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22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는 빈체시오 아 바오로회 설립자 프레드릭 오자남의 한 평생은 오로지 그리스도께 대한 끝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봉사의 삶에 자신을 헌신했던 삶이다.
프레드릭 오자남은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로 프랑스 사회 전체가 큰 혼란기에 빠져 있던 1830년대에 용감히 일어나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적대자들을 당당히 대항하면서, 교회와 복음의 진리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던 영웅으로 평가 받고 있다.
본보는 애덕 실천에 중점을 두고 있는 대표적인 국제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하나로 성장한 성 빈체시오 아 바오로회의 설립자 프레드릭 오자남의 시복을 앞두고 ▲오자남의 생애와 사상 ▲성 빈체시오 아 바오로회의 영성 ▲한국 및 전 세계 성 빈첸시오회의 활동상과 전망 등 3회에 걸쳐 소개한다.
1백64년 전 프랑스에서 회의주의자와 무신론자들이 기세 높이 판 치던 시기에 프레드릭 오자남은 신앙을 더욱 효과적으로 증거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기 위해 1833년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전신인 자선협의회를 탄생시켰다. 40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하는 순간까지 빈첸시오회의 확산을 위해 뛰어 다녔던 오자남은 죽을 줄 알면서 임종하기 며칠 전까지도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분회 설립에 몸과 마음을 불태웠다.
프레드릭 오자남은 1813년 4월 23일 프랑스 중남부 상공도시 리용에서 의학 박사로 개업의인 아버지 앙.토안느 오자남과 자비심 많은 어머니 마리 낭타 사이의 다섯째 아기로 태어났다. 평생을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무료진료와 간병활동을 벌였던 부모의 영향을 받고 자란 오자남은 18세 때인 1831년 파리 소르본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이 시기는 프랑스 사회가 대혁명의 여파로 혼란한 가운데 회의주의자와 반 그리스도주의가 주류를 이루어 종교와 신앙이 경시되던 때이다. 대학진학 후 가톨릭 학생운동을 벌이며 성 빈첸시오 아 바오르 사랑의 딸회 로잘리 수녀의 빈민구제 자선사업 활동에 참여하던 오자남은 1832년 콜레라 전염병 환자돕기 운동을 전개하다 1833년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전신인「자선협의회」를 탄생시켰다.
이듬해인 1834년 자선협의회를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로 개칭하고 소르본느 학생운동으로 확대되면서 오자남은 계속적으로 분회를 설립해 나가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발전시켜 왔다. 이로써 사제와 수도자 중심의 자선활동을 평신도 조직을 통하여 확대해 나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1836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리옹에서 변호사 업을 개업한 오자남은 2년 후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리옹대학 상법학 교수, 파리 소르본느대학 보강교수를 거쳐 정교수가 되어 명강의로 명성을 날렸다.
1853년 40세로 임종할 때까지 대학교수와 변호사와 문필가로서 가톨릭 신앙을 적극 옹호해 온 오자남은 매주 빈첸시오 회원으로서 가난한 이들을 직접 방문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 활동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고 그것을 자기 삶의 중심으로 삼았다.
오자남은 파리 시내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에 살고 있는 로잘리 수녀를 도와 공부하는 틈틈이 가난한 가정을 직접 방문하면서 헐벗고 추위에 떨며 굶주리는 이들의 겨울 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 방문이 계속되면서 그들 안에 계시는 고통 당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자신도 모르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초대의 자리는 자연 사양하고 가난한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스스로 가난해져 갔다.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는 이유에 대해「가난한 이와 가까워짐으로써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면 주님과도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불행한 사람을 돕는 일은 명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우리와 동등한 사람으로 보기보다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존대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만일 그들과 같은 경우를 당한다면 참아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전령이다」고 강조했다.
1993년 7월 6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하느님의 종, 프레드릭 오자남의 영웅적인 덕행에 관한 교령」을 서명 공포했으며 같은 날 바티칸의 추기경 회의실에서 장엄한 의식과 함께「가경자」로 선언됐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와 성 루이즈 드 마리약에 의해 창설된 최초의 활동회로써 한국에는 현재 경기도 군포에 본원이 있다. 프랑스 파리 뤼드박에 있는 이 수도회의 모원 성당은 기적의 메달 성당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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