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대로 일러 주실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도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은 나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여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요한 15, 26~27:16, 13-14 참조).
요셉 신부님! 이 가방 주인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연락을 할 만한 주소도 없고 본명은 적혀 있으나 성함을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수원교구 공원 묘원에서 미사를 봉헌한 후 제의를 정리하고 있는데 한 할머님이 가방 하나를 가지고 오셔셔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가방을 열어 보니 미사 수건 하나, 플라스틱 성수병 한 개, 묵주가 들어 있는 묵주 주머니 두 개, 기도서 한 권, 성교예규 두 권, 두툼한 비닐 봉투 하나, 그리고 손수건 하나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습니다.
기도서를 뒤져 보니 1960년 12월 24일 영세, 1975년 6월 20일 견진성사, 1984년 10월 27일 혼인성사, 그 밑으로는 성모님의 충실한 딸이 되고 싶은 M.D.…. 본명은 마리아 도미칠리아? 마리아 도미니까? 마리아 데레사? 마리아 도로테아? 마리아 디모테아? 일 테지만 이름도, 주소도, 전화 번호도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면서 두툼한 비닐 봉투를 열어보았습니다.
십일조 교무금 카드와 새 성당 신축 봉헌금 카드를 비롯하여 성소후원회, 제대회, 연령회, 군종후원회, 교도소후원회, 외방선교회, 우술라회(수원교구 신학생 후원회), 안나회(원주교구 자선단체 후원회), 주일학교 자모회, 양로원 후원 협력자회, 보육원(고아원) 후원회, 꽃동네 후원회, 라자로 마을 후원회 등등 후원회 카드만 무려 열여섯 개였습니다만 카드마다 주소와 이름은 없고 M.D.로만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애쓰면서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마태 6, 4)고 하신 뜻을 조용히 따르고자 카드마다 M.D.로만 기록하지 않았겠는가?
소속 교구와 본당 이름은 명시되어 있었으나 연락할 방법이 없어 혹시나 하고 기도서를 다시 펴 보았스빈다. 기도서 본문이 시작되는 앞 백지에 『여러분 안에 계시면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의 성령입니다』(필립 2, 13) 라고 하신 말씀을 적어 놓은 것을 보면 분명히 성령의 은총 안에서 온전히 성령께 의탁하며 사시는 분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곳저곳으로 연락하여 가방 주인을 알게 되었고, 다음날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만나기 전에는 연세가 지긋이 든 분일 줄로 생각했습니다만 막상 만나고 보니 신부로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남 1녀를 둔 30대 후반, 큰 자녀가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요 막내가 아직 유치원에도 들어가지 못한 4남매의 어머니였습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기에 애기 키우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요즘 세상에 가족이 8명이나 되니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았겠는가? 그런 가운데서도 온전히 믿음으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보며 신앙적으로 고맙기도 하고, 성령 기도회를 지도하는 신부 입장에서 대견(?)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요셉 신부님! 『어떻게 애기 4명이나 키우십니까? 요즘 세상에… 』
묻고 싶으시지요? 저도 결혼하기 전에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9남매의 막내로서 많다는 그 자체가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자라났기에 애기는 하나만 낳고 그 대신 열심히 하느님게 봉사하는 일이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공무원 집안에서?…
두 번재 아이를 가졌을 때 성령 세미나를 받았습니다. 성령 안수를 받을 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어머니로서 할 일이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세상인가? 내가 낳고 싶다고 낳고, 낳기 싫다고 안 나을 수 있는 일인가? 내가 행복하고 싶다고 행복해지고, 불행해지기 싫다고 불행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가 창조주이신 하느님 노릇(?)을 대신 하겠다는 말인가?』 요즘 시세 말로 하느님과 야! 자! 놀이를 하겠다는 말입니까?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게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고린 전 12, 4~7 참조).
『여보시오, 나는 그런 사람을 모르오! 여보시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여보시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루가 22, 57~60) 세 번이나 배반하던 베드로가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사도 2, 36)라고 소리쳐 외치자 그 자리에서 3천여 명이나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까?
『저 사람들 술에 취했군! (사도 2, 13)하고 빈정거림을 받은 제자들을 본받아 우리도 성령에 취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고통 중에도 희망을, 슬픔 중에서도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신앙 증거로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살아 움직이는 크리스찬 활동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성령을 받아라』(요한 20, 22)고 하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인의 길일 것입니다.
M.D. 자매님! 온전히 성령께 의탁하며 늘 감사의 생활과 봉사로써 믿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케 하시고, 사랑의 불을 놓으시는 성령의 증인으로서 꿋꿋이 살고 계심을 멀리서 감사드리며, 신부로서도 힘을 얻고 위로를 얻습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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