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4. 한국교회와 소설문학의 전통
1. 교회와 소설
소설은 왜 계속 필요한가. 이러한 물음을 우선 제기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근래에「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첨단과학의 위력, 자본주의의 세계 통일, 영상매체의 일상화 현상, 이러한 것들이 문자로 표현하는 문학의 기능을 자연히 위축시킨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견해이기도 하다. 어느 사회 어느 나라에서는 문학의 기능이 위축되어 있는 현상도 실재로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인간은 물질이 아니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을 가지고 태어나 우주 안에서 가장 존엄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인간을 가리켜 하느님의 분신이며 자녀라고 말한다. 이것이 인간 본성이다.
또 인간에게는 보편적 양심률이 있다. 이것을 칸트는 실천 이성이라고 했다. 교회에서는 자연법이라고 한다. 물질과 자본의 힘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삶 안에 있는 방편이다. 방편이 주체인 인간을 이길 수는 없으며 이겨서도 안 된다.
또 시대와 사회에 따라 어떠한 이념이 생기더라도 그것은 보편적 양심률을 이길 수는 없으며 이겨서도 안 된다. 양심은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골방이다. 예술작품의 미적가치에도 보편성이 있다. 그 궁극은 윤리이며 도덕성이다. 칸트의 미학인「판단력 비판」이 다분히 자연에 의거하는 것과 루카치의 미학적 기준이 윤리에 귀착한 것은 미적 가치의「보편성」때문이다.
더욱이 문학예술은 언어를 매체로 삼는다. 언어, 즉「말씀」에 대해 교회에서는 어떻게 말하는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하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그분이 그리스도로서 생명이며 빛이고, 은총과 진리라고 했다. 요한 복음서의 첫 대목이다.
이 언어를 사람들이 오염시키는 일이 많다. 그러나 문학예술의 진정한 작품에서 쓰이는 언어는『원초적이며 살아 있는 언어』라고 가톨릭 신학자 칼라너가 말했다. 시의 경우를 가리켜 한 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시인은 존재 근원으로부터 산 언어로써 일을 하므로 사제와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소설은 시와 같지는 않다. 그러나 소설도 시의 서사적 확장이다. 또한 소설도 언어를 매체로 쓰고 있다. 수많은 언어를 매체로 쓰고 있다. 수많은 소설들이 언어를 훼손하기도 한다. 소설은 비록 거친 소재를 다룰 때에도 언어를 순화하고 절제해서 써야 한다.
이 글의 주제가「한국교회와 소설문학」이라고 된 것은 적절하다. 가령 오늘의 한국「가톨릭 소설」이라고 되어 있다면 개념의 이해가 어려워진다. 유럽의 베르나노스라든가 그레암 그린, 일본의 엔도슈사꾸가 한국 가톨릭 작가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 소설은 작가가 처한 시대와 사회 안의 인간 삶에 근거하는 개성적 작업이다.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개념에 대해 확대 해석을 하기도 했다. 구체적 근거와 중심이 되는 것으로서는 제도적 교회가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정신 차원에서는「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톨릭 문학 또는 가톨릭 소설이 종파적 호교의 방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가톨릭교회가 1965년에 발표한「현대 세계 사목헌장」(62항)이 문학예술에 대해 내리고 있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문학예술은 인간 본연의 자질과, 자신 및 세계를 이해하고 완성시키는 데에 요구되는 인간의 과제와 체험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역사와 세계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발견하고 인간의 불행과 기쁨, 필요와 능력을 밝혀 주며, 인간의 보다 나은 운명을 개척하려고 노력한다. 이리하여 문학예술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
가톨릭 소설 또한 이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문학은 인간 존재와도 같이 소중한 언어를 훼손하지 않고 최선으로 구현하며 인간의 자기완성에 이바지하는 문학, 다른 말로 하자면「진정한 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한국 사회에는 일반 대중이 문학을 숭상해 온 전통이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소설로서 백만 부 이상을 발행하고 시로써도 십만 부 이상을 발행하는 사례들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진리와 인간 삶의 의미를 세상에 육화하는 데에 소설이 이바지할 길은 열려 있다.
2. 한국 현대문학 속의 가톨릭 소설
한무숙- 존재 인식을 통한 인간의 구원에까지 주제 전개
박완서- 서민적 인간상들을 주인공으로… 넓은 독자폭 형성
이규정- 「아버지의 적삼」… 충실한 가톨릭 소설
노순자- 현실에서 소재 선택, 인간존엄 향한 저항의 성향 가져
이상적인 관점이지만 앞에서 말한대로 진정한 문학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우리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가톨릭 소설이라는 말을 편의적으로 쓸 수 있다. 이러한 소설은 가톨릭 신자인 작가가 쓴 작품으로서 그 내용에 가톨릭 소재가 있다거나 인간다운 삶의 의미와 구원의 문제가 담겨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한무숙, 박완서, 이규정, 노순자 네 작가의 작품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한무숙(1918~1993)은 1948년 장편「역사는 흐른다」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그 뒤「월운」「감정이 있는 심연」「우리 사이 모든 것이」「어둠에 갇힌 불꽃들」「만남」을 포함해서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이 작가는 생명에 대한 외경 (「월운」)에서부터 일상적 삶의 의미에 대한 섬세한 추적 (「감정이 있는 심연」) 을 거쳐 존재 인식을 통한 인간의 구원에까지 주제를 전개했다.
「어둠에 갇힌 불꽃들」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가 고아원 선생 병호에게 묻는다. 『선생님 저 사람들 왜 싸워요?』어느날 고아원 앞 길에서 큰 싸움이 일어난 일이 있었다. 싸우는 사람들은 서로 험한 말을 구정물처럼 퍼부어 가며 치고 때리고 차고 밀었다. 눈 먼 고아들은 공포로 떨며 그 모양을 듣고 있었다. 안나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 저 사람들 눈 뜬 사람이에요? 못 보는 사람이에요?』 병호는 어리둥절해 하며 『보는 사람이지』하고 대답했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왜 싸워요? 앞을 볼 수 있어도 불평이 있어요? 무슨 불평이 있어요? 앞을 볼 수 있는데』. 맑고 고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안나는 소위 청맹으로서 앞을 보는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 없으면서 보이지 않는다.)
『앞을 볼 수 있어도 불평이 있어요?』이 한마디는 우주에 존재하는 전체를 감각으로 인식하고 소유하는 은총에 대해 절실한 일깨움을 준다.
순교자 정하상과 그의 숙부 정다산을 기둥으로 하여 구성된 장편소설「만남」은 한무숙 소설 말기의 큰 업적이다. 이 소설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을 기둥과 서까래로 삼고 그 안에 배신과 용서, 죄와 진리, 만남의 신비로 형상화된 인간의 삶이 있게 하였다. 소설의 제목「만남」은 서양으로부터 온 그리스도 신앙과 동양의 유교사상이 만났다는 뜻으로 짐작될 수도 있다. 아울러 이 소설에는 인간들의 만남이 있다. 조선 천주교 초기 피난하던 신도 권 진사의 가족과 종의 관계가 있다.
권 진사가 원래 경기도 양근에 살 때 낙종은 그 집의 인물 좋은 총각 종이었다. 권 진사에게 시집 오는 열네 살 신부의 빼어난 미모에 종 낙종은 흠모와 자탄의 한을 품었었다. 박해를 피해 권 진사 가족이 충청도로 피난하던 과정에서 낙종은 상전 가족을 배반했다. 이로 인해 권 진사의 아내는 자결을 했다. 또 다른 죄업으로 병신이 된 낙종도 옥에 갇히는데 먼저 들어와 있던 천주교 신자 권 진사는 그를 용서한다. 옥 중에서 짚신을 삼아 판 돈으로 지난날의 원수 낙종의 연명을 돕는다.
소설「만남」에서는 인간과 운명의 만남, 인간과 궁극적 의미 즉 진리와의 만남이 있다. 진리에 지향하는 마무리를 다산이 감당하기도 한다. 다산은 우리 민족 근대 정신사의 가장 큰 디딤돌이다. 이 점에서도 이 소설의 비중이 있다. 이 외에도 한무숙에게는「우리 사이 모든 것이」「생인손」등 우수한 가톨릭 소설이 있다. 문체의 단아하고 정치한 장인의식과 더불어 인간 구원의 주제가 한무숙 소설의 일관된 격조였다.
박완서는 1970년에 장편소설「나목」을 발표하여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1931년생으로 40대 나이에 들어서며 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뒤 꾸준한 소작으로 한국 현대소설의 큰 거점을 이루고 있다. 이 작가는「휘청거리는 오후」「미망」「저문 날의 삽화」「환각의 나비」를 포함해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거의 하나도 타작이 없으며 견실한 역작들이다. 특히 건강한 서민적 인간상들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넓은 독자폭을 갖고 있는 것이 또한 박완서 소설의 보람 있는 성취이다.
여기에서는 연작소설「저문 날의 삽화」5에 대해 논급하기로 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인생의 곰살 궂은 갈피들과 특유의 신선한 화술을 펼친다. 이 작품에는 조촐하고 아름다운 정경들이 있다.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숙연해지게 하는 아픈 충격이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의 차원에서 깊은 경각을 갖게 한다.
직장에서 정년 퇴직을 한 중늙은이 가장과 그의 아내가 도시의 교외에서 한적한 삶을 즐기고 있다. 부부가 다정하고 양명하지만 남편이 아내에게서 궁금해 하는 한 가지 일이 있었다. 아내가 한 평쯤이라도 자신만의 공간을 원해 헛간의 절반을 막아 골방을 하나 만들었다. 이 골방을 아내는 별로 사용하는 것 같지 않다. 남편은 시치미를 떼고 이 골방을 자신의 담배 피우는 방으로 쓰자고 제의해 본다.
『끽연실 좋아하시네. 내가 왜 안 써요. 거긴 내 기도실이란 말예요.』아내의 핀잔이 돌아왔다. 과연 아내는 언젠가 성당에서 사 온 굵은 양초에 불을 붙이고 십자가 고상 밑에 꿇어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빌고 있었다. 기도하는 아내의 얼굴이 너무 처참하게까지 구겨져 있는 걸 남편은 훔쳐 볼 수 있었다.
『우리 직계식구들 사이의 죽음만이라도 순서대로 이루어지이다 라고 빌 때처럼 마음이 간절해질 때는 없다우. 그 밖의 욕심은 아예 부려본 적도 없건만 너무 욕심 많다 하실 것 같아 얼마나 열심히 알랑거리는지 아마 당신은 모를거유.』
기도 내용에 대한 아내의 실토였다. 전쟁을 겪은 사회, 불운의 가족사가 일깨우는 가장 절실한 삶의 속사정이다. 이것은 생명과 인생을 함께 아우르는 엄숙한 묵상이다. 결국 직계가족이 나이 순으로 죽게 되지 못하는 것이 이 소설의 끝이다. 인간의 한계상황에 대한 충격적인 절감을 독자에게 안겨 준다. 세상의 일이 너무 억울하고 가혹하다 하더라도, 인간은 무한한 존재를 향해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더욱 인간적인 존재로 되어 간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이 유한한 세상을 넘어 무한한 본질계에 진입함으로써 다시 역으로 인간과 역사를 이해하고 지탱해 나아가려고 하는 태도의 선택이다(황철수, 「신학적 인간학의 물음」참조). 이와 같은 귀결과 경지가 있다.
이규정은 부산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작가이다. 1937년생으로 1977년에「부처님의 멀미」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들러리 만세」「첫째와 꼴찌」장편「돌아눕는 자의 행복」을 포함해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아버지의 적삼」(95)은 충실한 가톨릭 소설로 꼽을 만하다.
민족 현대사 안에서 가장 큰 비극인 6 ·25전쟁 때 아버지를 총살한 이를 먼 뒷날 용서하는 아들의 이야기이다. 대중적 상투형과는 거리가 멀게 구체성의 형상화와 주제의 집중이 있다. 화해의 과정에 격정과 신비가 역동하고 있다.
노순자는 1974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산울음」「타인의 목소리」「누이여 천국에서 만나자」를 포함한 여러 작품이 있다. 사회 현실에서 소재를 취해 인간존엄을 향한 저항의 성향을 띠는 편이다. 「진혼미사」는 1987년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박종철군의 추도미사 주변이 소재이다. 평면적인 전개의 작품이지만 80년대 후반 명동대성당 시국미사의 충실한 기록으로서 소중하다 할 수 있다.
3. 맺는 말
지면이 제한되어 있어 마무리 부분이 소략하게 되었다. 팽창하는 물질주의, 영상매체, 포스트 모더니즘의 혼류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과 자연법에 의거하는 진정한 문학으로서의 가톨릭 소설이 가능하다고 본다. 유능한 가톨릭 작가들이 또한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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