 대도시의 경우 필리핀 교회가 2천년대 복음화를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BEC(Basic Ecumanical Communities) 조직률이 지방 교구에 비해 훨씬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도시화의 영향일 것이라고 귀또리오 몬시뇰은 덧붙였다.
이런 배경에서「가정사목」에 대한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고 전한 그는『가족은 직계와 방계 혈족들이 수평적 수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조직』이라면서『가정은 또한 BEC의 보다 기초적인 단위라 할 수 있으며 가정사목이 활성화될 때 노인 청소년 등 모든 계층의 사목도 원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명실공히 아시아 선교 중심지로 서기 위해「보다 구체적인 아시아 복음화 전략」과「평신도 선교사 양성 증대」가 요청되고 있다고 전한 귀또리오 몬시뇰. 그간 60년대「필리핀 외방선교회」가 설립되면서 해외 선교가 활발히 이루어졌지만 아시아에 대한 심층적 연구와 효과적인 선교 전략이 따라주지 못해 비효율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전까지는「아시아인」이라는 연대의식이 필리핀은 물론 아시아 교회 상호간 매우 부족했다고 느낍니다. 제3 세계의 비중과 이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점차 부상함으로써 아시아 교회간에도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공감대가 번져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귀또리오 몬시뇰은『특히 내년도 주교 시노드에서 다뤄질 주제가「아시아 교회 복음화」라는 점에서 기대되는 바가 많다』면서『아시아 주교회의 차원에서「아시아 선교 전략」이라는 조항을 설정, 이에 대한 새로운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교회들간의 연대와 이를 통한 아시아 복음화 전망은 매우 낙관적』이라고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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