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와서『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마태 18, 19~22)
요셉 신부님! 『김일성 사망미사를 봉헌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라고 벨라뎃따 자매님이 사망미사 예물을 진지한 모습으로 내 놓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벨라뎃따 자매님은 4남매의 어머니로서 온 가족이 신앙 가정이요 당시 꾸리아 단장이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벨라뎃따 자매님의 말씀이 귀에 들려오는 듯한 그 무엇에 하던 일을 멈추며『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약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 44~45).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해 주어라. 그리고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루가 6, 28~35 참조) 주님의 이 말씀을 사제로서 교우들에게는 비유의 말씀으로 자주 이야기를 하였으면서도「그렇게 하시지요. O일 O시에 사망미사를 봉헌하겠습니다」라고 일반 교우들의 사망미사처럼 선뜻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다가 얼버무린 후 입으로만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앵무새나 구관조처럼 노래 부르지 않았는가? 지금까지도 후회 아닌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당시 개인적으로 사망미사를 봉헌하기는 했지만…).
공산당은 어떤 사람들입니까?···초등학교 4학년 때 반공 시간에 선생님께 질문한 기억이 희미하게 납니다. 6·25 사변 전쟁 중에 동생이 죽은 일과 피난을 갔을 때의 어렴풋이 떠오르는 희미한 기억은 있지만 당시의 반공교육(수업 시간에도 지금의 싸이렌 같은 소리가 나면 학교 뒷산 반공호로 달려가 숨던 일)으로는 선생님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설명하셨지만 제 나이, 제 입장에서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선생님은 아주 그럴듯하게, 진지하게, 태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산당은 첫째 눈이 빨갛고, 둘째 나환자처럼 눈썹이 없으며, 셋째 머리는 하얗고, 넷째 코는 없으며, 다섯째 온 몸에는 원숭이처럼 빨간 털이 듬성듬성 나 있고, 여섯째 사람만 보면 달려들어 잡아 먹으려 한다는 애매모호한 설명을 듣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런 사람도 있는가? 궁금해서 집에 와 형님과 누님에게 물으니 선생님께 설명을 들은 내용과 순서만 달랐지 거의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주일학교 초등학생들에게 아주 옛날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신부님이 새빨간 거짓말을 했으니 주교님께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만화책에도 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무안을 주는 어린이에게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초등학생으로서 재일교포 북송 반대 때 선생님의 권유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혈서를 쓴 기억은 나지만 어릴 때부터 공산당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였거나 이해하지 못한 일들이 잠재의식으로 남아 있었던 탓인지 공산주의나 공산당, 더우기 김일성! 하면 남한을 못 살게 굴고, 전쟁만을 일으키려 발버둥치고 이 세상의 온갖 못된 짓을 일삼는, 밥도 빨간 밥만 먹는 짐승처럼(?) 어렸을 때의 교육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6·25 전쟁, 동생의 죽음, 국가적인 피해와 위협 등등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김일성 죽기만을 학수고대 하였습니까? 김일성만 죽으면 당장 통일이라도 되는 듯 착각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지금에 와서는 많은 인식 변화와 공산주의에 대한 교육도 달라져 50년대처럼 가르치거나 알아 듣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많은 변화 속에 이곳저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 동포를 위한 기도와 통일 기원미사, 북한 동포 돕기 걷기 대회, 「빵도 하나. 우리도 한 몸」하면서 옥수수 보내기 운동, 북한 동포를 위한 24시간 기아 체험(?), 「밥을 나누자 사랑을 나누자」하면서 감히 예견하지도 못했던 흐뭇한 일들이 하느님의 섭리를 증언하고 있지 않는가? 감히(?) 남북한의 과거와 현실을 반성하고 통일될 큰 나라의 미래를 다짐하자는 식의 이야기를 드러내 놓고 할 수 있었던가? 세월이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오늘의 이 시대. 이 현실의 희망적인 모습을 보면서 늘 마음 속에 벨라뎃따 자매님 같은 분이 좀 더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지 다 들어 주실 것이다』(마태 18, 19)라고 하신 주님! 이 민족이 바라는 남북한 평화 통일을 위하여 신앙을 가진 저희가 먼저 화해와 용서할 수 있는 마음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진실한 기도를 올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느님 아버지의 한 없는 용서를 받고 또 청하는 저희가 하느님께서 저희 죄를 수도 없이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서로 용서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사소한 잘못까지도 용서하는 데 인색하고 주저하는 저희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만이 아니라 십자가의 용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 24)라고 하신 십자가의 주님을 본받게 하옵소서…아멘.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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