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에서 아귀다툼 없이, 부유하지는 않지만 부러울 것 없이 한적한 삶을 누리던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생전 처음 「싸움」이라는 것을 해 왔다… 분에 겨운 주민들이 관공서까지 「쳐들어 가는」극한 상황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다친 것은 힘 없는 영흥도 사람들뿐…9명이 구속되고 또 그만큼이 수배자로 피해 다니고 있다"
『산을 볼까/바다를 볼까/잡목 숲 헤쳐 피어나는 바위 꽃은 알리 없지/오늘을 안고 가려는 영흥도의 바람을…/들어 봐/십리포 물결 위에 둥-둥/떠다니는 국사봉의 비명을/아직은 모르리라/서어나무 가지가지마다/피워내고픈 램프의 불빛도.』
(황수련의 「영흥도」중에서)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으로 30분, 일반 여객선으로 1시간 10분 남짓. 영흥도 나루터에서 본 풍광은 고요하고 평안했다. 하지만 족구 시합을 하다가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부리나케 열을 짓는 군인들을 보면서 평화로운 꿈은 무참히 깨어진다.
한전의 영흥도 유연탄 화력발전소 건설 계획이 알려지면서 벌어진 주민들의 반대운동은 해를 넘어 정부와 한전 측, 인천 시민 및 주민들과 환경운동 단체간의 격렬한 싸움으로 지속됐고 급기야는 분에 겨우 주민들이 관공서까지 「쳐들어가는」 극한 상황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다친 것은 힘 없는 영흥도 사람들뿐.
화전이 세워질 공사 현장에는 무참하게 파헤쳐진 땅이 불도저와 트럭들 사이에서 흉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나무 참나무 뽕나무 그리고 대규모 군락을 이룬 서어나무들도 잘려 나갔다.
옹진군 내 1백여 개 섬 가운데 백령도 다음으로 크다지만 섬은 섬. 이 작은 섬에서 아귀다툼 없이, 부유하지는 않지만 아무 것도 부러울 것 없이 한적한 삶을 누리던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생전 처음 「싸움」이라는 것을 해 왔다. 올 들어 모두 9명이 구속되고 또 그만큼이 수배자로 몸을 피해 다니고 있다.
그들이 무슨 힘이 얼마나 있었으랴. 또 농사 짓고 고기 잡던 노인네들이 무슨 속계산이 있어서 생업을 던져 두고 농성장으로 달려 갔을까. 가까이는 자신들이 몸 담아 살고 있던 섬에서 더 이상 농사 짓기도 힘들고 조개 잡기도 힘들어질까봐 그것이 걱정이었고 더 크게는 그 아름다운 섬이 온통 시커먼 석탄재로 뒤덮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한 해 농사로 2천여 주민이 5년을 먹을 정도로 비옥한 땅, 굴과 바지락, 대합 등 어자원이 풍부한 천혜의 양식장으로 걱정 없이 살던 영흥도 사람들은 거듭된 싸움에 지쳐 농사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나마 남정네가 구속된 가구들은 쌓여 있는 농사일에 마음이 조급해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논으로 밭으로 나서 보지만 자꾸 헛손질만 하게 된다.
산 속에, 바다 곁에 사느라 잔재주도 부릴 줄 모르고 셈에 밝지도 못한 주민들이 팔뚝을 걷고 목청을 높이게 된 것은 한전에서 영흥도에 건설하고 있는 유연탄 화력발전소 때문. 80만kw급 발전기 12기 총 9백60만kw, 전국 전력 설비 용량의 30%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의 화전은 영흥면 외리 일원 4백9만 평의 땅을 차지하고 앉을 계획이다.
영흥도의 총면적은 7백71만 평에 불과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하고 남을 만하다. 특히 그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해안 개펄 2백94만 평이 발전소에서 나올 유연탄 재로 메워진다. 개펄은 육지보다 생산성이 5배 이상인 옥토이다. 영흥 개펄은 바지락 낙지 굴 동죽 모시조개 등이 유명하다. 한 노인은 「늙은이라도 호미 하나, 소쿠리 하나면 자식들 대학 보내는 데 지장이 없다」며 개펄을 메우려는 무지함에 혀를 찬다.
주민들의 생계와 삶터 문제만이 아니라 실제로 영흥도 화전으로 야기될 환경 재앙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상식으로만 보더라도 크게 환경오염을 야기할 것이라는 데 그다지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화전은 엄청난 양의 온배수를 배출한다. 1기가 1초당 47톤, 12기 모두 가동시 1시간에 2백만 톤, 즉 드럼통(2백kg) 1천만 개 분량의 더운 물이 바다로 배출된다. 이는 주위 바닷물의 온도를 1도 올리게 돼 생태계의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시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영흥 유연탄 화전 12기가 모두 가동될 때 연간 61만5천여 톤의 아황산가스가 배출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인천시의 연간 아황산 가스 배출량인 7만2천9백여 톤의 8.4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또 연간 7만7천여 톤의 질소 산화물을 내뿜는다.
결국 영흥도 화전은 주민들의 생계 터를 빼앗을 뿐 아니라 인천지역의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야기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견해이다.
더욱이 화전 건설사업 구역인 오리와 선재면 일대에서는 신석기시대 패총과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문막 패총이 대량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흥도는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입에 맞선 배중손이 70여 일간 머무르면서 항전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삼별초가 영흥도를 항쟁 요새로 삼은 것은 육지에 가까우면서도 농토가 많아 군량미 조달이 용이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근심 없이 그저 평안하게 자연을 누리던 영흥도 사람들은 이제 섬을 나와 인천 시내 곳곳에서 농성을 하는 등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이 싸움이 어떻게 막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차가운 땅바닥에서 겨울을 지냈던 주민들은 이제 뜨거운 김이 훅훅 오르는 시멘트 바닥에서 다시 여름을 나려고 한다. 어쨌든 섬을, 개펄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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