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현대 한국 가톨릭 건축과 과제
▲서언
2백여 년 전의 학국 교회사에서 가톨릭 건축은 비록 1백 년의 역사 밖에 되지 않으나 신앙의 자세와 의식을 반영한 한국 가톨릭 문화의 표상으로서 다양하게 변천, 발전하여 왔다.그 변천 과정에서 외국인 성직자의 선교 이념과 문화 배경에 따른 양식 결정,일제시대의 침체 등 타율적인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1980년대를 전후한 급격한 교세의 확장과 그에 따른 본당의 증설, 수많은 성당의 건립으로 한국 가톨릭 건축은 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하여 왔다. 그러나 거대화, 세속화, 물질주의 경향 등 외형적이고 양적인 팽창에 따른 문제점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1세기의 가톨릭 건축사가 우리의 전통 건축문화와는 전혀 이질적인 서양 건축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범했던 유아기였다면 2천년대는 가톨릭 건축문화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시기가 될 것이다. 건축 기술이나 재정적인 기반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교회 건축의 이념과 철학의 문제, 토착화가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하며 이러한 과제는 문제의 제기와 인식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현대 한국 가톨릭 건축은 과연 종교 건축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가? 그리고 사회의 새로운 요구와 변화에 부응하고, 우리의 전통문화와 조화되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스스로의 깊은 반성과 비판 없이는 참다운 가톨릭 건축문화를 기대할 수 없다. 본고는 그간 제기되어 왔던 가톨릭 건축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그 해결 방안을 검토하고, 한국 가톨릭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20세기 현대 가톨릭 건축의 쇄신과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다. 공의회의 정신은 무엇인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교회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교회 건축에 수용하였는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 교회를 내적으로 쇄신하고 외적으로는 문화를 개방하여 그리스도교 세계의 일치를 촉진시키기 위해 소집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궁극적인 목표는『신앙을 풍요롭게 함 』이었으며 『aggiornamento(up-date)와 participatioactuosa(active participation)』의 두 가지 원칙은 전례와 건축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 1970년대는 고딕 변형의 양식주의 건축에서 벗어나 건축가 자신의 신앙 체험과 종교관에 따라 다양한 평면과 형태가 나타났다. 특히 미사에는 평신도들의 적극적이고 농동적인 참여가 가능한 중앙 집중형 형태와 전통 표현이 추구되었고 상당한 성과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념이 실제 전례 형태와 내부 공간 구성에 연결되지 못하고 외형에만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중앙집중형 평면과 공간을 갖춘 성당도 제단의 위치나 신자석의 배열은 종축 장방형이나 부채꼴이어서 전례의 기능과 형태가 일치되지 못하였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다시 방형으로 되돌아간다. 이는 중앙집중적인 전례 형태를 수용하지 못한 결과이다. 특히 제단 구성이 일률적이고, 감실, 세례대, 고해소 등의 장소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정신을 교회 건축에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사회적인(세속적인) 기능을 과감히 수용하면서도 전례에선 각자가 사제의 인도를 받아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획일적이고 형식적인 전례를 선호한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경향은 신자들의 이중적 신앙 체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전례의 토착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말해 주기도 하지만 공의회 문헌에 대한 올바른 건축적 해석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 기인한다.
▲현대 성당 건축의 거대화 문제
자주 비판되는 도시 성당의 거대화는 높은 지가, 인구 집중, 급속한 교세 확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제와 일반 신자들간의 인간적인 접촉 기회를 상실하게 함으로써 공동체적 유대감과 소속감의 결여를 낳게 하며 기계적이고 냉랭한 분위기의 교회를 만들고, 본당 운영 자체가 사목의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어 지역 교회로서의 사명을 소홀히하기 쉽다. 신자들에게 사제는 교회의 관리자로 비춰지고 결국은 관료적, 권위주위적, 폐쇄주의적인 공동체로 기울어지며 무리한 건설 재정 확보의 과정에서 가난한 신자들의 상대적 빈곤감, 소외현상이 일어난다.
건축적으로는 대지에 비해 극대의 용적을 추구함으로써 주변 환경과의 부조화, 기능과 동선의 혼란, 성(聖)과 속(俗)의 불분명, 공간성의 상실 등 성당 건축의 세속화 현상과 함께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건축가, 도시 계획가 등 전문가가 참여하는 교구 차원의 장기적인 본당 분할의 마스터 플랜이 수립되어야 하며, 성당 규모와 공간 구성 비율, 상당 입지 등에 대해서 심도 깊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획일적인 기준보다는 지역의 특수성에 따른 몇 개의 유형을 설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속화와 물질 지향주의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은 교회 건축의 비성역화, 민주화, 인간화, 다용도화 현상을 낳았다. 즉 교회 공간과 일상 공간과의 동질성을 도모하고 교회 내의 위계적인 분절을 배제하여 신앙 공동체에 누구나 똑같이 참여한다는 느낌을 제고해 줄 수 있는 교회 건축의 개념이다. 그러나 사회 참여가 너무 중시되어 인간의 존재 의미 및 하느님과의 재연합이라는 종교의 근본적인 문제가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 점 우리가 안고 있는 심각한 딜레마이다. 교회 건축은 바로 교회의 정신을 드러내는 얼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건축을 통해 복음의 메시지를 드러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성당은 『그리스도의 몸』인 동시에『신앙 공동체의 집』이다. 따라서 성스러움의 구현은 언제나 종교 건축의 중요한 테마이다.
종교 건축은 그것이 목표로 하는 성스러운 것의 구현을 비물질화에 두고 있다. 종교 건축의 주된 개념인 동일성, 초월성, 투명성 등은 그 대상으로 형태나 질료보다는 공간을 더 우위에 두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크기와 형태, 장식으로서 신앙을 표현하려고 한다. 물질의 풍요는 자칫 건축의 성실성과 진실성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무분별한 장식의 남용을 억제하고 우리에게 아쉬운 나눔과 가난의 정신을 건축에서도 가져야 한다.
▲건축 양식과 토착화 문제
흔히들 한국의 성당 건축은 서양교회 건축 양식을 여과없이 절대 규범인양 받아들임으로써 고위의 특성을 갖지 못하고 우리의 전통 건축문화와는 유리된 무국적의 건축이라는 비판을 한다. 그러나 일방적인 서양 것의 이식이라기보다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의 형편과 상황에서 가능한 성당 건축이 만들어졌다. 요는 그동안의 시대 상황이 외세의 침략과 전란 등으로 우리의 전통 문화를 계승할 겨를이 없었고, 또한 교회 건축사로 보면 가장 경색되고 고갈되었던 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 건축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던 측면이 강했을 뿐이다.
개화기에는 전통 목조건축으로 가톨릭 전례와 중세 성당 건축의 핵심 요소를 수용코자 한 토착화의 훌륭한 시도도 있었다. 다만 이러한 전통이 계속되지 못하였고 서양교회 건축 양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거죽만 모방하였다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토착화된 성당 건축의 모델은 어떤 것인가? 일반적으로 건축 양식을 이야기할 때 개념이나 원칙보다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형태를 이야기하는데 다원적인 시대의 현대 건축에서는 이상적인 양식이나 형태를 말하기 힘들다. 중세의 고딕 양식이 오랫동안 교회 건축의 모델이 되어 왔지만 현대는 양식(style) 건축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어떤 한 양식과 형태가 이 시대의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역사적인 양식이 갖고 있는 개념과 원칙을 예를 들면 고딕 양식의 진실성이라든가 공간의 위계적인 분절화 통이성 등-현대 건축으로서 수용하고 표현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전통의 계승도 토착적인 형태나 고건축의 복고가 아니라 전통적인 공간 구성의 원리와 자연과 조화하는 건축 이념 등 내면적인 정신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환경 친화적인 교회 건축
21세기 교회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환경 친화적인 교회 건축』이다. 교황이 강조하고 있듯이 환경은 인간의『자원』이자『집』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자연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으로 하여금『이 땅을 채우고 복종시키라』(창세 1, 28)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세상 만물이 인간을 위하여 창조되었으므로 이것을 현명하게 사용할 사명을 인간에게 준 것이다. 그리고 창조된 재화는 사랑과 정의에 입각하여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 지배의 원리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그러나 무모한 자연의 정복과 변형은 자연의 타락과 폐물, 새로운 질병과 전면적 파괴력 같은 가공할 위협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자연이야말로 전 인류의 유일한 공유 재산으로 보호하고 보존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의 교회 건축은 에너지 절감과 환경 보전에 의한 자연의 위대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가 의무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건축 사상과 원리를 실천하므로써 가톨릭이 앞장서서 벌이고 있는 환경보전운동의 메시지를 교회 건축을 통하여 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현대 교회 건축은 교회 건축의 이념을 상실하고 기능성과 장식, 감각적인 표현에만 집중하고 있다. 『하느님 백성』이 과도하게 강조되거나『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적 표현에서 많은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새삼 성당 본연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 성당은 믿는 이들이 공동체로 모여 하느님을 섬기는 곳이다. 전례라는 기능을 담는 그릇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표상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가톨릭교회의 전례는 하느님과 구원되어야 할 인간들과의 결합이며 끊임없는 만남이다. 그러므로 성당은『하느님의 집』(Domus Dei)인 동시에『하느님 백성의 집』(Domus EccIesia)이다. 하느님과 인간, 인관과 인간과의 깊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훌륭한 교회 건축문화의 창달을 위해서는 신앙과 신학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을 전개함과 동시에 전문성이 존중되는 풍토를 조성하여야 한다. 공의회 문헌에 대한 해석도 재검토되어야 하고, 교구청 심의도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 건축을 주도하는 성직자와 건축가가 공유할 수 있는 공통 언어와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며 신자들의 의식이 변하여야 한다. 신학교 교과 과정에 교회 건축, 미술에 대한 기초 교육이 있어야 하고 건축가는 전례와 교회 미술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항상 기도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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