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았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마르 4, 26~29)
요셉이에게는 냇가 옆에 있는 콩밭을 유산으로 줄 테니 하고 싶은대로 열심히 해 보도록…. 1958년 초등학교 5학년 이른 봄, 아버님께서는 아들 넷을 불러 앉히신 다음 큰 아들(필자의 큰 형)에게는 한길 가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논을 유산으로 주셨고(당시 논은 밭보다 두 배 이상 값이 비쌌음), 둘째 아들에게는 마을 건너편 과수원과 도라지 밭을 주셨고, 셋째 아들인 저에게는 냇가 옆에 붙어 있는 콩밭(홍수가 나기 전에는 논이었는데 장마 때 떠내려 온 돌과 모래가 쌓여 자갈밭으로 변함)을 주셨고, 막내인 넷째 아들에게는 마을 앞, 집에서 제일 가까운 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을 장만하던 제일 좋은 밭, 문전옥답을 유산으로 주시면서 각자 관심과 열성을 갖고 농사를 지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수확의 반은 각자에게 돌려 주신다고 하시면서….
장마 때 떠내려 온 자갈(돌멩이)과 모래뿐인 돌무지 땅을 하필 저에게 주셨는가?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지만 땅의 넓이로 따진다면 제일 넓지 않는가?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기뻐하였습니다.
논이 밭으로 변한 자갈밭에 마땅한 재배 식물이 없고 논농사와 밭농사가 많아 일에 지치신 아버님께서는 매년 콩농사를 짓던 콩밭이기에 유산으로 받은 첫 해인 1958년에는 별다른 생각없이 일단 콩을 심었습니다. 아침식사를 서둘러 끝내고 학교 가는 길에 콩밭에 들렀더니 싹이 나오긴 나왔는데 자갈밭이기에 이곳저곳의 많은 새싹들이 주먹만한 돌멩이에 짓눌려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크게 띄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당시 제일 인기 있던 눈깔사탕(잘 녹지도 않고 소 눈알 만큼이나 큰 사탕) 하나씩 사 주기로 하고 남자 여자 친구 15명을 데리고 가서 우선 주먹 만한 돌멩이를 밭둑으로 주워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새싹을 누르고 있는 돌멩이를 주워 내고 보니 욕심이 생겨 냇가에 있는 미루나무 가지를 꺾어 나무가지로 모래밭을 긁고 파면서 돌을 주웠더니 콩밭 주위 이곳저곳에 돌무덤이 생길 만큼 돌멩이가 높이 쌓여감을 보니 대견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날 학교 갈 때에는 집에 있는 호미들을 자루에 담아 가지고 학교까지 가지고 갔다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밭으로 달려가 마치 전쟁놀이를 하듯 남자 친구들은 호미로 땅을 뒤집어 돌을 골라 놓으면 여자 친구들은 자루에 담아 밭둑으로 옮기며 해가 서산에 넘어 가는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다 보니 날이 어두워져 컴컴할 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아무 말씀도 없이 웃으시며 서둘러 보리밥에 된장찌개를 해 주셔서 푸짐한 만찬을 먹었던 일이 눈에 선합니다.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등하교 길에 으레 콩밭에 들르는 일이 일과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돌멩이가 쌓여 가는 모습과 잡초 하나 없는 콩밭을 보면서 금년 콩농사가 잘 될 것만 같은 막연한 생각으로 콩밭이 아니라 꼬마 대장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엉성하게 만든 원두막에서 한여름 내내 방학 숙제도 하고 콩잎을 따서 말리며(겨울철 소 먹이로는 콩잎 말린 것이 최고의 사료가 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고 자라났기에) 초가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웬 일입니까? 콩을 뽑는 날 아버님이나 어머님, 형님들 말씀이 타작해 보나마나 콩알이 달린 것을 보니 지난해보다 소출(수확)이 두 배는 되겠군! …
매년 20여 가마 하던 콩밭에서 38가마가 나와 주위 사람들도 이건 요셉이가 농사 지은 것이 아니라 요셉 성인과 성모님께서 농사 지으신 거야!…하시며 어리둥절 하시던 모습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수확이 끝나자마자 아버님은 콩 4가마를 팔아 하느님께 바치셨습니다.
그해 겨울에는 아버님께 청하여 큰 형님 논에서 좋은 흙을 마차로 실어다만 주시면 객토 하는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30마차 이상의 흙을 실어다 주셨기에 겨울방학 동안 리어카로 흙을 날라 콩밭 전체에 폈습니다. 참깨가 잘 될 것 같다기에 참깨를 심었는데 콩 농사보다 5배 이상 수확을 거두어 형님들 고등학교 등록금과 소 신학교 입학금을 내고도 남았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왜 일찍이 유산으로 주신다고 하셨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밭에 뿌려진 하느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분명히 싹이 트고 자라나고 있을 것입니다. 눈을 감고 우리 마음밭이 어떤 상태인지를 생각해 보면 십인십색이듯이 제각기 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길바닥처럼 굳어진 마음밭이기에 싹이 나기도 전에 새들이 와서 쪼아 먹는 딱딱하게 굳어 버린 마음밭은 아닌지? ….돌밭처럼 흙이 깊지 않기에 싹이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말라 버리는….아니면 가시덤불처럼 숨이 막혀 간신히 싹은 나오지만 숨이 막히는 마음밭은 아닌지……. 좋은 땅에 뿌려져서 싹이 돋고 풍성하게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낼 수 있는 마음밭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마르 4, 1~8 참조).
혹시라도 우리의 마음밭에 돌멩이가 있다면 주워 내는 수고를, 가시덤불처럼 엉켜져 있다면 그 뿌리까지 송두리째 뽑아 버림으로써 옥토로 바꿀 수 있는 노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문전옥답처럼 자주 우리의 영혼, 우리의 마음밭을 보살피며 돌볼 수 있는 열성을 가질 때에 맺는 열매가 풍성할 것이며, 풍성한 열매를 나누는 기쁨이 우리의 믿음을 충만케 할 것입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곡식단 들고 올 때 춤추며 기뻐할 것입니다』(시편 126, 5)라고 하신 주님! 당신의 은총으로 비를 뿌리시고 알맞은 햇빛을 비추시어 저희들 마음밭을 기름진 문전옥답으로 가꾸게 하옵소서. 아멘.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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