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 1)’ 국군함평병원 원목전담수녀로 일하며 하느님께서 나를 불러 특별한 사명을 주셨고, ‘나는 당신의 것이니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시도록 내어 드려야지!’ 하는 마음이 앞섰다.
두려움의 두근거림이 어느새 기쁨과 설렘의 두근거림으로 뒤바뀌어 마치 오순절에 성령으로 가득 차 밖으로 뛰쳐나가 “당신들이 죽인 예수가 살아나시어 부활하셨다”고 외치던 베드로 사도처럼 나를 내몰아 세우셨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콜로 3, 15)’라는 성구와 평화롭게 미소 띤 내 사진-하느님의 걸작품-을 원목실 입구에 걸어놓은 다음 나의 일상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인사를 받든 말든,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평화롭게 인사하자는 다짐을 거듭하면서 병실을 순회하여 신자들을 찾아내고 도움이 될 영적서적과 월간 신앙지, 병사들이 볼 만한 책을 비치해 두는 것은 물론, 원목실에 먹을거리를 준비해 놓은 다음 오가는 사람들을 환대하며,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성당에 들어가 살아계신 예수님께 오늘 하루를 봉헌했다.
우리 신자 환자병들은 내 출근시간이 되면 눈, 비가 내려도 서성이다가 내 차가 들어서기 무섭게 반가운 마음에 양손 들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좀 늦다 싶으면 왜 늦게 오셨냐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옷 따뜻하게 입고 양말 신고 다녀야지! 감기 들겠다.” 사랑어린 나의 잔소리에 행복한 미소로 답한다. 참 예쁘다.
이곳에 처음 이송된 환자 병들의 표정은 불안하고 긴장감으로 어둡다가 원목실에서 서로 어울리다 보면 차차 밝아지곤 한다. 엄마가 그리운 탓에 “엄마라고 해도 돼요?”라고 묻는 애교 넘치는 환자 병에게는 “그래, 내가 네 엄마다”하며 다정하게 다가가니 자기들의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조언도 구한다. 어느새 우리는 이렇게 친구가 된다.
입원한 자녀를 부탁할 때, 부모로서 얼마나 애가 쓰일까 싶어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드린다. 부모님께 이곳 상황과 아들의 건강상태를 알려드리면 안심하고 참 편안해들 한다.
원목실은 로비 가까이에 있어 지나가던 군 장교들과 외부 진료자들, 퇴원 환자들이 수시로 들러 유동성이 크다. 틈틈이 병실에 가서 신자들을 찾아내고 신앙생활을 점검하는 가운데 이곳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길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다 보면 하루가 참 짧게 느껴진다.
잦은 유동인구로 얼굴을 익힐 만하면 떠나니 처음에는 아직 완쾌되지 않은 병사들이 떠날 때마다 눈물을 훔치며 ‘죽은 이도 살려 주신 능력의 하느님 쫌! 어떻게 해보세요’ 또 그분께 십자가를 지워드리며 투정부리기 일쑤다.
병실을 순회하다 보면, 병사들이 전화상으로 우리 병원에는 수녀님도 계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기도 하고 뒤에서 슬그머니 어깨를 꽉 껴안거나 꽥 놀리기도 하고, 사탕을 까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때론, 여자 친구에게 차여 분하다고 훌쩍거리는 병사가 찾아오기도 하고 외국에 있는 여자 친구에게 우편배달과 문구류 구입, 부모님의 불화로 인한 기도 부탁과 가정사와 직장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개인적인 고충들을 신자든 아니든 퍼부어대고 가는 사람도 있다. 나름 잘 들어주고, 안심시켜 이리저리 손길을 내밀어 도움을 주는 국군함평병원 수녀로서 ‘모든 이의 모든 것’의 역할을 해야 함은 분명한 듯하다.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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