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살이 반가운 화창한 봄날. 형형색색 나들이 옷을 차려 입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 시민들로 호수 주변은 번잡스럽다. 탁 트인 호수 위로 모터 보트가 시원스레 달리고 호숫가 언덕 위로는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와 푸짐하게 상을 차려둔 음식점, 그리고 모텔들이 즐비하다.
얼음이 풀리자 팔당호 주변과 북한강변의 유원지에는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팔당호가 바로 우리들이 마시는 식수라는 것을 주의깊게 생각하고 있을까.
◆잊어버린 페놀사태 교훈
2천만 수도권 시민들의 생명수인 팔당호가 죽어가고 있다.
지난 91년 낙동강 페놀사태는 우리에게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우쳐 준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때의 교훈을 모두 잊어버린 듯하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수도권 주민들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양질의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것은 팔당호 덕택』이라며『만약 팔당호의 오염이 악화된다면 그간 겪었던 낙동강 수질 악화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팔당호가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신한국당은 지난해 상수원 보호를 위해 묶어 두었던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입법화하려고 시도했다. 팔당호와 대청호 인근 40Km 지역만『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그동안『자연보전권역』으로 묶여 있던 안성,이천, 양평, 가평, 여주 등 경기도 일부 지역을『성장관리지역』으로 풀어 준다는 것이다.
자연보전권역은 지난 83년 경기도 3개 시 5개 군에 걸쳐 설정한 개발제한구역. 이것이 해제될 경우 서울시 면적의 3배가 되는 지역이 개발되고 따라서 상수원의 오염 부하량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한 이치.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물의 오염도를 나타내는 생물화학적 산소 요구량(BOD)이 90년 1.0ppm으로 한계 수질을 기록한 이래 91년에서 92년 사이 1.1ppm, 93년과 94년에서 1.2ppm, 95년에는 1.3ppm 지난해에는 1.4ppm으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1등급으로 떨어졌고 대책이 없는 한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 같은 오염의 일차 원인은 생활 오폐수. 취수구에서 반경 8Km 내외를『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지만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못하고 있다. 또 90년부터는 팔당호 주변과 상류인 북한강변 등 위락시설이 밀집된 지역을 중심으로『팔당 특별대책지구』를지정했지만 이미 들어설 것은 모두 들어서 포화상태이다.
남양주시 화도읍 삼봉리를 기점으로 북한강변은 소위 러브호텔을 비롯한 각종 숙박시설과 식당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팔당-대청호 등 상수원 주변의 위락시설이 90년 6월 3천5백8개 소에서 95년 1월에는 5천3백48개 소로 늘어났다. 이 중 팔당 특별대책지구의 시설은 6년 사이 3배가 늘었고 허가 기준인 약 1백20평 미만의 시설은 90년 2천5백51군데에서 96년 무려 7천6백30군데로 늘어났다. 이런 시설들이 늘어난 것은 94년 국토이용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준농림지역으로 묶여 있던 논밭의 지목을 대지로 바꿀 수 있게 된 때문이다.
환경과 천적인 골프장만도 지난해 말 현재 15군데에 2군데가 더 공사 중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늘어났다. 경안천 상류에는 용인 유류 비축 기지를 비롯해 각종 공단이 들어서 있고 남한강 줄기에도 위락시설이 늘어났으며 양평군 귀여리 검천리-수청리 등 남한강 입구에도 새로운 시설들이 집단으로 들어서고 있다. 팔당호가 한 눈에 들어오는 목 좋은 곳에는 예외없이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문제는 이들 시설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화되지 않은 생활 오폐수이다. 한강 환경관리청에서 지난 2개월간 팔당 상수원 특별대책지역을 조사한 결과 아파트 단지 90%가 기준치 이상의 생활 오수를 방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팔당호로 매일 유입되는 오폐수는 약 20만5천 톤으로 그 75%는 아파트 외 음식점 등의 생활 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팔당호 인근 한 카페의 주인은『화장실 물과 개수물은 따로 정화조를 거친 후 내보내고 한 달에 한 번씩 청소 회사에서 정화조를 청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간이 정화시설의 정화 처리율은 50% 미만이고 특히 부영양화의 원인인 질소와 인은 전혀 제거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적으로 정화시설을 가동해도 반 이하의 효율이고 그나마 제대로 가동되는지도 의문이다.
◆납 성분 검출돼 충격
강으로 유입되는 오폐수량은 한강이 압도적이다. 95년의 경우 한강에는 7백38만 톤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전국 오폐수 발생량의 42%를 차지했다. 지난해 3월에는 한강의 일부 구간과 팔당 상수원 취수구 인근 경안천 등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납 성분이 검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대안은 없는가. 규제와 감시, 억제는 일차적인 수단이다.
낡은 처리시설을 바꿔 처리 효율을 극대화시키고 처리 기준을 크게 강화하며 상수원 일대의 시설들이 오수를 마음대로 버리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다.
이미 포화 상태인 위락시설들에 대한 종합적인 괸리가 필요하다. 또 보호구역 지정에 불합리성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보호 구역과 특별대책지구 등의 오폐수를 팔당호로부터 원천적으로 분리 처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나아가 팔당만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의 수질을 종합적으로 괸리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물 관리법안 등 관리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수질 보전은 주민 손으로
하지만 막상 각종 규제에 시달려 온 보호구역 내의 주민들은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수질 보전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다. 팔당 상수원 유기농업 운동본부장 정상묵씨는『수질 개선은 정부가 만든 법이나 서울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민들이 해야 하는 것』이라며 주민 지원사업 확대 등 적극적으로 수질 감시와 개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경기도 구리시 등 지역간에 빚어졌던 갈등 역시 기본적으로 규제로 인한 주민의 피해에 대한 문제였다. 주민과 물을 격리시키려고만 애쓸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 주민 자신들이 물을 보호하도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는 2002년부터는 물 부족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93년 이미 예비율이 7%에 불과한 물 사정이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2천만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원인 팔당호의 오염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현재 상황만 해도 몇 년 후에 장담할 수 없는데 아직도 늘고 있는 오염원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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