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 거야」요즘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를 바라보는 일각의 시각이다. 중고생들이 출연, 성인 뺨치는 포르노를 제작, 판매하는가 하면 최근 장난감을 사 주지 않는다고 5세 영아가 투신 자살을 하는 사회.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이 그 어느 곳에서도 안정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사회. 이 사회를 보고 많은 어른들은 「갈 데까지 간 거야」라고 한탄한다.
그러나 이 현상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비민주성이, 어른 세상의 폭력성이 그대로 여과없이 숨어 있다. 대학 입시, 그것도 명문대만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폭력, 사회 전체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우리의 청소년들이 과연 어떻게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나. 청소년 문제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는 교회 관계자들은 그래도 우리 청소년들은 맑고 순수하다고 평한다.
청소년 문제의 해결 방안은 과연 없는 걸까?
지금의 중고생들은 80년대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들이다. 「80년대 키드」들은 그 이전의 세대들과 확연하게 다른 두드러진 특징을 갖고 있다.
교사와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 이를 ▲즉각반응(Immediacy) ▲영상매체에의 대량 노출 (Image) ▲탈 권위 (Independence) ▲개인주의 (Individualism) 등 4가지로 설명한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 「즉각반응 세대」의 행동양식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서울 강남 H중학교 3학년 송모양(15)은 주말에 엄마와 함께 집 근처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는 것이 취미. 눈에 띄는 옷을 보면 엄마를 졸라 사고 만다. 그러나 사나흘 입고 다니다 금세 싫증을 느껴 옷들을 그냥 장롱에 쌓아 둔다. 그리곤 다시 백화점을 찾는다. 서울 시내 유명 백화점에서는 10대를 주 고객으로 삼은 지 오래다.
이들에겐 이성 교제도 즉각적이고 감각적이다. 서울 C고등학교 2학년 강모양은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나 너 좋아하는데 한 번 사귈래』라고 따지듯 묻는다. 강양은 중학교 때부터 10여 명의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고 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남들이 다 남자 친구 있는데 나만 없으면 창피하잖아요』
전문가들은 요즘 중고생의 이 같은 성향을 「RESET 증후군」이라고도 부른다.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리셋(RESET)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꺼졌다가 다시 켜져 시스템이 재부팅된다. 함부로 컴퓨터를 끄면 고장이 나던 286, 386 컴퓨터를 이용하던 세대들은 꿈도 꿀 수 없는 편리함이다. 물자가 풍부해지고 이기가 발달함에 따라 요즘 10대들은 자기 위주의 편리한 문제 해결 구조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자기 위주의 세계 해석」에서 학원 폭력과 청소년 성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사회 전체의 폭력성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교구 중고등부 YCS(Young Christian Studentㆍ가톨릭중고등학생연합회) 담당 윤일선 신부는『입시 위주의 공부만 강요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엄청난 또 하나의 폭력』이라고 지적하고『이러한 폭력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리적 폭력은 물론 우리 사회는 아무런 힘이 없는 이들 청소년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아무 생각없이 자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I 세대」「즉각반응 세대」라고 하지만 이들도 자신들만의 생각과 문화를 갖기를 원한다.
사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교회라도 이들을 끌어 안고 이들과 함께 나눔을 실천해야 된다. 억울하고 힘든 자들 보고『나에게로 오라』고 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 교회는 우리 사회의 가난한 계층, 억압 당하고 있는 청소년 계층의 참된 삶을 위해 「우선적 선택」을 해야 될 때라는 것이다.
여중생과 고교생들이 제작한 포르노 「빨간 마후라」사건이 터지고 며칠 안 돼 몰지각한 상인이 일본에서 우리말 더빙이 된 포르노 테이프를 수입하려다 발각됐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애인지 분간이 안 된다는 게 일반 시민들의 얘기다.
태국, 루마니아, 브라질 심지어는 선진국 독일에서까지 아동 매춘이 성업을 이루고 이들을 찾아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섹스 관광」을 떠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누가 감히 현재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를 그들만의 문제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맞벌이 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전통적인 가정이 해체된 우리 사회에서 부모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자란 우리 청소년들에겐 휴식과 사랑이 필요하다.
포르노에 출연했던 여중생이 『아무렇게나 살고 싶었다』고 울먹이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청소년들은 공감대를 느꼈을 것이라는 게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의 견해다. 인간성이 말살된 상태에서, 아무데서도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오로지 어른들의 입시라는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청소년들의 선택이 바로 폭력과 성 문제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유흥주점에서 접대부로 일하다 경찰에 적발된 모여상 2학년 H양(17)은 『죽어도 집이나 학교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말 친구와 함께 가출한 P양 역시 『가출하기 전까지 집에서는 아버지에게,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에게 맞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며 『지금 돌아가면 그때보다 더 심하게 맞을 것이 뻔한테 어떻게 돌아 가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청소년선도회 유성수 실장도『회원들이 유흥업소 등에서 찾아낸 청소년들 중 절반 이상이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해 이들을 찾는 것 못지 않게 설득하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며 『부모나 교사들이 이들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이들의 행동에 대해 무조건 윽박지르고 체벌하는 것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우리 사회의 가출 청소년 문제는「잡고 돌려 보내는」식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며 『가정 학교 사회의 범 사회적 노력이 없는 한 이 문제 해결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는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의 문제며 학교 그리고 전체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준거틀이 없는 사회.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는 사회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얼마 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 조직의 이름처럼 「막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사랑」을 실천 덕목 1호로 삼고 있는 가톨릭교회는 이들의 아픔을 싸 안아야만 된다.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 교회는 사목적 대 전환이 필요하다.
「청소년이 미래의 주역」이라고 말만 하지 말고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 미래의 희망으로 살아 가도록 구체적인 사목 대안을 마련해야 된다. 총체적 문제 접근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해 교회가 먼저 모범을 보여 주길 많은 이들은 바라고 있다.
◆ 돈보스꼬 정보문화센터 박경석 수사
“서태지 마돈나 매력 교회 지도자들도 지녀야”
『청소년 문제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선 교회 지도자들의 인식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서태지나 마돈나가 왜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교회 지도자들 역시 이들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매력을 지녀야 됩니다」
청소년들의 폭력과 성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영상매체를 통한 청소년 복음화에 땀 흘리고 있는 돈보스꼬 청소년 정보문화센터 박경석 수사의 주장이다.
박 수사는 청소년들이 폭력과 성 문제에 얽매이고 있는 원인은 바로 어른들에게 있으며, 이들은 교회가 사랑으로 끌어 안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경석 수사는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겐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성과 폭력에 물들어 있는 어른들의 일방적인 강요로 인해 돌파구가 필요한 그들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표현하려 했던 모습이 폭력과 성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결국은 어른들 문제
결국 박 수사의 주장도 아이들의 문제이기 전에 어른들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얘기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하는 한 청소년들의 폭력과 성 문제는 더욱 가속될 것이라는 견해다.
그는 또『청소년들은 현재 매스미디어 환경 속에서 살아 간다』며 『잘못된 매스미디어가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는 설명이 필요없는 일』이라고 전제하고 『매스미디어의 역기능을 순기능으로 전환시켜야 되는 것이 또한 교회의 사명』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극단적인 저질 만화가 청소년들의 심성을 물들게 하고, 이들의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는 박 수사는 『성 문제의 경우 교회 지도자들조차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진단한다.
성 문제, 교회도 능력 밖
그는 또 『교회가 청소년들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된다』며『교회의 지도자들은 청소년들을 어느 면에서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교회는 청소년들이 미래의 주역이란 점에서 그들의 존재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 사목은 다른 여타 사목에 우선되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차선책이 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청소년들이 소중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막상 그들을 피하고 있다는 게 박 수사의 주장이다.
박경석 수사는『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청소년들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교회가 적어도 청소년 문제에 있어서라도 교회 밖으로 향한, 즉 교회 밖의 청소년들이 교회 안으로 몰려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갖고 그들을 위한 적극적인 선택을 해야 될 것』이라고 촉구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