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브로츠와프를 찾은 외국인, 특히 한국인 순례자들은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을 것이 분명하다. 이 정도 규모의 대규모 국제 행사가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내는 전혀 부산스럽거나 들뜬 분위기가 엿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을 것 같은 차분함에, 항상 떠들썩해야 무언가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쉬운 우리에게 그런 브로츠와프의 인상은 생경했다. 혹자는「뭐 이래」하는 다소 실망감도 가질 수 있었으리라.
◆조직된 교육 프로그램
하지만 이틀, 사흘, 조용한 가운데 진지하게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을 조금이라도 인내심을 갖고 참석해 본 사람은 이내 이번 성체대회가 매우 깊이있게 조직된 교육적 프로그램들로 꾸며져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5월 25일 개막식부터 6월 1일 교황 집전 장엄미사까지 성체대회 프로그램은 크게 미사와 강론, 언어권별 세미나, 강연, 성체조배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각국 대표단 환영식과 미사로 이뤄진 25일 개막식 행사들에 이어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은 하루 일정이 같은 틀을 갖고 있다.
오전에는 미사와 특별 강론, 정오에는 강연, 오후 4시에는 시내 20여 개 성당에서 성체조배와 언어권별 세미나가 마련됐다. 저녁에는 다시 강연이 열리고 주교좌 성당을 비롯한 각 성당에서 성체조배가 지속적으로 실시됐다.
미사와 강연에는 각국의 저명한 신학자와 고위 성직자들이 초청되어 깊이를 더했다. 그 중에는 프란시스 아린제, 에두아르도 가뇽, 에드먼드 쇼카, 안젤로 소다노, 존 오코너, 카밀로 루이니 추기경 등 교황청과 각국 교회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포함돼 있다.
브로츠와프 성체대회의 큰 특징 중 하나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성체대회 전체가 하나의 특별 교육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폴란드뿐만 아니라 성체대회에 참석한 전 세계 신자들은 전례와 특별히 강연들을 통해 성체성사의 신비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삶 속에서 실천 할 수 있는 계기를 발견했다. 그리고 브로츠와프 성체대회의 교육적 지향은 대회 기간 내내 일관되게 유지됐다.
브로츠와프 성체대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다른 하나는 교회 일치를 위한 모임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역대 어느 성체대회보다 많은 일치기도 모임을 마련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5월 31일 도착한 뒤 바로 오후에 각 종파 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일치기도 모임을 주관했다.
대회 엿새째인 30일 주제는「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일치시키는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모든 신앙인들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이날 주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날 프로그램은 교회 일치에 지향을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날 강연은 모두 일치를 주제로 실시됐고 타 종파의 지도자들이 함께 미사에 참례했다. 언어권별 모임도 일치모임으로 이루어졌다.
◆일치모임에 큰 비중 둬
교황은 브로츠와프가 대회지로 결정될 때부터 이미 이번 성체대회가 교회 일치를 위한 모임이 되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의 이러한 요청은 2천년 대희년을 앞둔 금세기 마지막 성체대회라는 점에서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제2의 천년기 동안에 금이 생긴 교회는 이제 제3의 천년기를 맞으면서 일치를 향해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교황은「제3의 천년기」에서도 강조한 바 있다.
전체적으로 평이해 보이면서도 각 프로그램들이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일관성 있고 규모 있게 꾸며진 것으로 평가되는 이번 성체대회에서도 몇 가지 특별 프로그램이 돋보였다.
◆3시간 이상 거행된 성체거동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것은 역시 폴란드 교회가 깊은 성체신심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성체거동 행사이다. 대부분 행사가 열린 시민회관(Hala Ludowa)에서 주교좌 성당까지 세 시간 이상 장엄하게 이루어진 성체거동은 제45차 세비야 세계성체대회와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각 성당에서 완전히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지속적인 성체조배는 뿌리 깊은 가톨릭 국가로서 폴란드의 저력을 보여 줬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어 성체에 대한 흠숭을 나타내는 폴란드인들은 주교좌 성당뿐만 아니라 각 성당에서 자유로이, 그러나 열렬하게 성체조배를 이어 감으로써 각국 순례자들에게 인상적인 느낌을 주었다.
브로츠와프 성체대회는 물론 행사 진행이나 운영면에서 흠을 갖고 있기는 하다. 폴란드의 대표적인 대도시 중 하나이지만 오랫동안 공산 치하에서 국제적인 교류의 경험이 없었고 더욱이 이번 같은 대규모 국제대회 유치 경험이 부족해 원활하고 매끄러운 진행은 사실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지나친 통제로 다소 불편
때로는 지나친 통제와 관리로 참석자들의 불편을 야기했고 각국 대표단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특히 만국 공통어로 지칭되는 영어가 상당 부분 소통되지 않아 외국인 참가자들의 경우 영어를 할 수 있는 봉사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매번 성체대회에 대규모 인원을 파견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번에도 2백30명의 대표단을 현지에 파견했다. 지난 89년 서울 성체대회를 통해 세계 교회에 열정적인 신앙을 증거한 바 있는 한국교회는 대회에 참여해 왔고 이번 대회에서도 24시간 고리 성체조배를 실시하고 한국 고유 문화공연을 선 보이는 등 어느 외국 대표단보다도 열심한 신앙과 정성으로 대회에 임했다.
◆참가 전 내적 준비 반성 필요
하지만 성체대회를 과연 얼마나 내적으로 잘 준비하고 성체성사의 신비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는가, 참가단 구성에서 사전 준비는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졌는가, 그리고 성체대회 프로그램들에는 충실하게 참여했던가 등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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