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의 배경
한국교회가 창설된 이후 2백13년이 지났건만 이 땅에서 교회 학문을 한다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은 아니다. 한국 교회적 상황에서 신학하기와 철학하기가 쉬운 일이 아님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우리 손을 통해 이룩된 신학과 철학을 통해서 그리스도교의 학문 발전에 아직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아직까지도 「선교지역」이라는 특수성에 스스로 안주하며 자신을 비하해 오지 않았나 의심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신앙을 바라보기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이룩된 신학적 업적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데에 급급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회는 신자 증가율의 감소를 통해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의 영성적 측면에 대한 교회의 기여가 한계에 이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학문 분야의 급속한 발전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상황으로 교회는 우리 사회를 위해서 지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일도 더욱 어렵게 되었다. 교회에서 상당한 평판을 얻고 있던 사회 개발이나 복지 분야도 국민의 세금을 기반으로 하는 정부의 자본력 앞에서 교회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처럼 교회는 그동안 자신이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던 분야들에서 점차 후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이는 현대사회가 우리 교회에 대해서 새로운 변화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어두운 사실의 인정을 회피해 왔다. 이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전화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돌파구의 마련이 요청되고 있다.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교회의 발전을 강화해 나가기 위해서는 교회 학문에 대한 연구 작업이 착실히 수행되어야 한다. 학문 연구는 대증요법과는 달리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해 준다. 그것은 위기 상황에 대한 또 다른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학문을 장려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교회 연구를 통해서 자신의 성숙을 꾀할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와 그리스도교 신학 자체의 발전에도 이바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문 연구의 상황
그러나 그동안 교회 학문에 대한 연구 성과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었다. 이처럼 학문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저조했던 데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한국교회가 직면했던 선교 환경의 특수성을 우선적으로 들수 있다. 한국교회는 학문 연구를 통해서 출발했지만 연이은 박해로 말미암아 자신의 신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기보다는 그 뜨거운 실천만이 중시되어 왔다. 박해시대 이래 우리는 교회의 학문을 차분히 연구할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선교사들에 의해 오랫동안 관리되어 오던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의 학문 연구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했다. 아마 당시의 교회 장상들은 조선교회의 제한된 자원을 직접 선교에만 활용함이 더욱 효과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듯하다. 현대 교회에서도 현장사목 중심주의적인 분위기는 교회 학문의 연구를 위축시켜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당기간 동안 우리 교회에서는 신앙의 핵심적 가르침을 담고 있는 성서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통과 구체적 내용을 전해주는 교의신학이나 상황신학 윤리신학 등에 관한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착수된 것도 엄밀히 말하자면 1960년대 이후부터였다. 사목신학이나 교회법과 같은 실용성이 강한 신학 분야에 있어서도 그 연구가 충실히 축적되기가 어려웠다. 상당기간 동안 우리 교회는 자신의 역사 전통에 관해서마저도 스스로 연구하지 못했다. 한국의 문화와 우리 신앙의 관계에 관한 본격적 성찰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이러한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출현하여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서 우리 신앙의 정수를 밝히며, 오늘의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 학문의 연구를 위해서 자신을 불사르고 있는 전문인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방안이 진작 마련되어야 했다.
학술상 제정과 그 의미
이 시점에서 교회 학문의 연구를 격려하는 큰 상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고 양한모 선생의 유족들이 출연한 특별기금을 바탕으로 하여 「양한모 기념 가톨릭 학술상」이 제정된 것이다. 고인은 생전에 교회 신학과 철학의 연구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창설해서 운영했던 「크리스찬 사상연구소」는 바로 이러한 관심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던 의지의 표현이었다. 특히 그는 신도신학의 정립을 위해서 노력해 왔다. 그의 신도신학 연구는 한국 현대 신학 연구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는 교회 출판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한 바 있다. 조선교구설정 1백50주년 기념사업을 비롯한 여러 교회 행사의 진행을 위해서도 탁월히 기여했다. 그는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현대 교회사의 전개에도 직접 참여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교회학문을 연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교회학문의 발전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교회가 직면하게 될 여러 상황을 예견할 수 있었던 그는 학문 연구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인은 생전에 가톨릭신문을 통해서 교회의 현황을 진단하고 자신의 정론을 펴 나갔다. 이를 인연으로 하여 고인의 뜻을 이어 받은 유족들은 이 신문사가 그를 기념하는 상을 제정할수 있도록 기여금을 전달했다.
가톨릭 학술상의 제정은 한국교회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로써 그는 고인이 되어서도 한국교회의 신학과 철학을 비롯한 가톨릭 학문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에게 좋은 격려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 상이 객관적으로 운영되어 그 권위를 더욱 높여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한국교회 구성원 모두에게 그 시상의 폭을 넓혀서 명실공히 한국 가톨릭의 학술분야를 대표하는 상으로 처음부터 확고히 자리잡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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