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홍콩이 중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일국양제, 항인치항, 고도자치 등 3대 원칙을 근간으로 한 홍콩의 반환은 궁극적으로 타이완 통일을 위한 시금석이다.
독일의 통일이 정치적으로 선언되기 이전에 수많은 민간인들에 의한 교류와 교회 등 각 사회 단체들의 활동으로 통일의 초석을 이루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아시아 복음화와 직결되는 11억7천만의 중국 복음화를 위해서는 반환된 홍콩교회와 함께 같은 민족인 타이완교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며 특히 사상적 문제를 고려할 때 평신도들의 역할은 더욱 큰 비중을 가질 수밖에 없다.
평신도 활동의 역사
그러나 평신도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된(타이완교회가 가장 부러워하는) 우리의 신앙 역사와는 달리 아직도 외래 종교로 인식되는 타이완교회는 평신도들의 활동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타이완은 경제는 선진국에 진입해 있으나 그 물질적 풍요가 가져온 정신적 공백을 메우지 못해 각종 사건들이 연일 일어나고 있는데 오직 경제에만 매달려 온 사회 구조는 교회 안에서도 신자들의 의식을 개인화시키고 있다.
한국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여성 신자들의 활동도 경제적 성장에 매진해 온 타이완에서는 여성들의 99%가 맞벌이를 함으로써 본당 활동에 여성들의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다.
또한 신심단체 중 그나마 활발하다는 레지오 마리애조차 신쭈교구의 경우 교구 전체를 통틀어 30여 개의 쁘레시디움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경제 우선의 이러한 의식들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찾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돼 타이완교회 성소의 위기를 초래했다.
신자 개개인도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좋은 표양을 보여 주지 못했고 조직적으로도 사회를 향한 교회의 목소리가 없었다.
제 목소리를 잃은 교회의 모습은 일반인들에게 매력을 주지 목했고 이는 복음화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결국 사회 구조가 신앙심에 앞서 있으며 교회는 이에 미리 대처하지 못했다는 타이완교회의 자성은 우리 교회에도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타이완의 조직적인 평신도 활동의 역사는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같은 조직인 교우전교협진회의 전신인 교구전교촉진회가 성립된 것이 1971년 8월이었다.
로깡(羅光) 대주교가 주교단 교우전교위원회 회의를 소집하여 6개 교구 대표가 결의한 교우전교촉진회는 72년 타이페이대교구를 시작으로 각 교구에서 계속적으로 설립되지만 많은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전교라는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일선 사목자들의 이해 부족에서 오는 내부의 마찰이었다.
사목자들은 교우전교협진회를 본당에 기존하는 레지오 마리애나 기도 모임 등과 같은 단체 중의 하나로 생각, 또다른 신심 단체의 설립으로만 여겼다.
따라서 교우전교협진회가 가동되자 사목자들은 본당 운영의 동반자로서의 평신도 단체가 아니라 사제의 직무와 충돌을 일으키는 것처럼 느껴 각종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 30여 년간 주교단과 평신도 단체에서 각종 노력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목자들이 의문을 품고 있는 부분이 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 중 일부도 평신도 활동의 필요성을 이해 못 하고 있는데 이들은 전교는 신부의 일이라고 생각해 교회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신부와 신자들이 교우전교협진회를 단지 인기 있는 신자들의 겉치레로 인식함으로써 평신도 활동은 그 시작부터 쉽게 발전하지 못했다.
오랜 종교적 전통을 지닌 타이완 사회에서의 전교라는 압력과 일부 신부와 신자들에게 비난이라는 내외부의 진퇴양난 속에서도 꾸준히 평신도활동의 중요성을 이해시켜 오던 타이완교회의 평신도 활동은 1975년 중대한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1975년 6월 타이완 주교회의는 교우전교위원회의 재건을 결정하고 이 위원회를 티캉 대주교에 위임했다.
티캉 대주교는 1976년 3월 타이페이 푸런대학교에서 전국 교우 조직 연구 토론회를 소집하는데 이 회의는 평신도 활동의 새 장을 열었다.
이 토론회에는 각 교구의 신부와 신자들이 대거 참석하였으며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참가했다.
이 토론회는 신자와 신부들의 융화를 이끌어 냈으며 서로간의 이해로 평신도 활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게 되는데 신자 조직간의 연계, 협조와 활동 이념 이해와 강화, 신자 내적 수양 강화, 전국 본당 교우전협회 조직과 사업 설립 등과 같은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해 냈다.
이 같은 신자들의 꾸준한 활동은 20년 만에「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 전국 순례 행진」이라는 결실을 보이는데 이 행사는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전국적 행사로 전국 각 교구와 교회 내 각개 단체 기구의 대 단합을 촉진시켰다.
중국 천주교 교우전교협진회 창립 20주년 기념 책자는 이 때의 감동을 이렇게 적고 있다.
『거룩한 전례에 참석한 만여 명의 교우들의 자세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시작 때부터 참석하여 전례를 거행하고 성지아(聖家)본당에서의 미사거행에 이르기까지 7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함께 하였으며 가랑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진행하였고 그들은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면서 조금의 권태감도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정신을 발휘하고 나아가 중도에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었다… 현재의 교우들은 신망애 3덕이 출중하고 교회의식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지 교우 전교 활동이 일어난 것에 불과할 뿐이다.』
2천년 대희년 준비
이제까지 타이완교회 지도부와 평신도 지도자들은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의식을 갖고 있는 일부 신자와 신부들에게 평신도 활동의 당위성과 중요성을 알려 신자들이 교회 내에서 각자 다른 배역을 맡고 있음을 재빨리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들의 고민은 함께 협력하여 전교는 교회 전체의 힘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며 2천년 대희년을 이를 위한 중요한 계기로 삼고자 한다.
「새로운 세기 새로운 복음화」 (New century, New evangelization)를 주제로 대희년을 준비하고 있는 타이완교회는 일차적으로 가정 공동체의 복음화에서 시작한다.
가정에서 사회로까지 복음화의 단계를 밟아 나가려는 타이완교회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복음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고 이러한 타이완교회의 역사는 우리 모두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다.
◆예수회 타이완 관구 장춘썬(張春申) 신부
“현실 따로 영성 따로 교회는 쇠퇴” 시대 상황 맞는 신자 교육 부족 분명한 교회의 목소리 있어야 생활 속 신앙 실천 할 교육 중요
타이완의 대표적 신학자 장춘썬(張春申) 신부는 타이완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현실과 동떨어진 영성」이라고 지적했다.
장 신부는『타이완교회는 70년대까지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발전해 왔으나 80년 이후 타이완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되면서 세속화되기 시작했다.』면서『이 과정에서 타이완교회는 신자들이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지 못했다.』고 밝혔다.
평신도 교육에 있어 장 신부는『전례나 교리보다 신자들이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복음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교육이 더 중요하다.』면서『교회가 사회 속에서 살아 있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등 현실 안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복음정신으로 무장되는 것이 급선무』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의 사회 참여와 발전을 좋은 예로 제시한 장 신부는『타이완교회가 국민당 정부와 함께 대륙에서 넘어 오면서 유지한 밀원관계가 특히 지식인들로 하여금 교회에 등을 돌리게 한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사랑에 입각한 정의의 편에서 교회는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성장할 때 이에 걸맞는 신자 교육이 이어져야 하는데 타이완교회는 이 점에서 시기를 놓쳤다고 지적한 장 신부는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천주교에 비해 불교나 개신교는 사회 봉사나 각종 사회 참여를 통해 지식인들과 일반인들에게 꾸준히 노력해 왔기 때문에 현재 많이 발전하고 있다.』면서『타이완교회는 정치 사회적 참여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고 분명히 했다.
또한 장 신부는 서양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아니라 삶의 원칙으로서의 신학을 강조하면서『신학은 그 지역 교회 안에서 얼마나 가치 있고 유용한지가 중요하다.』며 삶의 자리를 떠난 영성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평했다.
한편 장 신부는 홍콩의 반환과 함께 더욱 관심이 집중된 대륙선교 문제와 관련해『중국과 타이완의 문화는 또 다르다.』면서『새로운 문화이기에 새롭게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타이완교회는 대륙에서 건너온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연고지별로 도움을 주고 있으나 워낙 규모가 방대하고 타이완교회의 역량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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