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족이 헤로데의 칼날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한 대목은 마태오 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알려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마태 2, 13-15)
유리화 ‘성가족의 이집트 피신’은 최영심 작가(1946- )의 작품인데 그는 수서동 성당에 뛰어난 유리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성당의 2층 성가대석을 장식하고 있으며 바로 위의 원형창문에는 아기 예수의 성탄 모습이 꾸며져 있다. 또한 이 성당의 왼쪽 벽면의 유리창에는 구약의 모세, 아브라함, 노아가 표현돼 있다. 그리고 오른쪽 벽면의 유리창에는 성모 마리아, 열 처녀의 비유,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묘사돼 있다. 이 성당의 유리화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색상으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오랫동안 사로잡는다.
‘성가족의 이집트 피신’에는 온갖 위험 속에서도 성가족의 보호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다했던 요셉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아기 예수를 감싸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그 뒤에서 성모자를 감싸고 있는 성 요셉을 보면 그가 성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신의 직분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언제나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느님의 뜻을 따라 올곧게 살았던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 최영심(1946- ), 성가족의 이집트 피신, 유리화, 1996년, 수서동 성당, 서울.
힘겨워하면서도 천사의 인도를 따라 성가족을 이집트로 대피시키는 요셉을 보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셨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기 예수와 마리아의 안전을 지켜 주기 위해 보초병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요셉처럼 아버지도 가족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하루도 편히 쉬지를 못하셨다. 몇 년 전, 그토록 굳게 믿고 따랐던 하느님의 품에 안기시기 전까지 아버지의 고단한 삶은 계속되셨다. 요셉의 커다란 눈망울 속에는 한평생 동안 가족을 위해 잠들지 못하고 깨어 사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