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역시 지난 주일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입니다. 『나는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5천 명에게 빵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신 뒤로 누차 이 말씀을 강조하십니다. 청중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생명의 빵」이라느니「내 살이요, 내 피」라느니 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음식에 대해 말로만 화려하게 장식하고 말았을까요? 아닙니다. 「내 살과 피를 받아 먹어야 산다」고 말씀만 해 놓고 아무런 조치도, 방법도 취하지 않으셨다면 그야말로 헛소리가 아니겠습니까? 요즈음 일부 정치가들처럼 빌 공(空)자 공약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받아 먹고 마실 수 있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 주셨습니다. 바로 최후의 만찬 예식입니다. 빠스카 축제 전날 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기도하신 다음『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니라』 하신 후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어서 잔을 들어 감사기도를 올리시고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이다.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하여 흘릴 피이다』 (마태 26, 26~2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식은 예수님 제자들에 의해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거행되어 왔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이 예식은 신약 제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하여 우리를 영원히 먹여 살리는 음식이 되신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우리의 신앙 생활의 중심도 역시 제사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불완전한 제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완전한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려면 완전한 제물이 필요하죠. 하느님이신 예수님만이 완전한 제물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제물이 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상에서 자기 자신을 죽여 피흘려서 제물로 천주 성부께 제사를 바치신 것입니다. 이 완전한 제사는 최후의 만찬예식으로 재현됩니다. 즉 거룩한 변화 예식을 통해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현존하시게 되고 성부께 십자가상의 제사를 다시 봉헌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몸을 나누어 먹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주 성부께 봉헌하는 제사인 미사에 이런 현의를 깨닫고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변화 때마다 완전한 제관으로, 완전한 제물로 봉헌하시어 천주 성부께서 가장 즐겨 받으시는 제사가 되게 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 기회에 두 가지 부탁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심치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많은 성체의 기적이 예수님의 현존을 잘 증명해 줍니다. 성변화 도중 포도주가 넘쳐 제단을 붉게 적셨다던가 성체거양 때 아기예수가 나타나셨다는 사실 등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예수님의「내 살, 내 피」라는 말씀을 비유적, 상징적으로 해석하지 마시고「글자 그대로」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개신교에서는 비유적, 상징적으로 인정하여「글자 그대로 해석」(자의적 해석)을 완강히 부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자들처럼 자의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즉「이는 내 피니라」하셨으면 그 즉시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된다는 해석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을 무한히 신뢰하였으며 스승의 말씀을 그대로 알아 듣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비판을 가할만큼 의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제자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에 대해선 착오를 종종 고쳐 주셨습니다. 「에라스무스」라는 교회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 대신에 하찮은 빵 껍질을 공경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떤 추기경은 『그런 중요한 상황에서 애매하게 말하셨을 리도 없고 이 한 말씀으로 제자들과 전체 교회를 골탕 먹이실 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체는 항상 성당 중앙에 모셔져 있습니다. 성체를 중심으로 제사가 거행됩니다. 성체성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는 한 단면입니다. 구원의 성체를 자주 받아 모심으로써 영원한 초자연적 생명을 키워 나가도록 노력합시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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