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개별 성사들의 필요성 교리
<교리서>는 먼저 트렌트 공의회를 통해서 표명한 옛적 교회의 가르침을 참고하면서 『교회는 신앙의 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전술한 후 이어서 『성사생활의 효과는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께서 신자들을 외아들이신 구세주와 근본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고 진술한다. 즉 성사의 필요성을 성사생활의 이유 혹은 목적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과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는 세례를 비롯한 여타의 성사들이 필수적이라고 가르치려는 것이 그것이다. 그 사실을 개별 성사들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말하면서도 상호 불가분의 한 연결선 상에서 개별성사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내용들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례의 필요성을 말할 때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복음을 전해 듣고 이 성사를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의 구원에 필수적』이고 『교회의 영원한 행복에 들기 위한 확실한 보증으로 세례 이외의 다른 방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강조한 내용 그대로 견진을 말할 때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성체를 말할 때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포함한 입문성사를 완결짓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성화하시는 하느님의 활동과, 인간이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께,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께 드리는 예배는 성체성사 안에서 그 극치를 이룬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고해를 말할 때는 『세례 받은 사람에게 사욕이 남아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도움을 받아 승리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이 싸움은 주님께서 끊임 없이 우리를 부르시는 거룩함과 영원한 생명으로 돌아가기 위한 싸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병자를 말할 때는 『중병이나 노쇠에 따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는 것』이기에 그리고 성품을 말할 때는 『사제직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특별한 사제직에 속하는 것이며, 사람들과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제정』 되었고 혼인을 말할 때는 『죄로 인해 어지러워진 원래의 창조질서를 회복시키려고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라고 하는 새로운 차원에서 혼인생활을 하도록 친히 힘과 은총을 주신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자신을 끊어 버리며, 자신의 십자가를 짐으로써 부부들은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혼인의 본래 참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생활화 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별성사들의 필요성에 대해 표명하는 <교리서>를 대하다 보면 성사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만이 구원과 영원한 행복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상당히 배타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성사은총』의 교리에 대한 표명들과 모순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세례의 효과를 낳는다고 가르치고 있는 『혈세와 화세』의 가능성과 『세례 받기 전에 죽은 예비자』와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들』에게 구원이 열려 있다고 하는 희망이 있다는 말 그리고 심지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른다고 해도, 진리를 찾고 자신이 있는 한도 내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표현함으로써 <교리서> 스스로 모순된 발언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조목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
이미 성사은총을 다룰 때 살펴본 것처럼 성사나 교회 밖에서도 은총이 주어진다는 의식 즉 은총은 성사적이고 교회적인 중재를 통해서 베풀어진다는 정도보다도 훨씬 더 폭 넓게 베풀어진다는 인식이 발전적으로 깊어져 왔고 또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성사신학의 대가는 『구원하시고자 하는 신적 힘은 성사들에게 속박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진작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그분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생겨날 수 있다. 즉 하느님은 스스로 자유이시고 그분은 당신의 자유로써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바를 하시기에 그분과 그분의 일을 나타내는 표현인 은총 역시 그분의 자유에 해당하기 마련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전제는 또한 신약성서의 내용들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 구원(혹은 은총) 이 단순히 교회의 예절들을 통해야 이루어진다는 것을 뛰어 넘은 그야말로 보편적인 구원의 신비에 대한 이해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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