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부끄러운 역사 중의 하나가 당파싸움이다. 이것은 조선 정치사의 오점이요, 숱한 사화를 불러일으킨 원인이었다. 잠깐 머리통 터지게 싸운 당파싸움을 소개한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고려 때부터 1천여 년을 불교를 숭상해 오다가 조선왕조부터 유교가 이를 대신하게 되었다.
태조부터 선조까지 2백여 년간을 살펴보면 신파, 구파로 나뉘어 입신양명만 꾀했다. 수구파가 인신공격을 일삼던 혁신파인 주자학파를 내몰게 된다. 연산군 4년(1498)부터 50년간 4개의 사화로 학자 대학살 사건을 치룬다.
무오사화(1498)란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가 김종직의 사림파에 대해 일으킨 사화. 훈구파가 성종실록에 실린 사초 「제의제문」으로 사림파를 모함하여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김일손 등 많은 선비를 죽이고 귀양 보냈다. 갑자사화(1504)는 연산군 10년에 일어났는데 폐위된 연산군 어머니 윤씨의 복위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사화. 생모 윤씨가 폐위 사사된 사실을 알고 성종의 후궁과 왕자들을 죽이고, 윤씨 폐위에 찬성했던 윤필상, 이극균, 김굉필 등 십여 명의 신하들을 유배 사사하였으며, 이미 죽은 한명회 등을 부관참시하였다. 이로 인하여 성종 때 양성된 많은 학자들이 화를 입었으며 학계는 침체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기묘사화(1519)는 중종 14년에 일어난 사화이다. 홍경주, 남곤 등 수구파가 이상정치를 주장하던 조광조, 김정 등 연소 신진파를 사사 또는 유배시킨 사건이다. 을사사화(1545)는 명종 원년에 일어났는데, 명종의 외숙이자 소윤의 거두인 윤원형과 인종의 외숙이자 대윤의 거두인 윤임과의 불화로, 인종이 승하하자 명종이 등극하고 그 어머니 문정황후가 수렴청정하게 됨을 이용하여 윤원형 무리가 윤임이 일가 및 유광, 유인숙 등을 죽이고 많은 명사를 몰아낸 사건이다.
이 병이 임진왜란 전에 다시 다른 형태로 도진 것이 당파싸움이다. 선조 8년(1575년)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1575년 심의겸(서인)과 김효원(동인)이 벼슬자리 다툼으로 동, 서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2백 년간 파당하여 머리통 터지게 싸웠다. 1591년 누구를 왕세자로 삼느냐는 문제로 동인이 남인 북인으로 갈리고, 1659년 죽은 왕 효종에 대하여 그 계모인 조 대비가 얼마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느냐는 문제로 머리통 터지게 싸우고, 1674년 효종의 비인 장씨에 대해서 이번에도 조 대비가 얼마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느냐는 문제로 서인과 남인이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고, 1683년 태조에게 어떤 휘호(죽은 후 붙이는 칭호)를 올리느냐는 문제로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어, 노, 소, 남, 북인으로 갈리어사색 당파싸움이 시작되었다.
남을 트집 잡아 자기들 입신만 노렸던 것이다. 이런 싸움에만 정신 팔린 못난이들은 이이가 임란 전에 외친 부국강병론을 무시, 병자호란 전의 허균의 호로경계론 등을 무시했다가 호되게 당했다. 이런 형편없는 작자들이 지도자랍시고 나라를 다스렸으니 무슨 발전이 있었으랴!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이조시대의 당파싸움과 사화를 연상케 한다. 「대비가 얼마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느냐」하는 문제로 머리통 터지게 싸우는 것과, 별 것도 아닌 것 갖고 생트집 잡고 머리통 터지게 싸우고 난리 치는 현금의 정치가들과 무엇이 다를꼬? 애꿎은 국민들만 죽어난다. 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은 걸 가지고 율법학자들이 생트집 잡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예수님은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치는 「위선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겉으로 드러난 의식만 치르면 즉시 축복을 받는다는 고질화된 사고방식을 비난하셨다. 중요한 것은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마태오 7, 12)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의식」은 일종의 껍데기다. 껍데기는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알맹이를 괴롭힌다면 당연히 벗겨 버려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주장이다.
우리도 이중성과 허례허식을 빨리 벗어 던지고 예수님을 실제로 따라야 한다. 「머리 따로, 몸 따로」여선 안 된다. 더 이상 나의 입신양명을 위해 별 것 아닌 것 갖고 머리통 터지게 싸우는 일은 없어야겠다. 예수님의 개혁정신이 우리 국법의 기초,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적 가치기준 풍습과 문화의 토착화에로 깊이 스며들기를 기도 드려야겠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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