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는 난생 처음으로 사슴 피를 먹었습니다. 이제까지는 그런 거 먹는 것에 대해「남의 얘기지, 몹쓸 짓이야, 뭐 그런 것들이 다 있어? 그것 먹고 얼마나 오래 사나 두고 보자. 잘 먹고 잘 살아라」하고 비난했었는데, 아는 교우가 한 번 먹어보지 않겠느냐고 권고하는 바람에 못된 호기심이 갑자기 발동하여 맛이나 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정한 날,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 갔더니 사슴을 마취시켜 놓고 뿔을 잘라 피를 받아내는데 사람들이 줄로 서 있고 한 사발씩 피를 받아 갖다 주면 마시는 겁니다. 저는 멋적기도 하고 약간 끔찍도 해서 눈을 감고 상을 찌뿌리면서「에라, 모르겠다」중얼거리며 벌컥벌컥 들이마셨습니다. 주인 얘기를 들어보니 상습적으로 마시러 오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몸에 보약이 된답니다. 글쎄요. 뭐가 변했는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단 한 번으로 몸이 달라지길 기대하면 무리겠지요.
오늘 복음도 지난 주일과 같이 성체성사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요한 6, 50~51)라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이는 성체성사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기 몸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눈이 멀면 부모는 자기 눈이라도 빼어 주고 싶어합니다. 신장이 안 좋으면 신장 이식수술로 자기의 장기를 내주고 싶어합니다. 옛날에 노모가 아프면 병을 낫게 하려고 효성스런 아들이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어머니 입 속에 흘려 넣었다 합니다. 이렇게 누구나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는 자기의 살이나 피까지도 내어 주고 싶어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셨기에 자기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성체와 성혈입니다.
둘째로, 우리와 항상 가까이 계셔 일치하시려고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본래의 상태로 먹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 고기를 먹을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먹는다 하더라도 양이 얼마 되지도 않으려니와 2천년이 지난 우리에게까지 몫이 돌아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모든 이가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감추어 계시는 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삽니다. 먹는 것은 남녀노소 구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다른 것은 취미나, 전공이나, 나이가 같든지 해야 접근이 용이합니다. 그러나 음식은 누구나 빠짐없이 먹습니다. 음식의 형태로 현존하는 것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장 접근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 형상 안에 신비롭게 존재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세상 끝날까지 모든 이가 쉽게 성체를 모실 수 있게 되었으며, 예수님과 쉽게 일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 56). 성녀 소화 데레사도 이러한 일치에 대해『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매일 흰 제병을 변화시켜 자기 자신이 되게 하십니다. 아니, 그의 크고 큰 사랑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셋째로,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키시기 위하여 즉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천주 성자께서 강생하신 이유는 바로「인간 구원」에 있습니다. 인간 구원이란 죽음에서의 해방, 죄에서의 해방을 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 않으려고 삼천 동남동녀를 선발해서 불로장생 약을 구하러 보냈습니다. 결국은 죽었습니다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에 좋다면, 장수한다면 무엇이나 다 섭취하려 합니다. 장수나 건강 비법에 관한 책들이 날개 돋힌 듯 팔린다고 합니다. 누구나 영원히 살기를 원했지만 아무도 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소원을 채워 주셨습니다. 성체를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영원히 살 수 있는 보약, 불사 약인 성체를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를 죄악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이기고 신앙에 항구하고 주의 계명을 잘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즉 저항력이 요구됩니다. 왜냐하면『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기』(마태 26, 4) 때문이죠. 『원수인 악마는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기』(1 베드로 5, 8)때문입니다. 그 저항력을 바로 성체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고해성사로 죄사함을 받아야만 유효하게 성체를 영할 수 있으며 영성체 후에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결심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체는 우리가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께 감사의 정을 발해야 하겠습니다. 잦은 성체조배로 성체신심을 키워야 하겠고 성체의 신비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체성사는 믿기 어려운 신비의 성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신비를 알아듣지 못해 예수님을 떠나갔던 것처럼 포기하지 말고 이 신비를 알아듣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
방윤석신부②
<대전교구 홍보국장>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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