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한국인 사제였던 최양업 신부는 박해를 피해 12년 동안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에 산재해 있는 1백27개 교우촌을 돌며 사목을 하다 과로로 숨진 착한 목자였다.
그가 신학생이었을 때인 1842년 4월 26일부터 선종하기 전 해인 1860년 9월 3일까지 작성한 서한은 총 19통으로 그 중 아홉 번째 서한인 1854년 9월에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것」만 유실됐고, 나머지 18통은 현존하고 있다.
이 18통의 최양업 신부 친필서한은 그간 파리외방전교회 고문서고에 소장되어 오다 금년 7월 1일 한국교회에 영구 이양됐다.
최양업 신부의 친필서한은 김대건 성인의 친필서한과 마찬가지로 먼저 최 신부 자신의 생애와 활동 내용, 신심과 업적을 알아보는 데 빼 놓을 수 없는 기초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이다.
또 최 신부의 활동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조선 입국로 개척의 역사와 박해시대의 교우촌과 생활상, 신자들의 신심과 복음의 확대 과정, 조선의 정치현실 등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최 신부의 친필서한은 아울러 그의 현양운동과 시복시성에 관한 중요한 기본 자료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소중한 한국교회의 보물이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 중 14통은 그의 스승인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냈고, 나머지 4통은 스승 리브와 신부에게 보냈다.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4통의 서한은 모두 원본이고,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4통은 모두 사본만 남아 있다. 사학자들은 리브와 신부가 서한 원본은 극동 대표부에 보관하고 사본을 만들어 파리 본부로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들은 1백50여 년이 지난 것에 비하면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나 여덟 번째 서한과 같이 아주 판독하기 어려운 몇 통의 서한도 있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은 모두 라틴어로 작성됐다. 최양업 신부가 서한을 작성한 시기는「조선 귀국 전과 후」로 크게 구분되고, 귀국 이전의 서한은 6통으로 프랑스 함대와 소팔가자, 심양, 홍콩, 상해 등지에서 작성했다.
1849년 12월 3일 조선으로 귀국한 뒤에 작성한 13통은 도앙골, 절골, 동골, 배론, 소리웃, 불무골, 오두재, 안곡, 죽림 등지에서 작성했고, 작성시기는 조선교회의 밀사가 사신 일행에 끼어 중국을 왕래하던 시기가 주로 12월이었던 점을 감안해, 9월에서 11월 사이에 기록했다.
현재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 운동을 추진 중인 청주교구(교구장= 정진석 주교)는 최양업 신부의 전기 자료집 총 3권을 간행하면서 라틴어 원본을 완역, 책으로 간행해 보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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