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제자들에게『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라고 물으셨을 때『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이번에는『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니 너는 참으로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8, 13~19 참조).
『한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까지 잠재우시던』(마르 4, 39) 주님! 지난 1년 반을 돌아다 볼 때 사위(四圍)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소용돌이 속에 헤매는 이 민족을 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떻게 보셨습니까?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사건과『입이 있어도 제대로 말을 안 하는』(다니 3, 33) 사람들이 온 국민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착잡하게 하였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이해는 합니다만 세상 인심이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니 더욱 가슴이 답답하고 눈 앞이 캄캄하였습니다.
전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이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줄줄이 구속 수감되고, 그 뒤를 이어 전·현직 장·차관과 장군들, 정치인들과 사회 저명 인사들이 굴비 꾸러미처럼 엮어져 구속되는 모습이 잊혀지기도 전에 한때 부통령(?)이라고 고개를 조아리던 사람들의 차디찬 외면 속에 구속 수감되는 현직 대통령 아들의 참담한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각기 달랐을 것입니다만 세상 인심이 참으로 야박하구나? 어떻게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리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하더라도 의리 있는 사람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입이 마비되고 혀가 굳어져』(1마카 9, 55) 그저 침묵만 지키는 것이 능사인 줄로 아는 오늘의 이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재판 중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들어 보지 못한 말들이 유치원생들 입까지 오염시켰다고 한탄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본인들은 그렇다고 하겠지만 그 주위에 구름처럼 몰려 있던, 아니 그 그늘, 보호 속에서 비바람을 피하며 편안히 쉬던 수많은 사람들이 상황이 불리해졌다고 숨을 죽이며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않는 세상 인심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겠습니까? 해도해도 너무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슬프기만 하였습니다.
물론 드러내 놓고 말 못할 여러 사정이 있으리라고 미루어 짐작하지만 하루 아침에 일방적(?)이다 싶을 정도로 TV, 라디오, 언론 보도 앞에 고개를 떨구며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모두 제가 한 것입니다. 제 책임 하에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책임이 있다면 모두 제가 지겠습니다』하는 외침은 옳고 그름을 떠나 피서지 한여름 밤의 소낙비처럼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어디에 있느냐? 』아담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알려 주더냐. 내가 따 먹지 말라고 일러 둔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구나! 』…
아담은 핑계를 대었다. 『당신께서 저에게 짝 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주기에 그저 먹었을 따름입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물으셨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뱀이 먹으라고 해서 따 먹었습니다』(창세 3, 9~13 참조)라고 자신의 실수나 잘못보다는 타인에게 탓을 돌리는 경우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분명히 할 말이 있는데도…. 용기를 내어 증언해야 할 의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장이 좀 곤란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잡아떼거나 얼버무리는 사람들에게 누가 무어라 하더라도『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 16)라고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않고 분명히 자신의 의사를 밝힌 시몬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우리의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빵 다섯 개로 5천 명에게 나누어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기신(마르 8, 19) 예수님! 소경의 두 눈에 침을 바르고 손을 대시자 캄캄하던 눈이 밝아지고 성해지는(마르 8, 23~25 참조) 하느님 아들로서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 감히 비교도 되지 않는『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 중 한사람?』(마태 16, 14)이라고 제각기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그저 느낌대로 내뱉듯이 이야기하는 상황에서『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 16)이 고백한 한 마디로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시몬 베드로! 베드로의 신앙 고백 이 한 마디에 하느님 나라의 열쇠를 맡기시는 예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서 나에게 물으신다면 주저하거나 거침없이 고백할 수 있겠는가?
「살아 계신 하느님!」이시라고 머리 속으로는 믿으면서도 혹시라도 나의 행동은 하느님은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나, 아니면 이 어지러운 모습을 못 보시는지? 그때그때마다 왜 심판하지 않으시는가? 못 하시는가? 하면서 감히 하느님의 뜻을 역행하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은근히 부러워하지는 않았습니까?
살아 계신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말과 행동으로 야훼를 거역하고 눈에 거슬리는』(이사 3, 8) 일이 없이『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 당신만을 따르게 하소서』(다니 3, 40)라고 읊조린 다니엘의 기도를 저희 기도 내 기도로 삼고자 하오니, 주님!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현존을 피부로 느끼며 살게 하옵소서.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늘 가장 가까이에서 역사하시고 계심을 의식하며 살게 하옵소서. 아멘.
<끝>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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