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3. 한국 교회와 시문학의 전통
Ⅰ. 들머리
한국의 가톨릭 문학은 가사로부터 비롯된다. 이른바 천주가사가 그것으로 1779년 정약전의 「십계명가」와 이벽의 「천주공경가」를 시작으로 교회 창건기(1779 ~ 1801)를 지나고 박해 및 전교시대(1802 ~ 1876), 신교(信敎) 자유시대(1877 ~ 1930)에 이르는 1백50 ~ 60여 년 동안 창작되어져 왔다. 이 천주가사는 1910년을 전후하여 가사의 형식이 점점 깨어지게 되고 이른바 창가, 신체시가 그 일면을 메꾸어 가면서 가사의 기능을 일부 대행해 나갔다. 그러다가 1927년에 창간되는 「천주교회보」(1927.4.1 ~ 1932.5.1)와 「별」(1927.7.10 ~ 1935.5)에서 현대시가 등장함으로써 가사는 점점 소멸해 가고 그 기능을 현대시에 떠 넘기게 되었다.
이렇게 등장되는 가톨릭시는 김소월, 한용운, 정지용으로 이어지는 1920년대 후반기 한국 현대시의 출발점과 궤를 같이 하며 발전해 왔다.
Ⅱ. 광복 이전의 가톨릭시
광복 이전의 가톨릭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교회 신문과 교회 잡지 발간을 근거로 앞뒤 두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천주교회보」와 「별」이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왔고 「가톨릭청년」과 「가톨릭연구」가 비슷한 시기에 나왔기 때문에 전자의 신문 발간 기간을 한 시기로 잡아 볼 수 있다.
◎제1기 1927 ~ 1933년 전반기(천주교회보ㆍ별)
◎제2기 1933 후반기 ~ 1938(가톨릭청년ㆍ가톨릭연구)
1. 제1기 가톨릭시(1927 ~1933 전반)
광복 이전 제1기 가톨릭시의 자료는 시 50편, 시조 6편 합계 56편이다. 천주교회보에서 2편 이상 발표한 시인은 홍묵성(4편) 이상기(4편) 조상갑(4편) 이효상(2편) 등이며 「별」에서 2편 이상 발표한 시인은 홍묵성(4편) 우러하(2편) 은초(2편) 우분도(2편) 등이다.
제1기 시의 형태적 특질은 생활 내용의 시화에 이바지하는 시적 장치가 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곧 가톨릭시로 하여금 생활시로 자리잡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 장치들이란 말이다. 시어는 가톨릭 용어가 대체로 많았으며, 어조는 고백적 기원조를 드러냈으며, 비유는 가톨릭 특유의 관습적 비유가 많이 쓰였고, 문체는 영탄ㆍ기도체를 보였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 눈에 띄는 것으로 기수의 「독시」와 정지용의 「뉘우침」을 들 수 있다.
「숲속에서 반들거리는/ 저 눈깔들은 누고!/ 담 넘으로 부르는/ 조 자국 소리는 누고~」 「독시」에서 마귀의 심상이 감각적으로 드러나 있다.
「뉘우침이야 진정/ 거룩한 은혜로구야./ 깁실같은 봄별이/ 골에 굳은 여름을 쪽이고/ 바늘같이 쓰라림에/ 솟아 동그는 눈물/ 귀밑에 아른거리는/ 요염한 지옥불을 끄다」 「뉘우침」에서 언어 감각이 탁월하게 드러나 있다. 종교시에서 미적 감수성의 확보가 가능함을 보여 준 예가 될수 있다.
2. 제2기 가톨릭시(1933 후반 ~ 1938)
제2기의 자료는 시 83편, 시조 14편, 합계 97편이다. 「가톨릭청년」에서 주로 발표한 시인으로 정지용(9편) 방수룡(6편) 서창수(4편) 이동원(2편) 윤태웅(2편) 이효상(2편) 순이고 「가톨릭연구」에서는 방수룡(9편) 조관호(7편) 홍석초(4편) 공흠(3편) 네오(3편) 방철원(3편) 이시복(3편) 순이다.
제2기에서 시의 문체는 영탄ㆍ기도체가 일부 존속되고 있는 가운데 평서체가 제자리를 잡고 있음을 본다. 평서체가 내는 맛은 안정감, 의젓함, 그윽함 등이다. 이런 맛과 어울리는 어조가 성찰조가 된다. 이는 제2기 시에서 가톨릭 용어가 크게 밀려난 현상과 더불어 신앙시가 시인들의 내면으로 훨씬 깊숙히 들어 앉은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제2기의 시 성과를 토대로 광복 이전 가톨릭시의 시사적 의의는 다음 4가지로 요약된다. ① 한국 현대시 사상 생활시 영역을 처음으로 개척하였다. ②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반 한국시에 형이상 내지 관념 세계를 확충하여 종교문학의 한 영역을 형성하는 데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③ 1930년대 중반 이후 창작 기술의 세련도를 높이거나 새로운 시 실험에 여념이 없던 분위기의 한국 시단에서 삶 자체에 매이는 시 세계를 확보함으로써 종교시의 영역을 확장해 주었다.
④ 리명훈, 전형, 주병환, 조관호 등이 일제 하 저항시의 흐름에 보강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Ⅲ. 광복 이후의 가톨릭시
광복 이후의 가톨릭시는 이제 생활시 영역에서 벗어나 시사적 맥락 위에서의 종교시라는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인복은 가톨릭 문학의 지향할 바를 「가톨릭 호교와 크리스찬 신앙인의 일치를 지향케 해 주는 내용, 성모 신심의 당위성을 의식시켜 주는 내용, 가톨릭만이 지닌 고해와 성체와 신품과 견진 등 7성사의 신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증거하는 내용, 하느님 성령의 해방과 자유와 평화 등 영성적 내적 육체적 치유의 신비를 깨닫게 하는 내용…」으로 제시했다.
그 지향이 「신과의 관계」에 매여 있는가, 아니면 삶으로의 확충으로 열려 있는가에 따라 광복 이후를 다시 전ㆍ후 2기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1. 제1기 가톨릭시(1945 ~ 1970)
광복 이후 시인으로 가톨릭 영성의 세계를 시로 쓴 사람은 구상, 김남조, 홍윤숙, 성찬경 등이 있다. 이들은 시인으로 한국 시단의 전면에서 활약했으므로 가톨릭적 세계를 보인 것과는 별개로 한국시의 토양에 보탬을 준 시인으로 평가된다.
광복 이전의 시가 정지용의 문명과 궤적 안에 가톨릭시의 성취가 자유롭지 않았다면 광복 이후 1960년대 막바지까지 이들 시인들의 자장(磁場) 안에 한국 가톨릭시의 굴절이 어려 있게 됨을 부인할 수 없다.
「앓아 누워야만/ 천국행 공부를 한다// 마치 입시 전날에사. 서두르는/ 게름뱅이 학생같다// 교과서야 있고/ 참고서도 많지만. 무슨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댄다.// 그래서 재수부터 마음 먹는/ 수험생처럼./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다면>하지만/ 번번히 헛다짐이다// 이러다간 영원한/ 낙제생이 되지 싶다// 아니! 그건 안 된다」(구상의 「병상우음」).
병상에서 천국행 공부를 한다는 내용의 신앙시다. 입시 전날 서둘러 공부하는 게으름뱅이임을 고백한다. 구상은 「어떤 것이 참다운 의미의 천주교 문학인가?」라는 비평글에서 20세기 가톨릭 작가의 봉우리인 프랑소와 모리악(Francois Mauriac 1885 ~ 1970)이 말한 「나는 가톨릭인이다. 나는 작가다. 여기에 나의 싸움이 있다」는 말을 소개하면서 입에 불고 발린 찬미나 찬송만이 가톨릭 문학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신앙인으로서의 고뇌를 노래한 「병상우음」이 진실 그 자체임을 대변해 주고 있는 셈이다.
「하늘도 제일 높은 하늘에까지/ 너를 부르는/ 한 목소리뿐이다.// 선물로 받은/ 햇빛이라 여기며/ 비라 여기며/ 나날이 더운 손 잡아 주며 산다/ 사랑을 가진 나는」(김남조의 「아가(雅歌)」에서)
「날지 못한 날개는 떼어 버려요./ 지지 못할 십자가는 벗어 놓아요/ 오척 단신 분수도 모르는 양심에 치어/ 돌아서는 자리마다 비틀거리는」(홍윤숙의 「사는법ㆍ2」에서)
이 시기의 시인들은 구상처럼 자기 고뇌나 신앙적 갈등 안에서 고투하면서도 신과의 치열한 관계 설정에다 시적 주제를 잡는 것이 상례이다. 말하자면 신과의 일대일로서의 관계 유지가 최우선 과제였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2. 제2기 가톨릭시 (1970 ~ 현재)
1970년대에 들어서면 가톨릭시는 새로운 시인들에 의해 가톨릭 사상과 문학적 양식의 무난한 만남을 성취해 가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신과의 일대일 관계 확보에서 생활 일반으로의 확충을 기하게 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아름다운 하늘의 별/ 어느 별 하나/ 혼자서 아름다운 별 없구나/ 혼자서 아름다우려 하는/ 별 없구나」(김형영의 「별 하나」에서)
별이 홀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둘, 셋 어우러지면서 더 아름다워짐을 노래했다. 주변과 이웃을 챙기면서 그 안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세우는 기운이 가톨릭시 전반에 확산되고 있음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정호승의 「서울의 예수」에서)
그리스도의 신앙이 이제 시대, 사회에 대한 문학적 확충을 보여 주는 그런 기쁨을 맛 보게 한다. 둘이나 셋이 있는 곳에 임재한,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웃 안에 임재한 그리스도의 실체와 더불어 생활을 사는 시인의 실천적인 노력을 보게 된다. 강은교의 「눈발」같은 시도 동궤에 놓인다.
Ⅳ. 마무리
한국 가톨릭시는 1920년대 후반 한국 현대시의 출발점과 같이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자생적인 교회 역사 이래 천주가사, 가톨릭 창가, 가톨릭 신체시에 이어 가톨릭시로 발돋움해 오면서 나름대로의 몫을 감당해 왔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우리 교회가 토착화되면서 가톨릭시도 토착화의 여정을, 순례의 길을 걷듯이 걸어온 셈이다. 오늘 우리 한국 시단에 별들로 박혀 있는 가톨릭 시인의 면모가 가톨릭시의 가능성을 말해 줄 뿐만 아니라 문화의 그리스도화에 그대로 이어짐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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