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대만) 교회는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비교적 빠른 1626년경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1950년경에야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에 쫓겨 넘어 온 교계제도로 이식된 교회다.
따라서 타이완 교회는 이제까지 본성상 본토 수복과 대륙 선교를 꿈에도 잊지 못하고 살아 왔다. 자연 타이완 교회는 대륙 선교에 대한 강한 향수 만큼이나 타이완 현지에 대한 선교 열의가 부족하다.
아름다운 타이완
면적 3만5천9백61km² 인구 약 2천만의 섬나라 타이완.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포르모사(Formosa 아름다운)라고도 불리웠고 일본의 첫 식민지이기도 했던 타이완 민족은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한족과 원주민인 소수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한족은 청조시대 이전에 건너온 뻔성런(본성인)과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 정부의 타이완 이전 때 함께 건너온 와이성인(외성인)으로 나눠지고 고산족으로 불리는 원주민들은 9부족이 있다.
종교는 그리스도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 외에도 조상 숭배, 영웅 숭배 등 민간종교가 타이완 사람들의 심성에 짙게 드리워 있다.
특히 길거리를 걷다 보면 어디서든 사당을 볼 수 있을 만큼 도교가 성행하고 있는데 이들의 도교는 불교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종파에 대한 인식이 약하고 여러 가지 요소가 섞여서 독특한 종교문화를 빚어내고 있다.
경제 성장을 이룬 요즈음의 타이완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은 돈벌이로 종교도 개인과 가정의 화복을 비는 것에 치중하고 있어 이런 민간 신앙들이 더욱 성행하고 있다.
타이완 교회사
타이완에 가톨릭이 처음 전해진 것은 1626년으로 스페인의 도미니꼬회에 의해 타이페이(臺北), 딴수에이(淡水), 지룽(基隆) 등 타이완 북부지역에 처음 복음이 전파됐다.
이후 타이완 북부지방에서 약 4천5백명이 입교하였으나 1642년 이 지역에 네델란드에 점령되고 선교사들이 모두 체포돼 자바섬의 바타비아로 호송되자 포교사업이 일시 중단됐다.
1661년 명나라 유신 정성공이 타이난(대남)에 상륙하여 타이완을 항청복명(抗淸復明)의 기지로 삼았다. 이때 정성공은 사먼(厦門)의 도미니꼬회 회원 리치를 필리핀 루손섬에 파견하여 타이완 점령을 통보케 하는데 리치가 돌아오는 길에 지룽에서 잠시 포교활동을 벌이기도 하고 도미니꼬회 선교사가 파견되기도 했으나 중국 관리의 박해로 포교사업이 실패로 돌아간다.
2백여 년간 선교사 파견이 중단된 타이완은 1859년 천진조약에 의해 개항, 스페인의 도미니꼬회 선교사들이 필리핀 사먼에서 건너와 남부 까우슝(高雄)에 교회를 설립하고 타이난까지 선교 기반을 구축했다.
타이완 교회는 원래 푸지엔(福建)교구 소속이었으나 1883년 푸지엔교구가 푸조우(福州)와 사먼교구로 나뉘어지면서 아모이교구 소속이었다가 1913년 타이완 지목구로 분리되었고 1949년 타이완 지목구가 까오슝 지목구로 개칭되는 동시에 타이페이 지목구가 신설됐다.
1950년에는 타이쭝(臺中) 지목구가 까오슝 지목구로부터 분리 신설되었고 52년 8월에는 지아이(嘉義)와 화리엔(花蓮) 지목구가 신설되고 타이페이가 대교구로 승격되면서 타이완 교회가 21번째 중국 관구가 됐다.
타이완 교회는 96년 말 현재 1개 대교구 6개 교구 1개 지목구에 본당 3백83개 공소 4백13개 대주교 4명 주교 9명 신부 7백31명(교구소속 2백65명 수도회 소속 4백66명) 수사 3백65명 수녀 1천1백16명 신학생 68명 신자 수 29만9천3백19명의 교세를 보이고 있다.
타이완 교회의 오늘
인구 대비 1.4%의 교세를 보이고 있는 타이완 교회가 1950년대부터 활발하게 된 것은 50년 이전에는 선교사들이 주로 원주민들과 내성인을 상대로 한 포교 중심이었으나 1949년 국공내전의 결과는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이전할 때 대륙에서 활동하던 많은 수도회와 성직자들이 신자들과 함께 건너온 데 힘 입었다.
또한 사회 경제적으로도 불안하던 시기로 한국의 경우처럼 교회의 구호활동과 교육사업 등으로 인한 소위「밀가루 신자」들이 대량 늘어났다.
타이완 교회는 당시 상황을「입교 열풍」으로 회고하고 있는데 중국 대륙에서 건너 온 선교사들은 대륙교회를 그대로 타이완 사회에 옮겨 심으려고 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10여 년간 타이완 교회의 교세가 정체 내지는 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지난 10여 년간 타이완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겪는 사회 각 분야의 많은 변화에 교회가 잘 대처하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이에 대해 분도 출판사의 아시아 신학 총서「하늘과 사람은 하나다」등으로 한국 교회에도 잘 알려진 예수회의 장춘썬(張春申) 신부는『교회가 국민당과 함께 대륙에서 넘어 온 연유로 친정부적인 성향을 띄면서 대사회 참여를 등한시한 바가 크다』면서『교회가 성장할 때 신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장 신부는 한국 교회의 민주화 운동을 예로 들면서 평신도 교육에 있어 전례나 교리보다 정치 사회 등 신자들이 활동하는 현실 안에서 교회의 정신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런 방향으로 사목의 물줄기가 잡혀야 교회가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타이완에서의 가톨릭은 지식인들 사이에 좋지 않은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는데 이는 가톨릭이 외래 종교라는 인식과 함께 사회운동에 등한시하여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모습으로 비춰진 때문이다.
또한 16세기 중국 대륙에서 예수회에 뒤이어 들어 온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가 조상 제사나 공자 공경 의식 등을 미신이라고 마테오 리치신부 등이 선교사업에서 취한 문화적 적응주의 입장을 비난하면서 빚은 갈등이 아직까지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변혁기 속에 선 타이완 교회는 요즈음의 상황을 교회 창립의 신국면이라고 보고 각 방면에서 전면적인 혁신 작업을 펼치고 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교의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타이완 교회는 동물보호구역에서 야생으로 돌려 보내지는 곰처럼 선교라는 적자생존 앞에 막 눈을 뜨고 있었다.
◆타이페이대교구장 티캉 대주교
이가 없으면 잇몸이 대신 “신부가 부족하면 평신도가 역할 분담”
“세계 보편교회가 하나라고 보면…성소가 늘어나고 있는 남미 등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사제는 영적문제나 전례문제에만 전력을 다하고 본당의 각종 사무는 신자들 스스로 꾸려 가는 모습…
「성숙한 신자」를 배양하기 위해 20년 전부터 계획하고 가르치고 있다.
대만 교회가 당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인 사제 고령화와 성소자 문제에 관해 타이페이교구장인 티캉(挾剛) 대주교는『타이완 교회 내 본당의 3분의 2가 수도회 소속이고 수도회 사제들이 갈수록 노령화하고 있어 본당에 사제가 비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큰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티캉 대주교는『세계 보편교회가 하나라고 보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으므로 성소가 늘어나고 있는 남미 등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무엇보다『신부들이 적어질수록 신자들이 일어서는 법』이라며 신자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성직자들이 해야 할 일 이외에는 신자들이 모두 일할 수 있다』는 티캉 대주교는『사제 수가 적어 한 신부가 3개 본당을 맡거나 3명의 신부가 15개 본당을 맡아도 신자들이 잘 교육되어 있다면 본당 업무는 이들이 잘 해 나갈 수 있다』면서 신자 재교육에 강한 희망을 보였다.
사제는 영적문제나 전례문제에만 전력을 다하고 본당의 각종 사무는 신자들 스스로 꾸려 가는 모습이 티캉 대주교가 그리고 있는 장래 타이완 교회의 모습이었다.
티캉 대주교는 이런 구상과 관련하여『먼저 강압적인 성직자의 자세가 바뀌어져야 하고 신자들도 성직자들의 눈치만 살피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직자는 대장이 아니라 영적인 아버지이므로 평신도와 수직적 관계를 탈피,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티캉 대주교는『사랑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관계에서 가정과 본당 그리고 나아가 한 가정으로서의 국가의 의미를 찾아 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티캉 대주교는「성숙한 신자」를 강조하면서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신자, 책임 질 줄 알고 공동체의 의견을 통합하는 주체로서의 신자를 배양하기 위해 20년 전부터 계획하고 가르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의 해결책으로 티캉 대주교는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성숙한 신자 양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스승은 부모』라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가족의 의미에서 성직자와 신자와의 의미를 뽑아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참아내는 본당 공동체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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