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지키도록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9-20)
요셉 신부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좋은 소식을 가지고 신부님을 찾아 뵈어야 하는데 부담되는 말씀을 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만 어떻게 합니까? 하도 속이 상하고 답답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 뵈었습니다.
큰 애 바실리오 때문에 온 집안이 소낙비 쏟아지기 전 먹구름 상태입니다. 바실리오 아버지는 이렇다 저렇다 말씀도 없고 집에 들어오면 한숨과 담배뿐입니다. 소피아마저 슬슬 눈치만 보는 습관만 늘었습니다. 저 역시 가슴이 답답하고 괜히 울렁울렁거려 가족들 모르게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은 지 1년이 넘었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교우들을 만나도 반가운 줄을 모르겠고, 성모님 앞에서 묵주의 기도를 바쳐도 옛날 같지 않고, 성체조배실에 앉아 있으면 온갖 분심잡념으로 어지럽고, 오월의 하늘을 쳐다보아도 뿌였기만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죽했으면 점이나 한 번 봐 볼까 했겠습니까?
언제까지 듣고만 있어야 하는가? 차마 말씀을 가로막을 수도 없고 찾아 온 문제의 핵심을 어디에 놓아 왔는지? 무슨 문제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고 답답하였지만 오랜만에 인내심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요셉 신부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바실리오가 학기말 성적표를 가지고 왔는데 수학 때문에 평균 성적은 물론 내신 등급이 말이 아닙니다. 국어와 영어는 평균 90점이 넘는데 수학은 형편 없습니다. 할 수 없어서 1년 전부터 과외를 시켰는데도 별로 나아지지를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3대째 내려오는 가업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렇다고 아들 대신 딸한테 물려줄 수는 없고, 조상님 뵈올 면목이 없으니 큰 일이 아니겠습니까? 바실리오는 나름대로 무진 애를 쓰는데도 수학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바실리오 아버지는 한사코 지방 대학은 안 된다고만 고집하고 있으니 아내요 어머니인 제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소피아는 오빠의 한을 풀려고 하는지 수학은 박사입니다. 그렇다고 3대째 물려 받은 종합병원을 딸한테 물려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요셉 신부님! 저나 애 아빠는 수학은 잘 했는데 바실리오는 누구를 닮아서 저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김 안젤로 주교님 말씀대로 아들 서너 명은 낳는 건대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가 일찍 하느님을 믿지 않았던 탓이겠지요?…(바실리오는 현재 S외대 3학년으로서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동생 소피아는 고 3으로서 오빠를 따라 S외대 지원 예정으로 있음).
바실리오 어머님! 바실리오의 수학 점수가 얼마이기에 그렇게 걱정하십니까?(필자는 속으로 행복한 고민을 하십니다.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열 가지 백 가지 축복을 혼자서 다 끌어 안으시려고 그러십니까? 욕심도 참 많으십니다….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차마 못 했습니다). 고 1 때보다는 좀 나아져 간신히 70점을 넘고 있습니다만 외대를 지원하려면 최소한 국·영·수 평균 90점 이상은 돼야 하는데 수학 때문에 평균 점수나 내신 등급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은니 큰일 아니겠습니까?
바실리오 어머님! 수능시험 때까지 아직도 17개월 이상 남아 있으니 실망하지 말고 성모님을 통하여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며 맡겨 드리십시오.『묵주의 기도를 통해 청하는 바는 무엇이나 다 얻게 될 것이며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는 사람에게는 나의 특별한 보호와 크나큰 은총을 약속한다』고 성모님께서 도미니꼬 성인에게 약속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바실리오 어머니에게 영적 위로의 말씀을 드린 후 성모님상 앞에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들의 국·영·수의 평균 점수를 저렇게 80점 이상 90점으로 목표를 일방적으로 정해 놓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지 않는지.어머니들의 욕심을 뭐라고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바실리오의 학교 생활(생활 기록부)에 대해서 담임 선생님이 점수(평가)를 주신다면 몇 점이나 되겠습니까? 바실리오의 신앙 생활(기도와 활동과 봉사)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굳이 점수를 주신다면 과연 몇 점이나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바실리오나 우리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의 신앙 생활에 대해서 얼마 만한 관심을 가지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신앙 생활에 충실하도록(적어도 80점 이상)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바실리오 어머니처럼 안절부절 못할 만큼 애태우는 부모님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저 공부공부! 학원 공부와 과외에 지친 자녀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믿음 생활에 대해서는 감히 말도 꺼내지 못하는 비굴(?)하고 못난 부모의 모습은 아닌가? 성찰하기도 전에 하느님 앞에 송구스러워 고개도 들지 못하는 우리 부모, 우리 자신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회생활(직장)을 위해서는 몸이 으스러지도록 목숨을 다하는 우리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섬세하리만치 신경을 쓰며 최선을 다하는 우리 자신의 신앙 모습은 과연 어떠합니까?
삼위일체대축일과 특히 청소년주일(수원교구)을 지내는 오늘, 지나온 우리의 신앙 모습을 되돌아 보며 직장이나 가정을 위하여 있는 정성을 다하듯이 신앙(믿음)을 위해서도 아낌없는 정성을 다 바쳤는지? 우리 스스로의 평균 점수를 계산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에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어느 한편으로 기울어지는 절름발이 신앙 생활이 아니라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겠습니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 저희의 자녀와 가족 특히 저희들의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 신앙 생활이 평균 80점 이상을 받도록 열심히 살고자 하오니 보살펴 주시오며 강복하여 주옵소서.
바실리오 어머니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그 마음 그 열정으로 신앙 생활에도 충실하게 하옵소서. 아멘.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