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박해시대 성모신심
한국 교회에서 성모 신심은 초기 교회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전통적 신심이다.
달레의「한국 천주교회사」를 보면 1798~1799년 사이에 순교한 이도기(바오로)와 방 프란치스코가 치명을 앞두고 성모께 기도하였으며, 1801년에 순교한 홍낙민(루가)는 매일 묵주기도를 드렸다고 기록돼 있다.
신자들이「예수 마리아」를 항상 외웠다고 증언한 달레는 조선 신자들의 이러한 신심은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증거하고자 한 믿음의 표지였다고 평했다.
또 1801년에 순교한 윤점혜(아가다)가 성모의 발현을 보았다는 사실은 당시 성모신심이 교회 내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음을 반증해 주고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방상근 연구원은『이 중 무엇보다도 성모신심을 확연히 보여 주는 증거는 바로「동정녀」의 존재』라고 강조했다.
신유박해 당시까지 기록에 나타난 동정녀는 윤점혜, 정순매, 김경애, 조도애, 박성념, 이득임 등이 있었으며 이러한 동정녀의 출현은 초기 교회의 특기할 만한 현상으로 사학자들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유박해 이후에도 성모신심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838년 앵베르범 주교는 교황청에「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구의 주보로 청하였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년 이를 선포했다.
또 김대건 신부가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을 향해 황해를 건너오면서 성모 마리아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도움을 청했던 사실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모성심회
성모성심회는 1836년 12월 프랑스 파리 승리의 대성당 주임 데쥬넷트 신부에 의해 창설되어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인준된 신심단체로 동정녀 마리아를 공경하고 마리아의 전구로 하느님께 죄인들의 회개를 청하는 것이 회의 주요 활동이다.
한국 교회에 성모성심회가 창설된 것은 병오박해 직후인 1846년 11월 2일 다블뤼 신부에 의해 충남 공주 수리치골에서였다. 성모성심회는 선교사들이 박해시대에 한국 교회를 특별히 성모의 전구를 통해 보호 받기를 기원해 창설되었기에 설립 동기부터 다른 단체와는 상당히 다른 측면을 보여 준다. 최양업 신부 역시 신학생 때 이미 성모성심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해방 전까지의 성모신심
한국 교회의 성모신심은 성모성심회 창설 이후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1861년에는 8개 구역으로 나뉜 조선교구 전 지역 중 7개 구역이「무염시태」(서울)「성모성탄」(충청도 홍주)「성모자헌」(충청도 동북부)「성모영보」(공주)「성모취결례」(서부경상도)「성모왕고」(서부 충청도)「성모승천」(경상도 서북부) 등 성모 축일로 명명되었다. 또한 1898년에는 현 명동대성당인 종현성당이「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께 봉헌됐다.
성모성심회는 이후「성모회」란 이름으로 교회 안에 널리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여러 마리아운동 단체들이 한국 교회 안에 소개되면서 활동이 축소되고, 정체성마저 확연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방 이후의 성모신심
해방 이후 한국 교회에는 다양한 성모신심운동 단체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소개된 마리아 신심운동 단체는「푸른 군대」로 1953년 3월 26일 미 군종 스트룸스키 신부에 의해 도입됐다. 다음이 1953년 5월 31일 광주대교구 목포 산정동본당에서 처음으로 소개된「레지오 마리애」이다.
「마리아의 군대」로 해석되는 레지오 마리애는 당시 교구장인 현 헤롤드 신부의 지도로「평화의 모후」쁘레시디움이 구성된 이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 현재 광주와 서울 2개 세나뚜스로 분할돼 있으며 1996년 12월 말 현재 총 25만6천여 명의 행동 단원을 두고 있다.
이후 국내에 소개된 것은「마리아 사제운동」으로 1976년 부산교구 하 안토니오 신부를 통해 도입됐다. 1972년 5월 8일 이태리 밀라노의 스테파노 곱비 신부에 의해 창설된 마리아 사제운동은 1977년 부산교구에서 첫「다락방 모임」을 가졌다.
또한 1976년 5월 31일 로마 성모기사회 총본부로부터 한국 지부 승인을 받은「성모 기사회」를 빠뜨릴 수 없다. 막시밀리안 꼴베 신부에 의해 설립된 성모기사회는 완전하고 영웅적인 성덕의 모델인 원죄 없으신 성모의 전통 교의와 신심을 기본 정신으로 한다.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통해 국내에 전파된 성모기사회는 1, 2, 3단계 단계적 신심 훈련을 통해 개인 성화와 사도적 활동을 수행하며 봉헌의 표시로 회원들은「기적의 메달」을 몸에 지니고 생활한다.
◆성모신심 운동의 전망
한국 교회의 성모신심은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전례적으로나 사목적인 신심운동으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교회는 1954년 성모 무염시태 교리 선포 1백주년을 기념해 다시 한 번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고, 1984년 5월 6일 명동대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한국의 겨레와 교회를 성모 마리아께 맡기는 장엄 예식이 거행될 만큼 성모신심이 보편화되었지만 아직까지 개인적 신심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한국 교회가 내세울 만한 전통적인 마리아 신심 풍습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성모성월에 본당과 교구별로「성모의 밤」행사를 거행하고 있으나 본당과 교구 행사로만 머물 뿐이지 지역 주민들과 축제의 장으로 또 교회 풍습으로 자타가 인정할 만큼 널리 알려진 성모신심 풍습이 없다는 것은 한국 교회가 깊이 반성해야 할 점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에서 성모신심이 개인적, 신비주의적 신심 단계에 머물지 않고 교도권의 가르침에 부합, 신학적 바탕 위에서 다양하고 영성적인 마리아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마리아 신심 행위 풍습을 토착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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