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말씀은 우리를 한껏 고무시킵니다.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그분을 향해 소리 높여 “아멘”으로 화답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복음을 묵상하며 갑갑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님을 뵈려는 간절한 원의를 가진 사람들이 그분을 목전에서 장애물을 만난 사연이 안타까웠습니다. 더욱이 그 장애물이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 있던 군중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날, 중풍병자를 들것에 눕혀 온 사람들은 환자를 예수님께 보이기 위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부탁했을 것입니다. “조금씩만, 한 걸음씩만 물러서 달라고” 청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매우 위중한 환자가 있다”고 소리를 질렀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고 비켜 주지 않았던 것이라 싶습니다. 문득, 먼저 그분을 믿는 선배교우들이 새 교우들을 외롭게 만드는 형국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을 믿되 몹시 이기적인 우리 모습 같습니다.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콕 집어, 환자의 믿음이 아닌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 주셨음을 밝히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마치 믿음의 기득권이라도 가진 양 으스대지만 정작 교회의 장애물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닌지 살피라는 일깨움이라 싶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소유한 듯 착각할 소지가 다분하고, 그분의 뜻을 훼방할 여지가 충분하며 그분 사랑을 왜곡시킬 위험이 현저한 까닭입니다. 주님을 찾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에게 주님을 만나도록 비켜주는 아량이 없다면, 주님께서 이루신 좋은 일, 선한 일, 놀라운 일에 트집만 잡던 바리사이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스스로 그분을 만나려는 영혼의 간절함이 얼마나 절절한지 헤아리기 바랍니다. 이웃을 예수님께 데려 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지 따져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그분의 선하심을 기껏 “하느님을 모독하는군”이라며 트집을 잡은 적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기 원합니다. 이야말로 그분을 찌르는 가시이며 그분을 내리치는 채찍이며 그분을 못 박는 악행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교회 안에는 예수님 주위에 포진하듯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이 있으며, 정작 주님을 뵙고자 갈망하는 이들을 가로막는 훼방꾼 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교회를 반대하며 퉁명한 어투를 남발하는 불편한 사람이 실재하기에 그렇습니다.
주일 복음이 어찌 이리 우울해서, 우리를 맥 빠지게 하나 싶은데요. 좋으신 주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으니, 다시 그분 사랑을 향합니다. 그분 품에 기대어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지침을 건집니다. 선교를 하며 만나게 되는 높고 단단한 장애물 앞에서 취할 행동지침을 듣습니다. 그분을 소개할 때, 누군가를 그분께 데려 올 때, 불쑥 나타나는 난관 앞에서 오늘 복음의 “네 사람”의 모습을 기억하라는 당부를 읽습니다. 숱한 훼방꾼들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라는 명령을 새깁니다.
그날 “네 사람”은 비켜 서주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통로를 내주지 않는 일에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새로운 발상으로 의기투합하여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그들은 들것에 누인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지붕에 올려 놓을 때에, 들것을 천장에서 내려 놓을 때에 진땀을 흘리며 한마음 한 호흡으로 몰입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마도 ‘하나, 둘’ ‘하나, 둘’ 호령을 붙여 한 걸음씩 조심조심 걸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군중들을 비집고 들어가려고 고집할 때, 들것에 누인 환자가 매우 불편해 질 것을 배려하여 지붕을 뚫기로 합의했던 것이라 헤아리니, 마음이 뭉클합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그들의 협동하고 합력하는 모습에서 ‘믿음을 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넷이 마음모아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고백이십니다. 이웃의 아픔에 예민하여 그 고통을 같이 짊어지는 희생만이 믿음의 증거라는 일깨움이라 헤아립니다.
세상은 죄인을 단죄하고 격리시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죄인을 사랑하고 품어 줄 의무를 지녔습니다. 그분께로부터 받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사용하여 살아있는 믿음을 보여드리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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