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시복시성 대상자들의 범위는 어디까지 선정해야 하나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가 안고 있는 하나의 딜레마이다.
가톨릭신문은 순교자 성월을 맞아 제2의 시복시성 대상자들의 범위와 앞으로 시복시성 추진 방향에 대해 신학자들과 교회 신학자들의 입장을 정리해 보았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앞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시복시성 청원 대상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물론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 때의 순교자들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교회 구성원 대다수가 갖는 공감대이다.
교황청 새순교자위원회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요청에 따라 전 세계 교구의 도움을 받아 「20세기 순교자들의 명부인 순교록」을 편찬할 예정이어서 한국 가톨릭교회도 단순히 정서적 공감대에 안주해온 것에서 탈피, 20세기 순교자에 관한 발굴, 조사, 연구 작업을 서둘러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주목할 것은 교황청 새순교자위원회가 제2천년기 후반에,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순교록을 가능한 가장 완전하게 2000년까지 편찬하는 것을 목표로 이 사업을 벌이고 있고 교회법에 따라 순교 승인 절차를 밟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어 앞으로 이 명부가 전 세계 각 지역 교회가 추진할 20세기 순교자 시복시성 운동의 결정적 기초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따라서 한국 가톨릭교회도 2000년 대희년 전까지 3년 밖에 남지 않은 한시적 시간 안에서 한 명의 순교자라도 더 찾아내는 초 교구적 작업이 요청되고 있다.
◆「순교」 개념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리와 신학, 교회법은 완전한 「순교」로 승인하기 위해 세 가지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신앙을 위해 죽음을 당했다는 확실한 증거」와 두 번째로 「죽인 자가 신앙에 대한 배척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순교자가 신앙을 위해 자진해서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이 세 가지 요건이 완전히 충족돼야 비로소 교회로부터 그 순교 사실을 승인 받을 수 있다.
교회법은 또한 이 세 가지 요건에 「순교의 증거를 제시할 목격자」를 필수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해방 이후의 순교자들
해방 이후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한 종교 탄압은 한국 가톨릭교회에 있어 「제2의 박해기요 순교자들의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 이유에 대해 한국교회사연구소 차기진 박사는 『근래에 들어서야 겨우 현대 교회사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다음으로는 북한교회가 침묵의 교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사실들이 단편적인 증언 기록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연구의 어려움을 피력했다.
그러나 차기진 박사는 『침묵의 교회로 변모하는 과정은 곧 종교 말살 정책의 실현 과정이기에 공산정권의 종교탄압에 저항하다 희생된 신앙인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순교자들』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공산 정권의 종교 탄압은 제한, 탄압, 말살의 3단계 체계로 실행됐다.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한 첫 희생자는 1945년 8월 23일 이유없이 소련군에 납치되어 총살당한 함흥교구 회령본당 비트말 파렌코프 신부였다.
1948년 9월 정식으로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북한 공산 정권은 종교 말살을 목적으로 본격적인 박해를 시작, 함흥교구 보니 파시오 사우어 주교를 비롯한 73명의 성직자, 수도자를 체포, 살해했고,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를 비롯한 한국인 신부 5명이 행방불명됐다.
북한 공산 정권은 6ㆍ25 전쟁을 일으키기 전날까지 천주교 성직자, 수도자들을 색출, 14명을 체포해 살해했다.
북한 공산군은 남침과 함께 천주교 탄압을 남한 지역으로 확대하고, 후퇴하면서도 천주교 신자들을 북송하는 「죽음의 행진」을 감행했다.
현재까지 6ㆍ25 전쟁을 전후하여 북한 공산군에 의해 희생된 천주교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모두 90명이다. 그러나 이전 연길지역 등지에서 희생된 신자들과 행방불명된 사람들, 그리고 평신도 학생들까지 더한다면 순교자 수가 훨씬 늘어날 것이다.
차기진 박사는 『일찍이 한국교회는 시복운동을 전개하면서 전국적으로 증언을 채록하고, 이를 정리한 적이 있다』면서 『교황청의 순교를 작성뿐 아니라 제2의 순교사를 규명하기 위해서도 이와 같은 전국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제 시대의 순교자
6ㆍ25 전쟁 전후의 한국 가톨릭교회의 순교자 연구보다 더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일제 치하의 교회사이다.
일제 시대의 순교자 연구는 최근 「안중근(토마스) 의사의 시복시성 문제」와 함께 다시 부각되고 있다. 교회 일각에서 부각된 「안중근 의사의 시복시성」추진건은 순교자 연구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고 있다.
신학자들과 교회 신학자들은 그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했고, 신앙의 신념 아래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열심한 신앙인이었지 순교자는 아니다 라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다.
그 이유로 이들은 교회법과 교리, 교회의 전통에서 제시한 「순교의 3가지 필수 조건」을 들었다. 안중근의 의거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안중근의 사형 자체도 신자로서 그가 마지막까지 신앙을 고백했지만 「신앙」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닐뿐더러, 박해자 즉 일본 정부도 「신앙」 때문에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 아니라는 논리다. 따라서 이들은 안중근을 순교적 접근에서가 아닌 사상적 측면에서 그를 연구하고, 현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시복시성운동 추진 향방 전망
신학자들은 「호교론」적 측면에서 시복시성운동을 추진하는 것은 현 시대에선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경고한다. 교회의 전통 안에서 철저한 검증 없이 서둘러 일을 추진할 때 여러가지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호남교회사연구소 박대길 연구원은 『시복시성 추진과 병행하여 순교자와 시복시성 대상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과 공경 그리고 그들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는 2001년 신유박해 2백주년을 기념해 신유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운동을 교구별로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1791년 신해박해, 1797년 정사박해, 1815년 을해박해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추진건도 교구별로 포함되어 있다.
사학자들은 다음 단계로 1839년 기해박해와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순교자들 가운데서 시복 대상에 들지 않았거나 시성되지 않은 신앙 선조들에 대한 단계별 시복시성 추진 사업이 전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들은 지금 당장부터라도 20세기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 수집과 정리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처럼 교구 단위로 시복을 청원하는 일, 순교 자료를 조사하는 일 등을 계속하지만 어느 시점에 가서는 한국 가톨릭교회 전체의 이름으로 이 운동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망했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