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다. …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 (요한 15, 9 ~ 10ㆍ10).
요셉 신부님! 시간 좀 있으십니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시편 8, 4) 총고해성사를 보기 전 우선 서면으로 면담을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 부활대축일 감사 철야 피정 제1부 가르침을 마치고 제2부 감사 찬미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쉬면서 준비하고 있는데 칠순이 훨씬 넘은 할머니(세실리아) 한 분이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편지 봉투 뭉치를 건네주셨습니다. (본인이 수원교구 안양지구 성령쇄신봉사회 지도신부(1988. 1. 1 ~ 1994. 2. 12)로 매주 금요일 쳘야 기도회를 주관).
새겨서 읽어야 간신히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시작부터 19페이지 끝까지 눈물로 얼룩진 한 편의 드라마 대본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해서… 6ㆍ25 전쟁 후 『진리가 무엇인지? 하느님이 무엇하는 분이신지?』 내용도 잘 모르고 부모님 따라 세례를 받기는 하였습니다만 먹고 산다는 게 무언지?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냉담하던 중에 미신자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손이 귀한 집안이라 별별 수단과 방법을 써 보았지만 십 년이 넘도록 아들이 없자 부처님을 잘 공양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이웃집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1백일 기도를 다섯 번이나 거듭하고 공양을 드렸지만 아들은 커녕 계속해서 딸만 낳게 되어 딸 다섯을 데리고 결혼 후 14년 만에 아무런 대책 (보상)도 없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산다는 게 죄지만…. 일방적으로 시댁에서 쫓겨나 딸 다섯을 데리고 먹고 살기 위해서 안 해 본 일이 없고 못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산다는 게 죄였습니다. 연탄불을 피워 놓고 딸 다섯과 함께 동반자살을 할까? 하였지만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종합진단을 받아 보았지만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제 몸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좋다는 약이라면 물 불 가리지 않고 먹어 보았지만 시름시름 아프더니 끝내는 거동을 못하고 자리에 누워 꼼짝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단식기도원에 가면 고친다고 하는데… 살려 준다고 하는데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단식기도원에 갔을 때 제일 먼저 마음에 거스르는 것은 열십 자로 만든 나무 십자가였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가물가물거리는 추억입니다만 십자가에 사람이 매달려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여기 있는 십자가에는 사람이 매달려 있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셔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못을 박아 놓거나 손과 발을 묶어 놓는 것은 불경스런 일이고, 천주교에서는 나무 십자가에 예수님을 상징하는 상을 붙여 놓는 것은 우상숭배요 미신 행위이기 때문에 우리 예배당에는 나무 십자가만 세워 놓는 것이라고….
늘 마음 한 구석에는 아주 어렸을 때의 천주교 성당, 성당 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그 모습만은 간직하고 살았는데 우상 숭배라니…. 하루 이틀 시키는대로 하다 보니 1백일이 훨씬 지났습니다. 한 발자욱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 몸은 쇠진되었고 누워 있으면 천정이 빙빙 도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어서 나에게로 오라』고 손짓하는 꿈도 꾸었습니다.
죽기 전에 고향에 있는 성당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 보고 싶었습니다. 큰 딸을 오라고 해서 사정사정하여 고향 떠난지 50년 만에 다 죽어가는 몸으로 찾아갔으니 반겨 맞아주는 사람도 없고, 물론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성당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 가 보니 성당 앞에 두 팔을 벌린 예수님과 그 아래에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은 다 나에게로 오시오』 (마태 11, 28)라는 말씀과, 그 옆에 성모님이 예수님의 시신을 안고 있는 성상이 친정 어머님처럼 반겨 맞아 주었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 미소를 지으시며 『어서 오라』고 하신 소리에 깨어 보니 십자가 앞에서 울다가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날이 마침 10월 3일 (소화 데레사 성녀 축일)로 성인전이 제대 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지옥에서라도 주님을 더 사랑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곳에 뛰어들겠습니다.』(소화 데레사)라고 하신 성녀의 말씀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뭉클」하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요셉 신부님! 십자가의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물기보다는 제 자신의 빈 가슴과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서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듯이 한 평생을 살아 온 제가 감히 용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염치 없습니다만….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요한 15, 9)고 하셨는데 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사방팔방 온 마을을 헤매고 다녔으니 감히 하늘을 바라볼 수 없고 십자가 주님을 뵈올 염치가 없습니다.
요셉 신부님! 저를 모르시지요? 한 달 전부터 이웃집 할머니와 철야 기도회에 나와 얼굴도 들지 못하고 맨 뒤 구석에 엎드려 울다가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불안도 없어졌고 걸어 다닐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밥도 지을 수 있고 간단한 집안 청소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종일 우는 게 일입니다. …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내 모든 죄 무거운 짐 이젠 모두 다 벗었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오. 내 주여! 이 죄인이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 (찬미성가집) 요셉 신부님! 시간 있을 때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 성가를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저의 볼품없는 몸과 벌집처럼 상한 영혼까지 주님 위해 바치렵니다.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다』 (요한 15, 16)라고 하신 십자가상 주님께….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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