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바로 보고 공론화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당연히 그 주체는 교회다”
앞선 글에서 국내 성물시장의 역사와 현황을 대략적으로 살펴 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유통구조상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들을 각 단계별로 보다 구체적으로 짚어 보고자 한다.
성물의 문제는 사실상 제조에서 도매-소매-소비자(신자)에 이르는 유통과정의 혼탁함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작품의 무단복제와 그로 인한 질적 저하의 문제도 결국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통의 순기능
성물업 종사자들이 국내 성물 보급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은 단순히 성물이 조잡하다거나 상업적이라는 표현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성물업자들의 경제적 이윤 추구를 신앙의 잣대로만 바라보는데도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투자」라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 성실하게, 또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는지는 되짚어 볼 문제다. 결국 지금과 같은 과열 경쟁과 성물의 질적 하락을 초래한 것도 업자들의 지나친 이윤 추구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성물시장의 영세성과 다양한 수요층 등을 감안할 때 업자들의 어려움을 예상치 못할 바는 아니다. 또 그 중엔 이런 현실을 개탄하는 몇몇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만으로 개선을 희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 현실적인 여건, 탓에 그들 역시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도매업자의 문제
성물업은 등록이나 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는 시장 자체가 수요 공급에 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으나, 결국엔 고만고만한 중소업자들의 난립을 부추기고 과다경쟁을 유발시켜 혼탁한 유통구조를 이루는 원인이 되고 있다.
성물시장은 개인적인 친분이나 인척 관계, 마진의 보장 여부가 관건이 되고 있다는 점도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이다. 따라서 업체마다 차별화 특성화 되지 못하고 동일한 혹은 유사한 제품들이 각기 다른 가격으로 유통되고 있다.
신제품 개발에 투자를 한다고 해도 아무런 보호막이 없어 후발업체들의 모방과 가격 경쟁에 밀려 재투자의 방향을 제품의 개발보다는 물리적 양의 확보와 그에 따른 이윤 추구에 역점을 두게 되는 폐단을 낳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자들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많은 자본과 시간을 들여 새로운 제품을 내놓아도 불과 몇일 새 복제품이 판을 치는 현실이다. 복제품은 싼 값에 시중에 유통된다. 가격 경쟁력을 잃고 도산할 것은 뻔한 일.
창작자들은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도매업자와 종속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고 그에 따라 자체적인 개발이나 투자는 엄두를 못 내는 실정이다.
제작자와 유통영역 확보를 위한 도매업자들의 경쟁은 집요하다. 업자간 상대방「깍아 내리기」와 위협이 난무하는 업자들의 경쟁 와중에 창작자들은 고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리베이트」실상
이번 취재 중에 그동안 소문으로 돌던 소위「리베이트」, 즉 웃돈 거래 실상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취재 중에 만난 도매업자들은 거의 절반이 넘는 일선 성물방으로부터 직간접으로「플러스 알파」를 요구 받았다고 증언했다. 웃돈 거래가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잡았다는 증거다.
도매업자들이 건네는 웃돈은 결재 금액의 5~10% 정도. 현금으로 그 자리에서 성물방 담당자에 건네진다. 이러한 관행 역시 업자들간 과열경쟁에서 생겨난 것이다. 한 업자는 최고 20만 원의 웃돈을 준 적도 있다고 털어 놨다.
업자들의 출혈은 뻔한 일. 자연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선 질적 가치는 제쳐 두고 값싼 수입성물을 유통시키거나 복제품을 내다 파는 편법이 활개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웃돈의 성격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는 있다. 상거래상 인사치레로 성의를 표시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혹자는 성전 건립기금으로, 혹은 단체활동비 지원 명목으로 기부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들 소위「뇌물」이라고 밝히고 주고 받겠는가. 명목이야 어떻든 결국은 비정상적인 관행을 서로가 무감각하게 용인하고 있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성물방 담당자들의 무관심과 무지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업자는 극단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차피 자기 물건은 아니라는 거죠. 봉사자의 입장이니까 골치 아프게 이것 저것 따질 것도 없고 신자들은 교회의 물건이고 신자가 만들고 판다는 것만으로 신뢰를 가지니까 문제의 해결은 요원한 겁니다』.
도매업자와 성물방 담당자와의 이 같은 관행은 본당 수녀나 사제가 성물방을 관장하는 곳 보다는 본당 내 단체가 맡고 있는 곳일수록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개선방향
현재 국내 성물시장의 복잡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공청회 개최, 성물의 제작과 유통을 통제할 수 있는 위원회 설치, 성물판매소의 보급화 등 여러 가지 안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수월할 것 같지는 않다.
외국의 경우 교구별로 관련 위원회를 두고 제품의 품질과 가격을 심사해 인준된 품목에 한해 유통시키는 사례도 있다. 인적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는 미묘한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무분별한 유통상황을 통제할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것이 힘들다면 제작자나 제작업체별로 고유한 심벌(제작자명)과 같은 표시를 하도록 하고 수입산의 경우는 원산지 표시를 명백히 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현행 성물시장의 구석구석을 드러내 놓고 공론화할 수 있는 공개된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이런 자리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문제 해결의 주체는 당연히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물」이 성물답다는 것은 그만한 품격과 가치가 인정될 때 가능하다.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도 도덕성은 요구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 성물시장의 현실이 이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이러한 논의의 출발점인 것이다.
관계자들의 주장
취재 과정에 만난 여러 인물들의 주장을 모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무분별한 복제 현실과 관행화된 비윤리적인 상거래 행위들이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이름은 모두 가명을 썼다.
ㅂ씨(도매업ㆍ소매점)=국내 성물시장은 상식적인 상거래도 실종된 상태다. 성물의 조잡성도 도를 넘었다. 이 모든 피해자는 신자들이다. 그러나 신자들의 무관심이 문제다.
현실을 객관화하고 실상과 문제점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ㅊ씨(제작자)=성예술은 인간을 구원에로 이끄는 일과 직결된다고 본다. 만드는 이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하고 교회는 이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주고 보호해 줘야 한다.
ㅎ씨(도매업)=80년대 후반 후발업체들의 등장으로 성물시장의 과열현상은 심각한 지경이다.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원가절감을 위해 수입산이 활개를 친다.
제작으로선 유지가 어려워 너도 나도 도매업에 뛰어들고 업자가 난립하다 보니 과열경쟁과 혼란은 자연스런 결과다.
ㄱ씨(도매업)=소매점(성물방)에서 판매 이익에만 급급하다 보니 안하무인 격이다. 공공연하게 웃돈을 요구한다. 성모상 하나를 보더라도 그들이 어느 정도의 식견과 안목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소한의 지식은 갖고 신자들에게 권해야 할 것이다. 이런 현실이 역겨울 때가 많다.
ㅇ씨(제작자)=인건비 상승, 재료 값 인상 등으로 국내 제작자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복제품이 난립하고 값싸고 볼품 없는 수입품이 활개를 치는 현실은 국내 창작자들이 목을 죄는 것이나 다름 없다.
◆「성상 제작」40년 외길 최근춘 씨
“복제품 난립 현실 보며 필생의 업 물거품 되는 듯”
두 아들 포기…장남만 대 이어
40여 년간 「성상 제작」외길을 걸어온 최근춘(라우렌시오ㆍ73)씨. 국내 성상 제작자들 가운데 경력이나 기술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그이지만 요즘 같아선 지나온 세월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에게 성상과의 인연은 뜻하지 않게 찾아 왔다. 55년 당시 공세리본당 이은하 신부가 최씨가 만들어 보관 중이던 성모상을 보고는 그 아름다움에 반해 주문 제작하면서부터다.
최씨의 성상에 관한 소문은 알음알음으로 퍼져 60년대 초반에는 명동성당 성물방에 그가 만든 성상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의 재능을 귀하게, 그리고 아깝게 보던 변갑선 신부 등 사목자들의 적극적인 격려와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그동안 최씨가 제작한 성상이 비치된 곳은 서울 새남터성당의 김대건 성인상을 비롯해 대전가톨릭대학 교정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상까지 꽤 알려진 곳만 해도 1백여 곳이 넘는다. 작품 종류도 성모상, 예수성심상, 피에타상, 미카엘 천사상과 감실, 14처상 등 다양하다.
그러나 80년대 들면서 가업으로 이어가던 그의 필생의 작업도 일대 위기를 맞게 된다. 『한 번은 광주에서 주문한 성상을 제작해 가져 갔더니만 저희 것과 똑같은 것이 이미 들어 와 있어요. 서울에서 제 작품을 복제한 것이지요. 그 때 충격은 말로 다 못할 겁니다』.
이런 사례는 갈수록 빈번해졌다. 결국 대를 잇던 세 아들 중 둘째와 넷째는 충격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가출, 지금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25년 경력이 한 순간에 사장되고 만 것이다.
『큰 아들도 한때 포기하려 했습니다. 한 작품을 조각하려면 짧게는 4개월에서 몇 년씩 걸리는데 불과 몇일새 복제품이 나돌고 있으니 누군들 배겨내겠습니까』.
최씨의 오른쪽 손은 평상시에도 계속 떨린다. 작년엔 기관지 이상으로 몇 개월을 입원했었다. 무릎 관절염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이 모두가 어리석을 만치 한 우물만 파 온 최씨의 고집을 말해 준다.
40년 넘게 이 일에 매달리면서 자식 공부도 변변히 못 시켰고, 일군 것이라곤 30평 남짓한 작업실이 전부다. 「하느님이 주신 10남매 가운데 아쉽기는 하지만 신부와 수녀로 한 명씩 길러 주신 데 감사할 뿐이지요」.
『아버님은 양심적으로 신앙 하나로 버텨 왔습니다. 장사를 할 줄 몰라서 못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에 안 한 것입니다』.
주름 가득한 아버지를 바라다 보는 아들 최인선(안드레아ㆍ43)씨의 얼굴엔 자부심과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함께 교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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